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60 해외 생활 20년, 집이 어디냐는 질문에 아직 답을 못 정했다 집에 언제 가냐는 말에 답을 못 한 적이 있어요. 상대는 인사처럼 물은 건데 저는 몇 초 동안 생각했어요. 어디를 말하는 건지 몰라서요.집에 언제 가냐는 말에 답을 못 했다그날 상대가 물은 건 한국이었어요. 오래 나와 있으니 언제 돌아가냐는 뜻이었죠. 흔한 질문이에요.그런데 저는 잠깐 다른 걸 떠올렸어요. 그때 제가 머물던 방이요. 그날 밤에 돌아갈 곳은 거기였으니까요.결국 웃으면서 아직 계획 없다고 답했어요. 그런데 그 질문이 며칠 남았어요. 답을 못 한 게 아니라 답이 여러 개였던 거예요.비슷한 질문을 자주 받아요. 어디 사냐, 어디서 왔냐, 집이 어디냐요. 상황마다 다른 답을 하게 돼요.서류에 적을 때, 처음 만난 사람에게 말할 때, 오래 알던 사람과 이야기할 때가 다 달라요. 거짓말을 하는 건 아.. 2026. 8. 27.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한 날: 혼자 일하면 말하는 것도 둔해져요 저녁에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왔어요어느 날 저녁에 전화를 받았는데 첫마디가 이상하게 나왔어요. 목이 잠긴 것도 아니고 아픈 것도 아닌데 소리가 안 붙는 느낌이었어요. 두세 마디 하고 나서야 평소 목소리가 나왔어요.감기인가 싶었는데 아니었어요. 생각해 보니 그날 제가 한마디도 안 했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서 그 전화를 받기까지 소리를 낸 적이 없었어요. 숙소에서 혼자 일했고, 점심도 혼자 먹었고, 필요한 연락은 전부 글로 했어요.그날은 좀 놀랐어요. 말을 안 한 것 자체보다 그걸 몰랐다는 게요. 하루가 다 지나고 목소리가 이상해지고 나서야 알아차렸으니까요.그리고 통화가 끝나고 나서 좀 이상했어요. 20분쯤 이야기했는데 끝나고 나니까 기분이 괜찮았거든요. 특별한 내용이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그냥 소리를 냈다.. 2026. 8. 27. 첫 외주 실패기, 30분 설명하고 밤새 다시 만든 뒤 2년을 안 맡겼다 처음으로 제 일을 남에게 맡긴 날, 결국 그날 밤에 제가 다시 다 했어요. 돈은 돈대로 나갔고 시간은 오히려 더 걸렸어요. 그때는 사람을 잘못 골랐다고 생각했어요.처음 외주를 준 날, 결국 제가 다시 했다일이 몰린 시기였어요. 혼자 다 못 할 것 같아서 한 덩어리를 떼어 맡기기로 했어요. 소개받은 분이었고 경력도 충분했어요.설명은 짧게 했어요. 이런 걸 이렇게 해주시면 된다고요. 30분쯤 통화하고 자료를 보냈어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제 머릿속에서는 명확했으니까요.중간에 연락이 몇 번 왔어요. 이건 어떻게 할까요 하는 질문이요. 그때 저는 바빠서 짧게 답했어요. 편하신 대로 하시라고요. 지금 보면 그게 제일 큰 실수였어요.받아본 결과물은 제가 생각한 것과 달랐어요. 틀린 건 아니었어요. 제가 .. 2026. 8. 26. 약속 시간에 30분을 혼자 앉아 있었어요: 나라마다 다른 시간 감각 약속 시간에 30분을 혼자 앉아 있었어요새 도시에 도착하고 얼마 안 됐을 때 현지에서 알게 된 분들과 만나기로 했어요. 저녁 7시에 어디서 보자고 정했고 저는 5분 전에 도착했어요. 늘 그렇게 해왔으니까요.그런데 7시가 지나도 아무도 안 왔어요.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났어요. 제가 장소를 잘못 알았나 싶어서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어요. 맞았어요. 30분쯤 지나서 한 분이 왔고 그 뒤로 한 명씩 도착했어요.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어요. 화가 났다기보다 당황스러웠어요. 제가 뭔가를 잘못 이해했나 싶었어요. 실제로 잘못 이해한 게 맞았고요.그날 제일 신경 쓰였던 건 30분이라는 시간이 아니었어요. 혼자 앉아 있는 동안 가게 사람들이 저를 보는 시선이었어요. 자리를 잡아놓고 아무도 안 오는 사람처럼 보일.. 2026. 8. 26. 거울에서 아버지 얼굴을 봤다, 노화를 늦추려던 몇 년을 그만둔 이유 세면대 거울을 보다가 아버지 얼굴을 봤어요. 잠깐 놀라서 그대로 멈췄어요. 닮았다는 이야기는 어릴 때부터 들었는데 그날은 닮은 정도가 아니었어요.거울에서 아버지 얼굴을 봤다특별한 일이 있었던 밤은 아니에요. 늦게 씻으려고 서 있었는데 조명 각도가 그랬는지 순간 다르게 보였어요. 몇 초쯤 그대로 서 있었어요.제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그 나이 때 얼굴이었어요. 사진으로 남아 있는 모습이요. 지금 계산해 보면 그때 아버지가 딱 지금 제 나이쯤이셨을 거예요.그러고 나서 며칠 동안 자꾸 얼굴을 봤어요. 예전에는 거울을 봐도 얼굴을 안 봤어요. 씻고 나가는 데 필요한 만큼만 보고 지나갔죠.제대로 보니 여러 가지가 보였어요. 웃을 때 접히는 자국이 안 펴지고, 눈 밑이 예전 같지 않고, 머리가 앞쪽에서 조금 물러나 있.. 2026. 8. 25. 메일을 세 번 보냈는데 답이 없었어요: 고객이 조용해졌을 때 일을 굴리는 법 확인만 해주시면 되는 일이었어요작업을 절반쯤 진행하고 중간 확인을 요청했어요. 방향이 맞는지 봐주시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단계였어요.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었어요. 열어보고 괜찮다고 한마디만 하면 되는 거였어요.그런데 답이 없었어요. 며칠 기다리다 한 번 더 보냈고 또 며칠 뒤에 다시 보냈어요. 그동안 저는 그 일을 손에 쥐고 있었어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없으니까요.결국 2주쯤 지나서 답이 왔어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요. 내부에 다른 일이 생겨서 못 봤다고 하셨어요. 저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이유였어요. 그 2주 동안 제가 했던 온갖 짐작이 전부 빗나간 거예요.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그 2주 동안 다른 일에 붙어 계셨어요. 제 작업이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신 것도 아니고 그냥 순서에서 밀린.. 2026. 8. 25. 이전 1 ··· 10 11 12 13 14 15 16 ··· 4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