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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셋 & 웰니스 (Mindset & Wellness)

괜찮으시냐고 묻는 걸 그만뒀어요: 멀리서 부모님 안부를 확인하는 법

by wellnomadness 2026. 8. 18.

전화를 끊고 나면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고요

부모님과 통화를 하면 대화가 늘 비슷하게 흘러가요. 밥은 먹었냐, 거긴 날씨가 어떠냐, 몸은 괜찮냐. 저도 비슷하게 답하고, 별일 없다는 말을 주고받고 끊어요. 통화 시간은 10분쯤이고 서로 기분은 나쁘지 않아요. 끊고 나면 할 일을 했다는 느낌도 들고요.

그런데 어느 날 전화를 끊고 나서 문득 생각했어요. 방금 통화에서 제가 알게 된 게 뭐가 있지. 아무것도 없었어요. 부모님이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어디가 불편하신지, 병원에는 다니시는지 저는 하나도 몰랐어요. 매주 통화를 하면서도요.

이유는 간단해요. 제가 안부를 물었고 부모님은 안부로 답하셨거든요. 괜찮냐고 물으면 괜찮다는 답이 돌아오는 게 당연해요. 특히 멀리 있는 자식에게는 더 그렇고요. 걱정시키고 싶지 않으신 거예요. 저는 그 마음을 알면서도 그 답을 그대로 믿고 지냈어요.


소식은 늘 나중에 왔어요

그걸 확실히 알게 된 계기가 있어요. 아버지가 며칠 입원하셨던 적이 있는데, 저는 퇴원하시고 한참 뒤에 들었어요. 그것도 부모님이 직접 말씀하신 게 아니라 다른 경로로 알게 됐어요. 왜 말씀 안 하셨냐고 여쭈니 별일 아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화가 났다기보다 무서웠어요. 별일 아닌 것도 안 알려주신다면 별일인 건 언제 알게 되나 싶었거든요. 그리고 제가 그 시기에 통화를 안 한 것도 아니었어요. 통화는 했는데 그 이야기가 안 나온 거예요. 제가 물어보지 않았으니까요.

멀리 있으면 이런 일이 구조적으로 생겨요. 같은 도시에 살면 얼굴만 봐도 알고, 집에 가보면 약봉지가 눈에 들어와요. 그런데 전화로는 상대가 말해주는 것만 알 수 있어요. 그리고 부모님은 대체로 말씀을 안 하세요. 거리가 만든 정보 격차인 셈이에요.

그 뒤로 한동안은 죄책감이 컸어요. 제가 이 일을 택해서 멀리 있는 거니까 다 제 탓 같았거든요. 그런데 그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더라고요. 자책하는 동안에도 정보는 여전히 안 오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미안해하는 대신 방법을 바꾸기로 했어요. 죄책감은 제 기분을 다룰 뿐이고, 부모님께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어요.


시차가 통화를 더 줄였어요

여기에 시차가 얹혀요. 미국에 있으면 한국이 낮일 때 저는 자고 있거나 일하는 중이에요. 통화가 가능한 시간대가 하루에 두어 시간밖에 안 돼요. 그 시간을 놓치면 다음 날로 밀리고, 그렇게 며칠이 지나요.

그러다 보니 통화가 점점 용건 중심이 됐어요. 짧게 안부만 확인하고 끊는 식이요. 그냥 별 이야기 없이 오래 통화하는 게 사실 제일 많은 걸 알려주는데, 그런 통화를 할 여유가 없었어요.

도시를 옮기면 시차가 또 바뀌어요. 겨우 익숙해진 통화 시간대가 무너지고 새로 잡아야 해요. 저는 이걸 여러 번 겪고 나서 통화를 제 일정에 고정해 뒀어요. 도시가 바뀌면 그 도시 기준으로 시간을 다시 정하고, 부모님께 이 시간에 걸겠다고 미리 말씀드려요. 기다리시게 하는 것보다 낫더라고요.

늦은 밤 책상에서 영상통화 화면을 바라보는 사람과 창밖의 어두운 도시


질문을 바꿨어요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질문이에요. 괜찮으시냐고 묻는 걸 그만뒀어요. 그 질문에는 괜찮다는 답밖에 안 나오니까요. 대신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걸 물어요.

