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60 한국에서 온 친구와 보낸 며칠, 여행 온 사람과 사는 사람은 시간표가 달랐다 한국에서 친구가 놀러 온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든 감정은 반가움이 아니었어요. 그 주에 마감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 생각을 한 제가 좀 별로였어요.반가운데 계산이 먼저 됐다연락을 받자마자 달력을 열었어요. 그 주에 뭐가 있는지, 며칠을 비울 수 있는지를 봤어요.그러고 나서 좀 이상했어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인데 제가 일정부터 계산하고 있었으니까요.그런데 어쩔 수가 없어요. 저는 여기서 살고 있는 거지 여행 중이 아니거든요. 친구가 오는 그 주에도 일은 그대로 있어요.회사에 다니면 휴가를 내면 되잖아요. 저는 낼 데가 없어요. 안 하면 그만큼 밀리고 그건 다음 주로 넘어가요.그래서 반가움과 부담이 같이 왔어요. 이 감정을 친구에게 말할 수는 없어서 그냥 좋다고만 했고요.돌아보면 이게 제일 어려운 부분.. 2026. 8. 30. 화상 회의 내내 제 얼굴을 보고 있었어요: 제 화면을 끄고 나서 달라진 것 회의 내내 제 얼굴을 보고 있었어요화상 회의를 하다가 문득 알아차렸어요. 상대가 말하는 동안 제가 화면 구석에 있는 제 얼굴을 보고 있었어요.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회의 내내 그랬어요. 상대를 보다가도 시선이 자꾸 그쪽으로 갔어요.그러고 나서 며칠 신경 써서 봤는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한 시간짜리 회의에서 제가 제일 오래 본 게 제 얼굴이었어요.이게 몇 년째였을 텐데 그동안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녹화된 회의를 다시 본 날에 확실해졌어요. 제 시선이 화면 아래쪽으로 자꾸 내려가 있었어요. 상대를 안 보고 있었던 거예요.그리고 그게 상대에게도 보였을 거예요. 눈이 다른 데를 보고 있으면 티가 나잖아요. 집중을 안 하는 사람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보고 있으면 신경이 그쪽으로 가요.. 2026. 8. 30. 3년 거래하던 고객이 조용히 사라졌다, 끝났다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3년 동안 매달 일을 주던 곳에서 6개월째 연락이 없어요. 그만하자는 말을 들은 적은 없어요. 그냥 어느 달부터 새 일이 안 왔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끝났다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처음 두 달은 그냥 조용한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달이 원래 있으니까요.석 달째에 한 번 연락을 넣었어요. 잘 지내시냐고,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 달라고요. 답은 왔어요. 요즘 정신이 없다고, 정리되면 연락 주겠다고요.그 답이 오히려 애매했어요. 끝났다고 했으면 정리가 됐을 텐데, 그 문장은 아직 안 끝났다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계속 기다리는 자리에 남아 있게 됐어요.여섯 달쯤 지나고 나서 인정했어요. 이건 끝난 거구나 하고요. 다만 그걸 확인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혼자 일하면서 알게 된 것 중 .. 2026. 8. 29. 넉 달을 매일 마주쳤는데 이름도 몰랐어요: 짧게 사는 사람의 이웃 엘리베이터에서 매일 마주치는 분이 있었어요한 건물에 넉 달쯤 살았을 때예요. 아침에 나가는 시간이 비슷해서 거의 매일 같은 분과 엘리베이터를 탔어요.처음 며칠은 가볍게 인사를 나눴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서로 고개만 까딱하게 됐고, 나중에는 각자 휴대전화를 봤어요.이상한 건 그게 어색해서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인사를 더 이어가면 다음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 다음을 만들 생각이 없었거든요.떠나는 날 짐을 들고 나오다 그분과 마지막으로 마주쳤어요. 저는 그날도 그냥 고개만 까딱하고 나왔어요.그 넉 달 동안 그분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몇 층에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이름이 뭔지요. 매일 봤는데도 그래요.돌아보면 제가 먼저 닫은 쪽이었어요. 상대는 처음에 몇 마디 더 붙이려고 했던 것 .. 2026. 8. 29. 일요일 저녁 7시, 회사를 그만둔 지 10년인데도 기분이 가라앉았다 일요일 저녁 7시쯤이면 기분이 가라앉는다는 걸 몇 년 만에 알아차렸어요. 회사를 그만둔 지 10년이 넘었는데도요. 출근할 데가 없는 사람에게 왜 이게 남아 있는지 한참 몰랐어요.일요일 저녁 7시,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았다처음에는 그냥 피곤한가 보다 했어요. 주말에 뭘 많이 한 것도 아닌데 저녁이 되면 몸이 무거웠어요.알아차린 건 며칠 기분을 적어보면서였어요.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적은 건 아니고 그냥 하루 끝에 한 줄씩 썼어요. 요일별로 놓고 보니 표시가 일요일 저녁에만 몰려 있었어요.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몇 주를 봐도 같았어요. 다른 요일 저녁에는 없는 게 그날만 있었어요.이상한 건 제가 월요일에 특별히 힘든 일이 없다는 거예요. 저는 월요일에도 화요일과 비슷하게 일해요. 요일 구.. 2026. 8. 28. 무슨 일을 하셨냐는 질문에 답을 못 했어요: 보여줄 게 없던 10년 무슨 일을 하셨냐는 질문에 답을 못 했어요모임에서 무슨 일 하시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직업은 말할 수 있는데 그다음이 문제였어요. 어떤 걸 하셨냐고 물으시면 거기서 막혀요.제가 한 일은 대부분 이름을 말할 수 없어요. 계약서에 그렇게 되어 있거든요. 어디에 쓰였는지, 누구 것인지 밝히면 안 돼요.그래서 늘 두루뭉술하게 답했어요. 그런 걸 좀 합니다 하고요. 그러면 대화가 거기서 끝나요. 상대도 더 물어보기 애매하니까요.몇 년 그러고 나서 알았어요. 저는 10년 넘게 일했는데 그걸 보여줄 방법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어요. 결과물은 다 남의 것이었고 제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처음에는 이게 겸손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자기 일을 떠벌리지 않는 사람으로요. 그런데 몇 년 지나고 보니 겸손이 아니라 그냥 설명을 .. 2026. 8. 28.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4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