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내내 제 얼굴을 보고 있었어요
화상 회의를 하다가 문득 알아차렸어요. 상대가 말하는 동안 제가 화면 구석에 있는 제 얼굴을 보고 있었어요.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회의 내내 그랬어요. 상대를 보다가도 시선이 자꾸 그쪽으로 갔어요.
그러고 나서 며칠 신경 써서 봤는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한 시간짜리 회의에서 제가 제일 오래 본 게 제 얼굴이었어요.
이게 몇 년째였을 텐데 그동안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녹화된 회의를 다시 본 날에 확실해졌어요. 제 시선이 화면 아래쪽으로 자꾸 내려가 있었어요. 상대를 안 보고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게 상대에게도 보였을 거예요. 눈이 다른 데를 보고 있으면 티가 나잖아요. 집중을 안 하는 사람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보고 있으면 신경이 그쪽으로 가요
문제는 보고 있으면 거기에 신경이 쓰인다는 거예요.
머리가 눌렸나, 표정이 굳었나, 뒤에 뭐가 보이나 하는 것들이요. 말하는 중간에도 그런 게 눈에 들어와요.
그러면 말하면서 동시에 제 모습을 관리하게 돼요. 내용을 생각하면서 표정도 신경 쓰는 상태가 되는 거예요.
그게 얼마나 나눠 쓰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회의가 끝나면 유난히 피곤했던 이유가 그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실제로 대면 회의에서는 이런 게 없어요. 마주 앉으면 제 얼굴은 안 보이니까요. 몇 시간을 이야기해도 제 표정을 확인할 일이 없어요.
자세도 그래요. 화면에 제가 보이니까 계속 고쳐 앉게 돼요. 어깨를 펴고 각도를 맞추고요. 한 시간 동안 그러고 있으면 그것만으로 피곤해요.
조명도 마찬가지였어요. 어두워 보이면 신경이 쓰여서 회의 중에 자리를 옮긴 적도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상대는 신경도 안 썼을 텐데요.
영어로 하는 회의에서는 더 심했어요. 말하는 것만으로도 신경 쓸 게 많은데 제 표정까지 관리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 날은 끝나고 나면 확실히 지쳐 있었어요.
그래서 제 화면을 껐어요
그러다 제 모습만 안 보이게 하는 설정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카메라는 켜두고 제 화면에서만 저를 숨기는 거예요.
상대에게는 그대로 보여요. 저만 안 보는 거예요. 처음에는 이게 불안했어요. 제가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는 채로 말하는 게 어색하더라고요.
그런데 며칠 지나니 편해졌어요. 그리고 회의가 달라졌어요. 상대 얼굴을 훨씬 오래 보게 됐어요.
상대가 말할 때 표정이 어떤지, 어디서 잠깐 멈추는지가 보여요. 예전에는 그걸 놓치고 있었어요. 제 얼굴을 보느라고요.
그리고 제 말도 좀 달라졌어요. 어떻게 보일지를 안 신경 쓰니까 내용에만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찾아보니 대부분의 프로그램에 그 기능이 있었어요. 이름만 조금씩 다를 뿐이에요. 몇 년을 쓰면서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어요.
끄고 나서 처음 한두 번은 손이 자꾸 그쪽으로 갔어요. 다시 켜서 확인하고 싶더라고요. 며칠 지나니 그 마음도 없어졌어요.
상대가 여러 명인 회의에서 특히 좋았어요. 화면에 사람이 많으면 제 얼굴도 그중 하나로 작게 있잖아요. 그런데도 그 작은 걸 계속 봤거든요. 없애고 나니 다른 분들 얼굴이 다 들어왔어요.

화면이 유일한 거울이었어요
왜 그렇게 봤을까를 생각해 봤는데 짚이는 게 하나 있어요.
저는 하루 종일 혼자 있어요. 누가 제 표정을 봐줄 일이 없어요. 그러니 회의 화면이 하루 중에 저를 보는 거의 유일한 자리인 거예요.
숙소에 큰 거울이 없는 경우도 많아요. 몇 달 사는 곳마다 다르니까요. 그러다 보면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화면으로 확인하게 돼요.
그게 확인이면 괜찮은데 회의 중에 계속하는 건 다른 문제잖아요. 일하는 자리에서 그걸 하고 있었던 거예요.