요즘 병원은 언제 가셨어요. 이번에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약은 지금 몇 가지 드세요. 오늘은 어디 다녀오셨어요. 이런 질문은 구체적인 답이 나와요. 그리고 답을 들으면 다음 질문이 이어져요. 괜찮냐는 질문은 거기서 대화가 끝나는데, 이런 질문은 대화가 시작돼요.

처음에는 어색했어요. 갑자기 꼬치꼬치 묻는 것처럼 느껴질까 봐서요. 실제로 초반에는 왜 그런 걸 묻냐는 반응도 있었고요. 그런데 몇 번 반복하니 자연스러워졌어요. 지금은 제가 묻기 전에 먼저 이야기하시기도 해요. 이 이야기를 해도 되는 사이라는 게 정해진 것 같아요.

한 가지 더 배운 건 답을 듣고 반응하는 방식이에요. 불편한 데가 있다고 하시면 예전에는 곧바로 병원 가보시라고 했어요. 그러면 대화가 거기서 끝나요. 지시를 받은 셈이 되니까 다음부터는 말씀을 안 하시게 되고요. 지금은 일단 더 여쭤봐요. 언제부터 그러셨는지, 어떨 때 심한지요. 듣고 나서 어떻게 할지는 그다음이에요.


얼굴보다 배경을 봐요

영상통화를 할 때 생긴 버릇도 하나 있어요. 화면에서 부모님 얼굴만 보는 게 아니라 뒤쪽을 봐요. 집이 정리돼 있는지, 못 보던 물건이 놓여 있는지, 냉장고에 뭐가 붙어 있는지요.

말로는 안 나오는 게 거기서 보여요. 언젠가는 뒤쪽 식탁에 약통이 여러 개 놓여 있는 게 보였어요. 여쭤보니 그제야 설명해 주시더라고요. 제가 못 봤으면 몇 달 더 몰랐을 거예요.

이게 좀 감시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는 않아요. 그런데 직접 가서 볼 수 없는 처지에서는 이 정도가 제가 할 수 있는 전부더라고요. 대신 본 걸로 추궁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봤다고 바로 캐묻는 대신 다음 통화 때 자연스럽게 물어봐요.

목소리도 예전보다 신경 써서 들어요. 말이 느려지셨는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시는지, 숨이 차 보이시는지요. 화면이 잘 안 보이는 날에는 이쪽이 더 많은 걸 알려주더라고요.


혼자 다 알 수는 없어요

한동안은 제가 다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멀리 있으니까 더 챙겨야 한다는 마음이었죠. 그런데 그건 불가능하더라고요. 통화 한 번으로 알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고, 저는 하루의 대부분을 다른 나라에서 다른 일을 하며 보내니까요.

그래서 가까이 있는 가족과 정보를 합치기로 했어요. 각자 아는 걸 공유하는 거예요. 누구는 병원 다녀온 이야기를 알고, 누구는 최근에 뭘 힘들어하시는지 알아요. 조각을 모아야 그림이 보여요. 제가 통화에서 들은 것도 그쪽에 전해요.

여기서 조심하는 게 있어요. 멀리 있는 사람이 정보만 받고 부담은 안 지면 그게 제일 얄미운 위치예요. 그래서 제가 원격으로 할 수 있는 건 맡으려고 해요. 알아봐야 할 것을 찾아보거나, 서류를 처리하거나, 비용을 부담하는 것들이요. 몸으로 못 하는 만큼 다른 걸로 채우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갈 수 있는 상태로 지내요

그리고 언제든 갈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해요. 이건 노마드로 지내면서 생긴 원칙이에요. 급한 일이 생기면 하루 이틀 안에 움직일 수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그 정도 비용은 늘 따로 두고, 일정도 완전히 못 빼는 상태로는 안 만들려고 해요.

실제로 그렇게 움직인 적이 있어요. 그때 준비가 되어 있어서 이틀 만에 갈 수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면 훨씬 늦었을 거예요. 자유롭게 이동하는 삶의 대가는 이런 순간에 치르게 되는 것 같아요. 평소에 멀리 있는 대신, 필요할 때 빨리 갈 수 있게 준비해 두는 정도가 제가 찾은 타협이에요.

거리가 줄어들지는 않아요. 통화를 자주 하고 질문을 바꿔도 저는 여전히 멀리 있어요. 다만 모르고 지내는 시간은 확실히 줄었어요. 혹시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계신다면, 다음 통화에서 괜찮으시냐는 질문 대신 다른 걸 하나만 물어보세요. 저는 그 질문 하나를 바꾸고 나서야 부모님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알기 시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