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막혔어요
처음 만난 자리에서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흔한 질문인데 답이 안 나왔어요. 몇 초 정도 가만히 있다가 결국 일 이야기를 했어요. 요즘 무슨 일을 하고 있다고요.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었죠.
그 자리에서는 그냥 넘어갔는데 숙소로 돌아와서 다시 생각났어요. 왜 답을 못 했지 하고요. 예전에는 이 질문이 어렵지 않았어요. 대답할 게 몇 가지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날은 하나도 안 떠올랐어요.
그날 알게 된 건 취미가 없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어요. 없어진 걸 몇 년 동안 몰랐다는 거였어요. 하나씩 안 하게 됐을 텐데 그 과정에서 알아차린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리고 좀 부끄러웠어요. 일 이야기 말고는 할 말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 같아서요. 실제로 그 자리에서 제 이야기는 금방 끝났어요. 상대는 이것저것 하는 게 있어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데 저는 아니었거든요.
언제부터 안 했는지 되짚어봤어요
그래서 앉아서 예전에 뭘 했는지 적어봤어요. 몇 개 나왔어요. 그런데 각각을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 났어요. 그만두겠다고 결심한 적이 없으니 끊긴 시점도 없는 거예요. 그냥 어느 순간부터 안 하고 있었어요.
적어놓고 보니 공통점이 하나 보였어요. 전부 장비가 필요하거나 갈 곳이 있어야 하는 것들이었어요. 이동하며 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못 하게 된 거예요. 짐에 안 들어가는 건 결국 안 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빠진 자리를 새로운 게 채우지 않았어요. 그냥 비어 있었어요. 비어 있는 시간은 결국 일이 채웠고요. 하나가 빠지면 뭔가 들어와야 하는데 저는 빠지는 것만 있었어요. 몇 년에 걸쳐 조금씩 그렇게 됐으니 알아차릴 계기도 없었던 거예요.
그중 하나는 꽤 오래 했던 거였어요. 그만둘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이사하면서 짐을 줄일 때 그 물건을 놓고 왔고, 그게 끝이었어요. 그날은 그냥 짐 하나를 줄인 거라고 생각했는데 몇 년 뒤에야 그때가 마지막이었다는 걸 알았어요.
쉰다고 하면서 화면만 봤어요
그러면 쉴 때 뭘 하고 있었나 봤더니 대부분 화면이었어요. 짧은 영상을 넘기거나 뉴스를 읽거나 뭔가를 검색하고 있었어요.
이게 쉬는 것처럼 느껴지긴 해요. 힘이 안 드니까요. 그런데 끝나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 두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나면 쉰 것도 아니고 뭘 한 것도 아닌 상태가 돼요. 오히려 약간 지쳐 있고요.
그리고 이건 시작과 끝이 없어요. 취미는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지점이 있잖아요. 화면은 그게 없어요. 멈추는 이유가 만족이 아니라 시간이 다 돼서예요. 그러니 언제 끝내도 덜 한 기분이 남아요. 저는 이걸 알고 나서 쉬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밤에 특히 그랬어요. 하루를 끝내고 뭔가 보상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요. 그런데 그 보상이 매번 같은 것이라서 나중에는 보상처럼 느껴지지도 않았어요. 그냥 잠들기 전에 거치는 절차가 됐어요.

다시 시작하는 게 어색했어요
뭐라도 해보자 싶어서 예전에 하던 것 중 하나를 다시 꺼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어색했어요. 못하는 게 어색한 게 아니라 그 시간에 그걸 하고 있는 제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일할 시간에 딴짓을 하는 것 같았어요. 혼자 일하면 시간을 스스로 정하니까 노는 시간에도 계산이 붙어요. 이 시간에 일했으면 얼마를 벌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요. 회사에 다닐 때는 퇴근하면 끝이니까 이런 계산이 없었어요.
이걸 넘기는 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저는 그 시간을 아예 달력에 넣는 방식으로 해결했어요. 일정으로 적혀 있으면 그 시간에 그걸 하는 게 이상하지 않으니까요. 유치한 방법 같은데 저에게는 필요했어요.
주변에 말하지 않고 시작한 것도 이유가 있어요. 뭘 시작했다고 하면 어떻게 돼가냐는 질문을 받게 되잖아요. 그러면 또 성과를 보고해야 하는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한동안 그냥 혼자 했어요.