지금은 회의 전에 잠깐 확인하고 시작해요. 카메라를 켜고 한 번 보고 나서 제 화면을 끄는 거예요. 그러면 확인은 되고 회의 중에는 안 보게 돼요.
이동하면 거울이 더 없어요. 어떤 숙소는 욕실에 작은 것 하나가 전부예요. 그러니 제 모습을 볼 일이 거의 없고, 그 결핍이 회의 화면으로 몰린 것 같아요.
그리고 몸이 안 좋은 날에는 그 화면이 더 신경 쓰여요. 안색이 안 좋아 보이면 그것만 눈에 들어와요. 그런 날은 아예 안 보는 게 나았어요.
뒤에 뭐가 보이는지도 그만 신경 써요
배경도 비슷했어요. 몇 달마다 방이 바뀌니까 회의 때마다 뒤가 달라져요.
한동안은 그게 신경 쓰여서 벽 쪽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배경을 가리는 걸 썼어요. 그런데 그것도 일이더라고요. 새 숙소에 갈 때마다 다시 정해야 하니까요.
그러다 어느 날 그냥 뒀어요. 침대가 조금 보이는 채로 회의를 했어요. 아무도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몇 번 더 해보고 알았어요. 신경 쓰는 건 저뿐이었어요. 상대는 제 얼굴을 보지 뒤를 안 봐요.
지금은 지저분하지만 않으면 그대로 해요. 대신 소리는 신경 써요. 그건 실제로 상대에게 영향을 주니까요.
옷도 그래요. 상의만 보이니까 그것만 신경 쓰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러다 보면 회의 전에 갈아입는 게 또 하나의 일이 돼요. 지금은 평소 입는 걸로 그냥 해요.
듣는 자리에서는 아예 꺼요
한 가지 더 정한 게 있어요. 제가 말할 차례가 거의 없는 회의에서는 카메라를 아예 꺼요.
여러 명이 듣는 자리에서 저까지 화면에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끄면 저도 편하고 상대 화면도 덜 복잡해져요.
처음에는 실례일까 봐 망설였어요. 그런데 미리 한마디 해두면 아무 문제가 없더라고요. 이동 중이라거나 인터넷이 불안정하다고 하면 다들 그러려니 하세요.
실제로 이동이 잦으니 그게 거짓말도 아니에요. 숙소 인터넷이 약한 날에는 화면을 끄는 게 회의 자체를 위해서도 나아요.
이렇게 나누고 나서 회의가 있는 날이 덜 부담스러워졌어요. 모든 회의에 제 얼굴을 걸어둘 필요가 없다는 걸 몰랐던 거예요.
그리고 카메라를 끄면 다른 일을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서 듣기만 해도 되는 자리에서만 꺼요. 제가 말해야 하는 회의에서는 켜두고요.
시차가 안 맞는 시간대의 회의도 그래요. 제 쪽이 늦은 밤이면 화면에 나오는 제 얼굴이 확실히 지쳐 보여요. 그걸 보면서 말하면 실제보다 더 피곤해지더라고요.
보면서 하는 대화는 대화가 아니었어요
정리하면 이래요. 저는 몇 년 동안 저를 보면서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했어요. 화면에 있으니까요. 그런데 원래 대화는 상대만 보면서 하는 거잖아요. 제 얼굴이 옆에 떠 있는 상태는 사람이 원래 겪던 조건이 아니에요.
그 상태에서 몇 년을 지냈으니 회의가 더 피곤했던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어요. 저는 그걸 화면을 오래 봐서라고만 생각했고요.
지금은 회의가 확실히 덜 힘들어요. 시간이 줄어든 것도 아니고 상대가 바뀐 것도 아닌데요.
이 변화가 다른 데로도 번졌어요. 사진을 찍힐 때도 예전보다 덜 신경 써요. 어차피 제가 계속 볼 것도 아니고, 남들도 저를 그렇게 자세히 안 보더라고요.
혹시 화상 회의만 하고 나면 유난히 지치신다면, 그 시간에 어디를 보고 계셨는지 한번 떠올려보시면 좋겠어요. 저는 제 얼굴을 안 보게 된 것만으로 꽤 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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