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80 팔이 짧아졌어요 팔이 짧아졌어요언젠가부터 휴대폰을 조금씩 멀리 들고 보게 됐어요. 처음에는 제가 그러는 줄도 몰랐어요. 어느 날 문자를 확인하는데 글자가 흐릿해서 저도 모르게 팔을 쭉 뻗고 있더라고요. 팔을 다 펴야 겨우 초점이 맞았어요. 우스갯소리로 나이가 들면 팔이 짧아진다고들 하는데, 그게 딱 제 이야기가 됐어요. 식당에서 메뉴판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멀찍이 들었고, 약통 뒤의 작은 글씨는 아예 읽기를 포기했어요. 그런데도 저는 한동안 이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그냥 그날 눈이 좀 피곤한가 보다 했어요. 나이 이야기는 떠올리지 않았어요. 정확히는 떠올리기 싫었던 것 같아요.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신호는 늘 이렇게 슬그머니 오는데, 저는 매번 그걸 다른 걸로 둘러대곤 했어요.핑계를 대던 시기그 뒤로 한동안은 핑계.. 2026. 7. 27. 낯선 나라에서 머리 자르기 노마드 생활에서 제일 겁났던 일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일을 다 스스로 해결해야 해요. 낯선 곳에서 장을 보고, 교통편을 알아보고, 급하면 약국을 찾는 일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어요. 그런데 유독 오래도록 겁이 났던 일이 하나 있어요. 바로 머리를 자르는 거예요.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어요. 그깟 머리 자르는 게 뭐가 무섭냐고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게 꽤 부담스러운 일이에요. 우선 말이 잘 안 통해요. 원하는 걸 정확히 설명해야 하는데 그게 제일 어려워요. 게다가 한번 자르면 되돌릴 수가 없어요. 음식이 입에 안 맞으면 안 먹으면 그만이고, 숙소가 별로면 다음엔 다른 데 가면 돼요. 그런데 머리는 잘못 잘라도 몇 주 동안 그 상태로 다녀야 해요. 마음에 안 드는 결과를 몸에.. 2026. 7. 26. 출퇴근이 없으니 하루에 끝이 없어요 출퇴근이 없다는 것출퇴근이 없는 생활을 오래 하고 있어요. 회사를 다닐 때는 이런 삶을 부러워했어요. 아침에 만원 지하철에 시달릴 일도 없고, 정해진 시간에 어디로 갈 필요도 없으니까요. 실제로 그런 자유는 좋아요. 그런데 이 생활을 해보면 아무도 잘 말해주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출퇴근이 없다는 건 하루에 시작도 끝도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거예요. 언제 시작해도 되고 언제 끝내도 되니까, 거꾸로 말하면 하루가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가 흐릿해요. 저는 이게 생각보다 큰 문제라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어요. 자유롭게 쓰라고 통째로 주어진 하루가, 오히려 손가락 사이로 다 새어나가더라고요. 솔직히 이 글을 쓰는 오늘도 그런 날이에요. 아침부터 뭔가 계속 하고는 있는데 정신은 하나도 없어요.정신없는 .. 2026. 7. 25. 경유지 하나를 건너뛰고 몇 년째 후회하는 이유 뉴델리를 건너뛴 날몇 년 전, 미국에서 유럽을 거쳐 한국에 갔던 여행이 있었어요. 원래 계획은 한국을 다녀온 뒤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인도 뉴델리에 잠깐 들르는 거였어요. 거기 형님이 계셔서,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그동안 못 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어요. 항공권도 그렇게 끊어놨었어요. 그런데 한국에 있는 동안 마음이 바뀌었어요. 뉴델리를 건너뛰고 한국에서 미국으로 곧장 돌아가는 표로 바꿔버렸어요. 일부러 항공권을 재발권까지 하면서요. 그때는 그게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경유 한 번 빼는 정도니까요. 오히려 일정이 단순해져서 잘한 선택이라고 여겼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 결정이 그 여행에서 제가 내린 가장 후회되는 선택이었어요. 그렇게 쉽게 바꿀 일이 아니었는데, 저는 너무 가볍게 표를 바꿨어요.하.. 2026. 7. 24. 경유지에서 입국 심사를 두 번 받은 날 경유지니까 그냥 갈아타면 되는 줄 알았어요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함께 다녀오기로 하고 일정을 짰어요. 두 곳 중 스코틀랜드를 먼저 보기로 한 데는 이유가 있었어요. 제가 사는 시카고에서 에든버러로 가는 직항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더블린을 경유지로 삼았어요. 시카고에서 더블린까지 가서 세 시간을 기다렸다가 에든버러로 넘어가고, 스코틀랜드에서 사흘을 보낸 뒤 다시 더블린으로 와서 사흘을 더 있다가 시카고로 돌아오는 일정이었어요. 항공권도 시간대가 괜찮고 값도 나쁘지 않은 걸로 골랐어요. 여기까지는 여느 여행 준비와 다를 게 없었어요. 저는 더블린이 경유지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비행기만 갈아타는 곳이니 여권 검사도 없이 바로 다음 게이트로 가면 되고, 입국 심사는 최종 목적지인 스코틀랜드에서 하겠거니 했어요.. 2026. 7. 23. 만료일을 적지 않은 프로모션 광고 천 달러에 만들어드립니다웹사이트 제작 일을 시작하면서 처음 낸 광고 문구가 그거였어요. 천 달러에 만들어드립니다. 프로모션이라는 말도 붙였어요. 그때 저는 이 일로 이름이 알려진 것도 아니었고, 보여줄 만한 작업물도 몇 개 없었어요. 가격 말고는 내세울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효과가 있었어요.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몇 달 만에 손이 부족할 만큼 일이 들어왔어요. 그 시기에 만든 사이트들이 나중에 제 포트폴리오가 됐으니, 그 선택 자체는 지금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 광고에는 한 줄이 빠져 있었어요. 언제까지인지가 없었어요. 프로모션이라고 써놓고 끝나는 날을 정하지 않은 거예요. 그때는 그게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도 못 했어요. 일이 들어오는 게 급했지 언제 끝낼지는 생각할 겨를이.. 2026. 7. 22. 이전 1 ··· 4 5 6 7 8 9 10 ··· 3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