처음 몇 주는 30분도 길게 느껴졌어요. 자꾸 시계를 보게 되고 밀린 일이 떠올랐어요. 그런데 몇 주 지나니까 그 시간에 다른 생각이 덜 끼어들더라고요. 어색함이 사라지는 데 그 정도는 걸린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잘하려고 하니까 또 일이 됐어요
다음 문제는 다른 데서 왔어요. 시작하고 나니까 잘하고 싶어졌어요. 기록을 남기고, 나아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목표를 정하게 되더라고요.
몇 달 하다가 재미가 없어졌어요. 이유를 보니 제가 그걸 일처럼 다루고 있었어요. 진전이 없으면 시간을 낭비한 것 같고, 하루 빠지면 죄책감이 들었어요. 쉬려고 시작한 게 또 하나의 해야 할 일이 된 거예요.
그래서 규칙을 하나 정했어요. 기록을 안 남기기로요. 얼마나 했는지 세지 않고 나아졌는지도 안 봐요. 이걸 놓고 나니까 다시 편해졌어요. 저는 뭐든 숫자로 만들려는 습관이 있는데, 여기서는 그걸 안 해야 유지가 되더라고요.
장비도 안 사요. 시작하자마자 좋은 걸 갖추려고 하면 본전 생각이 나거든요. 돈을 들이면 그만큼 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겨요. 있는 걸로 하다가 정말 부족해지면 그때 사요. 대부분은 그때가 안 오더라고요.
짐에 들어가는 것만 살아남았어요
몇 년 해보니 남아 있는 것들에 공통점이 있어요. 짐에 들어가고, 혼자 할 수 있고, 며칠 안 해도 아무 일 없는 것들이에요.
반대로 못 버틴 건 정기적으로 모여야 하거나 큰 장비가 필요한 것들이었어요. 이건 제 생활과 안 맞아요. 몇 달 하다가 도시를 옮기면 끊기고, 새 도시에서 다시 만드는 게 매번 부담이거든요. 두세 번 반복하면 아예 시작을 안 하게 돼요.
대신 어디서나 되는 걸로 정하면 오히려 이동이 도움이 돼요. 같은 걸 다른 도시에서 하면 매번 조금씩 다르니까요. 저는 이걸 알고 나서 새로운 걸 고를 때 재미보다 조건을 먼저 봐요. 재미있어 보여도 여기서만 되는 거면 시작하지 않아요.
그리고 하루 30분이면 되는 것으로 골라요. 시간을 크게 잡아야 하는 건 일정이 불규칙한 저에게는 안 맞아요. 오래 붙잡고 있어야 하는 건 바쁜 주에 바로 밀려요. 짧게 자주 하는 쪽이 결국 오래갔어요.
못하는 걸 하나쯤은 하고 있어야 해요
지금 제가 생각하는 취미의 쓸모는 좀 달라졌어요. 즐거움도 즐거움인데, 잘 못하는 걸 하나쯤 하고 있는 상태가 필요하더라고요.
일에서는 제가 잘하는 걸 해요. 잘해야 돈을 받으니까요. 그러다 보면 못하는 상태를 견디는 감각이 무뎌져요. 서툰 걸 붙잡고 있으면 그 감각이 조금씩 돌아와요. 그리고 그게 일에도 도움이 됐어요. 새로운 걸 배울 때 초반의 답답함을 예전보다 덜 힘들어하게 됐거든요.
혹시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답이 안 나오신다면, 그게 게을러서는 아닐 거예요. 하나씩 빠져나갈 때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요. 다만 빠진 자리를 한 번쯤 세어보시면 좋겠어요. 저는 세어보고 나서야 그 자리가 생각보다 컸다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이건 잘하게 되는 게 목적이 아니라서 그만둬도 실패가 아니에요. 몇 달 하다가 재미없으면 다른 걸 하면 돼요. 일에서는 이렇게 못 하잖아요. 아무 결과가 없어도 되는 시간이 하루에 얼마쯤은 있어야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건 잘 못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만둬도 실패가 아니고 몇 달 쉬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아요. 일에서는 이런 게 하나도 없잖아요. 결과를 안 내도 되는 시간이 하루에 조금은 있어야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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