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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셋 & 웰니스 (Mindset & Wellness)

화는 대개 다른 데서 와요

by wellnomadness 2026. 7. 30.

저는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저는 오랫동안 제가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웬만한 일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편이고, 누가 무례하게 굴어도 그 자리에서 맞받아치기보다 속으로 삭이는 쪽이었어요. 주변에서도 저를 순한 사람으로 봤고, 저도 그런 제 모습이 싫지 않았어요. 다투는 걸 워낙 싫어해서, 웬만하면 제가 조금 손해 보고 마는 게 편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화라는 감정이 저와는 좀 거리가 있는 거라고 여겼어요. 화를 못 참는 건 성격이 급한 사람들 이야기지, 저 같은 사람의 일은 아니라고요. 그런데 낯선 곳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는 화를 안 내는 사람이 아니라, 그동안 화날 일이 별로 없는 환경에 있었던 것뿐이더라고요. 익숙한 곳을 벗어나니 참고 있던 것들이 자꾸 밖으로 삐져나왔어요.


그날 저는 결국 소리를 냈어요

한번은 어떤 행정 처리를 하느라 며칠을 헤맨 적이 있어요. 낯선 나라에서 서류 하나를 처리하는 일이었는데, 갈 때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제 온 사람은 이 서류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오늘 온 사람은 그게 아니라고 했어요. 그렇게 세 번째로 같은 창구를 찾아간 날, 담당자가 또 다른 서류를 가져오라고 했어요. 순간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어요. 아니, 지난번엔 이게 된다고 했잖아요, 하고 언성을 높인 거예요. 사실 그 사람은 그날 처음 본 직원이었어요. 앞서 저에게 잘못 안내한 사람도 아니었고요. 그런데도 저는 눈앞에 있는 그 사람에게 쏘아붙이고 말았어요. 며칠 동안 쌓인 게 하필 그 사람 앞에서 터진 거예요. 말을 내뱉는 순간에도 이건 이 사람 잘못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미 화는 입 밖으로 나온 뒤였어요. 주변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어요. 낯선 나라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외국인이라니, 저조차도 낯선 제 모습이었어요. 평소의 저라면 절대 안 했을 행동을, 그날은 저도 모르게 하고 있었어요.

관공서 창구 앞에서 답답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


화를 낸 뒤가 더 힘들었어요

문제는 화를 내고 난 다음이었어요. 그 순간에는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어요. 오히려 더 불편했어요. 제 언성에 그 직원의 표정이 굳는 걸 봤는데, 그 얼굴이 하루 종일 마음에 걸렸어요. 게다가 화를 냈다고 일이 풀린 것도 아니었어요. 서류는 여전히 안 됐고, 저는 결국 그 서류를 다시 떼러 가야 했어요. 얻은 건 아무것도 없고, 낯선 사람에게 못난 모습만 보인 셈이었어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계속 그 장면이 떠올랐어요. 왜 그랬을까, 그렇게까지 할 일이었을까 싶었어요. 화를 낸 저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평소에 순하다고 생각하던 제 안에 그런 날 선 모습이 있었다는 게 저에게도 놀라웠고요. 그날 저는 잠자리에 누워서도 한참을 뒤척였어요.


사실 그 사람 때문이 아니었어요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그 일을 차분히 돌아봤어요. 그러자 분명해진 게 하나 있었어요. 제가 그날 낸 화는 사실 그 직원 때문이 아니었어요. 그 사람은 그냥 마지막 한 방울이었을 뿐이에요. 진짜 원인은 며칠 동안 쌓인 다른 것들이었어요. 말이 안 통하는 곳에서 똑같은 일로 세 번을 오간 피로,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막막함, 이 간단해 보이는 일 하나를 제 힘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이요. 그 감정들이 며칠 동안 안에서 조용히 차오르고 있었는데, 저는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아주 작은 자극에 한꺼번에 넘쳐버린 거예요. 돌이켜보면 화가 난 대상과 화의 진짜 원인이 서로 달랐어요. 저는 그 직원에게 화를 냈지만, 정작 화가 난 건 제 상황에 대해서였어요. 그걸 알고 나니 그 직원에게 더 미안해졌어요.


이제는 신호를 먼저 알아채요

그 일이 있고 나서 제가 달라진 게 있다면, 화 자체를 안 내게 된 건 아니에요. 저는 여전히 화가 나요. 다만 이제는 그 화가 진짜 어디서 오는지를 조금 더 빨리 짚어보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화가 터지기 전에 오는 신호도 함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짧아지고, 별것 아닌 일에 자꾸 예민해질 때가 있어요. 예전에는 이런 상태를 그냥 지나쳤는데, 지금은 아 내가 지금 위험하구나 하고 알아차려요. 그런 신호가 느껴지면 그 자리를 잠깐 벗어나요. 창구에서 화가 치밀 것 같으면 일단 밖에 나가 바람을 쐬고, 물을 한 잔 마시고 다시 들어가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 잠깐의 틈이 꽤 큰 차이를 만들어요. 그 몇 분 사이에 대체로 화의 정점이 지나가거든요. 화를 참는 게 아니라, 화가 넘칠 자리에서 잠깐 비켜서는 거예요. 참는 것과 비켜서는 건 좀 달라요. 참기만 하면 그건 안에 그대로 남아서 다음에 더 크게 터지는데, 잠깐 몸을 빼서 숨을 고르고 나면 그 감정이 한풀 꺾여요. 저에게는 억지로 누르는 것보다 이 편이 훨씬 쉬웠어요.

건물 밖으로 나와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모습


화는 대개 다른 데서 와요

그 일을 겪은 뒤로 저는 화가 날 때 한 가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요. 지금 내가 정말 이 사람, 이 일에 화가 난 걸까, 하고요. 대부분은 아니더라고요. 눈앞의 일은 마지막 한 방울일 때가 많고, 진짜 원인은 며칠 전부터 쌓여 있던 피로나 걱정, 아니면 그냥 배가 고프거나 잠이 부족한 것일 때도 있어요. 그걸 알아차리면 눈앞의 사람에게 쏟아붓는 대신, 정작 손봐야 할 게 뭔지가 보여요. 며칠 무리했으면 쉬어야 하고, 막막한 일이 있으면 그걸 작게 쪼개서 하나씩 처리해야 하는 거예요. 화를 낸다고 그게 해결되지는 않아요. 화는 그저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알려주는 신호에 가까웠어요. 저는 그 신호를 눈앞의 사람에게 쏟는 데 쓰지 않고, 진짜 문제를 들여다보는 데 쓰려고 해요. 아직도 완벽하게 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낯선 사람 앞에서 못난 모습을 보이는 일은 확실히 줄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