전체 글262 3년 전에 제가 만든 걸 제가 못 알아봤어요: 나중의 나는 남이더라고요 3년 전에 제가 만든 걸 다시 열었어요오래전에 마무리한 고객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그때 만든 걸 조금 수정해야 하는데 봐줄 수 있냐는 이야기였어요. 3년쯤 지난 뒤였어요. 저는 흔쾌히 하겠다고 했어요. 제가 만든 거니까 금방 할 줄 알았거든요. 오랜만에 연락이 온 것도 반가웠고요.그런데 파일을 열고 나서 한참을 들여다봤어요. 제가 만든 게 맞는데 이해가 안 됐어요. 여기가 왜 이렇게 되어 있는지, 이 부분은 왜 다른 방식으로 안 했는지가 하나도 기억이 안 났어요.결국 수정 자체보다 파악하는 데 시간이 더 걸렸어요. 반나절이면 될 거라고 말씀드렸는데 이틀이 걸렸어요. 그때 좀 창피했어요. 제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제가 저에게 아무것도 안 남겨뒀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으니까요.그 이틀 중 하루는 그냥 읽기.. 2026. 8. 22. 메뉴판을 멀리 들고 있더래요: 안경 하나 사는 데 몇 달이 걸린 이유 메뉴판을 멀리 들고 있더래요몇 년 전에 식사 자리에서 누가 웃으면서 한마디를 했어요. 메뉴판을 왜 그렇게 멀리 들고 보냐고요. 저는 그때까지 제가 그러고 있다는 걸 몰랐어요. 말을 듣고 나서 팔 위치를 의식해 보니 정말로 평소보다 멀리 들고 있었어요.그 자리에서는 웃고 넘겼어요. 식당이 어두워서 그렇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계속 그 장면이 떠올랐어요. 언제부터 그렇게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 게 더 이상했어요.돌아보면 신호는 그전부터 있었어요. 다만 제가 하나씩 다른 이유를 붙이고 있었어요. 이 식당은 조명이 어둡고, 이 제품은 글씨가 작게 인쇄됐고, 오늘은 좀 피곤하고요. 이유가 매번 달랐으니 하나로 이어 보지 못한 거예요. 각각은 그럴듯한 설명이었고, 그.. 2026. 8. 21. 계산서 앞에서 매번 멈칫했어요: 미국 팁을 정리하는 데 몇 년이 걸린 이야기 계산서 앞에서 매번 멈칫했어요미국에 와서 제일 오래 어색했던 게 팁이었어요. 음식 맛이나 영어보다 이게 더 신경 쓰였어요. 계산서를 받으면 잠깐 멈춰서 계산을 해야 하고, 그 몇 초 동안 종업원이 옆에 서 있으면 마음이 급해져요. 얼마가 적당한지 모르는 상태로 숫자를 적어 넣는 게 매번 불편했어요.한국에서는 이런 판단을 할 일이 없었어요. 적힌 금액을 내면 끝이니까요. 그런데 여기서는 마지막에 제가 정해야 하는 항목이 하나 더 있어요. 그것도 상대가 보는 앞에서요. 액수가 큰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부담이 됐어요.처음 몇 달은 그냥 많이 줬어요. 적게 줘서 무례한 사람이 되는 게 싫었거든요. 몰라서 후하게 주는 쪽을 택한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그게 몇 년 쌓이면 꽤 큰 .. 2026. 8. 20. 소개로 온 일은 거절하기가 어려웠어요: 순서를 바꾸고 나서 달라진 것 일의 대부분이 소개로 들어와요저는 광고를 해본 적이 없어요. 홈페이지도 오래 방치해 뒀고, 영업이라고 할 만한 활동도 거의 안 해요. 그런데도 일은 계속 들어왔어요. 대부분 예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제 이야기를 해서 연결된 건들이에요.이게 얼마나 되나 한번 세어봤는데, 최근 몇 년 동안 받은 일 중 광고나 검색으로 저를 찾아온 건 거의 없었어요. 나머지는 전부 누군가를 거쳐서 왔어요. 처음에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 반복되니 이게 제 일이 굴러가는 방식이라는 걸 인정하게 됐어요.좋은 점은 분명해요. 소개로 오면 이미 신뢰가 어느 정도 깔려 있어요. 제가 어떤 사람이고 일을 어떻게 하는지를 소개한 사람이 대신 설명해 준 상태니까요. 처음부터 저를 증명할 필요가 없고, 가격 이야기도.. 2026. 8. 19. 괜찮으시냐고 묻는 걸 그만뒀어요: 멀리서 부모님 안부를 확인하는 법 전화를 끊고 나면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고요부모님과 통화를 하면 대화가 늘 비슷하게 흘러가요. 밥은 먹었냐, 거긴 날씨가 어떠냐, 몸은 괜찮냐. 저도 비슷하게 답하고, 별일 없다는 말을 주고받고 끊어요. 통화 시간은 10분쯤이고 서로 기분은 나쁘지 않아요. 끊고 나면 할 일을 했다는 느낌도 들고요.그런데 어느 날 전화를 끊고 나서 문득 생각했어요. 방금 통화에서 제가 알게 된 게 뭐가 있지. 아무것도 없었어요. 부모님이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어디가 불편하신지, 병원에는 다니시는지 저는 하나도 몰랐어요. 매주 통화를 하면서도요.이유는 간단해요. 제가 안부를 물었고 부모님은 안부로 답하셨거든요. 괜찮냐고 물으면 괜찮다는 답이 돌아오는 게 당연해요. 특히 멀리 있는 자식에게는 더 그렇고요. 걱정시키고 싶지 않.. 2026. 8. 18. 창고에 2년을 맡겨두고 알게 된 것: 제가 돈 주고 산 건 보관이 아니었어요 떠나기 전날까지 짐을 못 정했어요한 도시에서 몇 년 지내다가 떠나기로 했을 때, 제일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게 짐이었어요. 비행기표는 하루면 끊고 계약 정리도 며칠이면 되는데, 방에 있는 물건을 어떻게 할지는 몇 주가 지나도 결론이 안 났어요.버리기 애매한 것들이 많았어요. 몇 년 쓴 책상과 의자, 겨울 옷, 서류가 든 상자, 공구, 언젠가 쓸 것 같은 케이블 뭉치요. 하나하나 보면 다 이유가 있어요. 이건 비싸게 산 거고, 저건 다시 사려면 번거롭고, 그건 추억이 있고요.그래서 떠나기 사흘 전에 창고를 하나 빌렸어요. 미국에는 이런 개인 창고가 정말 많아요. 큰길가에 줄지어 늘어선 셔터 문들을 보신 적 있을 거예요. 그날 저는 그중 하나에 제 물건을 넣고 자물쇠를 걸었어요. 임시라고 생각했어요.계약은 생.. 2026. 8. 17. 이전 1 ··· 12 13 14 15 16 17 18 ··· 4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