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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셋 & 웰니스 (Mindset & Wellness)

나흘째 한국어를 한마디도 안 한 걸 깨달았어요: 혼잣말로 채운 언어 감각

by wellnomadness 2026. 9. 14.

나흘째 한국어를 한마디도 안 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숙소에서 혼자 일하다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오늘 아침에 무슨 말을 했는지 떠올려봤는데, 전부 영어였어요.

달력을 거꾸로 세어봤어요. 마지막으로 한국어로 대화한 게 나흘 전이었어요. 가족과 짧은 영상통화를 한 게 마지막이었어요.

그 나흘 동안 카페 직원, 배달 기사, 클라이언트, 숙소 직원과 대화를 했지만 전부 영어였어요. 한국어를 쓸 상대가 아예 없었던 거예요.

이상하게도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갑자기 입이 근질거렸어요. 딱히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한국어로 뭔가 말하고 싶어졌어요.

혼잣말로 오늘 할 일을 한국어로 중얼거려봤어요. 그런데 단어가 바로 안 나오는 순간이 몇 번 있었어요. 분명 아는 단어인데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그 짧은 순간 서늘한 기분이 들었어요. 모국어인데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지 하는 생각이었어요.

평소 자주 쓰던 표현인데도 그 순간엔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영어 단어는 바로 떠오르는데 정작 한국어 단어가 안 나오니 그것도 이상한 기분이었어요.

거울 앞에서 몇 마디를 소리 내어 말해봤어요. 발음 자체는 문제없었는데, 문장을 이어가는 리듬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어요.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이런 일이 잦아졌어요

돌이켜보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어요. 몇 달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냥 넘어갔어요.

나라를 옮겨 다니며 혼자 일하다 보니 한국어를 쓸 일 자체가 원래 적었어요. 가족과의 통화, 가끔 만나는 한국인 여행자와의 대화 정도가 전부였어요.

그런데 최근 몇 달은 그마저도 더 줄었어요. 일이 바빠지면서 가족과의 통화도 짧아졌고, 한국인을 마주칠 일도 뜸해졌어요.

머릿속으로 생각할 때도 어느새 영어로 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숫자를 셀 때도, 할 일 목록을 적을 때도 자연스럽게 영어가 먼저 떠올랐어요.

처음엔 이걸 언어 실력이 늘었다는 신호로 좋게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국어 단어가 막히는 순간을 겪고 나니, 좋은 신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하는 동안 쓰는 전문 용어도 대부분 영어예요. 한국어로 이 일을 설명하려면 오히려 더 어색한 단어를 찾아야 하는 상황도 종종 있었어요.

한 번은 부모님께 요즘 하는 일을 설명하다가 적당한 한국어 단어가 안 떠올라 한참 버벅인 적도 있어요. 평소 익숙하게 쓰던 개념인데 막상 한국어로 옮기려니 말문이 막혔어요.

전화를 끊고 나서 그 단어를 검색해봤어요. 뜻은 다 아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안 나왔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어요.


뉴스를 봐도 예능을 봐도 채워지지 않았어요

일단 한국 뉴스 앱을 켜서 기사를 몇 개 읽어봤어요. 눈으로 읽는 건 문제없었는데, 그게 실제 대화와는 또 다른 감각이었어요.

예능 프로그램도 하나 틀어봤어요. 웃음 포인트에 같이 웃긴 했지만, 그것도 결국 듣기만 하는 거지 제가 직접 말하는 건 아니었어요.

숙소 책상에 앉아 휴대폰으로 한국 뉴스를 보며 턱을 괴고 있는 남성의 옆모습

뭔가 허전한 느낌이 계속 남았어요. 듣는 것과 말하는 것 사이에 이렇게 큰 차이가 있는지 예전엔 몰랐어요.

결국 참지 못하고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어요. 딱히 급한 용건은 없었는데, 그냥 한국어로 대화하고 싶어서였어요.

친구는 갑자기 왜 연락했냐고 물었어요. 사정을 설명하니 웃으면서도, 그 마음이 뭔지 알 것 같다고 했어요.

그 대화 몇 마디를 나누고 나서야 마음이 좀 놓였어요. 텍스트로 주고받은 짧은 메시지였는데도 효과가 있었어요.

그 뒤로도 한참을 그 친구와 실없는 얘기를 주고받았어요. 딱히 중요한 내용은 없었는데도, 그 시간 동안은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어요.

텍스트로 주고받는 것과 실제로 목소리를 내어 말하는 건 또 다르다는 것도 그날 느꼈어요. 다음엔 꼭 통화로 이 답답함을 풀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언어가 마음의 습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일을 겪으면서 언어가 단순한 소통 도구만은 아니라는 걸 새삼 느꼈어요. 모국어로 말할 때와 외국어로 말할 때, 같은 내용이어도 마음에 남는 무게가 달랐어요.

영어로는 업무를 처리하고 필요한 걸 요청하는 게 문제없어요. 그런데 그날 기분이 어땠는지, 뭐가 서운했는지 같은 이야기는 한국어로 할 때 훨씬 편했어요.

감정을 담는 언어와 일을 처리하는 언어가 저에게는 나뉘어 있었던 거예요. 그동안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지냈을 뿐이에요.

한국어를 오래 안 쓰면 그 감정을 담을 그릇 자체가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었어요.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마음 한구석이 건조해지는 것과 비슷했어요.

그렇다고 영어로 사는 삶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두 언어 사이의 균형이 너무 한쪽으로 기울면 저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채 뭔가 놓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주변에 오래 해외 생활을 한 분들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다들 비슷한 시기를 겪었다고 했어요. 어떤 분은 몇 년째 이 균형을 못 찾고 있다고도 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은 한국어로 길게 말해요

그 뒤로 규칙을 하나 만들었어요. 일주일에 최소 한 번은 한국어로 30분 이상 통화하는 거예요. 용건이 없어도 그냥 안부 통화를 걸어요.

한국어로 일기를 쓰는 습관도 다시 만들었어요. 하루 몇 줄이라도 한국어로 생각을 정리하면, 그날은 확실히 단어가 안 막혀요.

한국 팟캐스트도 일부러 챙겨 들어요. 듣기만 하는 거지만, 그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더라고요. 설거지하거나 걸을 때 틀어두면 자연스럽게 귀가 한국어 리듬에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가끔은 혼자 있을 때 일부러 소리 내어 한국어로 혼잣말을 해요. 처음엔 어색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입이 풀리는 느낌이 있었어요.

이 습관들을 시작한 지 몇 주 됐는데, 예전처럼 단어가 안 나와서 당황하는 일은 확실히 줄었어요.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지만요.


이제는 한국어 쓰는 시간을 챙겨요

그 나흘이 아니었다면 저는 계속 모르고 지냈을 거예요. 언어가 이렇게 조용히,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멀어질 수 있다는 걸요.

지금은 일정표에 아예 한국어 통화 시간을 표시해뒀어요. 다른 일정처럼 미리 정해두지 않으면 또 흐지부지될 걸 알았으니까요.

완벽하게 균형을 맞추는 건 어려워요. 그래도 최소한 나흘, 닷새씩 한국어를 안 쓰고 지나가는 일은 이제 없어요.

모국어를 잃어버릴까 봐 걱정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요. 그 낯선 걱정이 오히려 저에게 한국어를 더 소중히 여기게 만들어준 셈이에요. 요즘은 한국어로 편하게 웃고 떠드는 그 몇 십 분이 하루 중 가장 편안한 시간이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