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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셋 & 웰니스 (Mindset & Wellness)

결과지에 화살표가 하나 떴어요: 먹는 걸 다 적어보고 알게 된 것

by wellnomadness 2026. 4. 25.

결과지에 화살표가 하나 있었어요

몇 년 전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았는데 항목 하나에 화살표가 붙어 있었어요. 기준 범위를 살짝 벗어났다는 표시였어요. 크게 벗어난 건 아니고 경계선 근처였어요. 나머지는 다 정상이었고요. 그래서 더 애매했어요. 확실히 나쁘면 바로 움직였을 텐데 이 정도면 그냥 넘어가도 되지 않나 싶은 크기였거든요.

그걸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술 때문인가였어요. 그런데 그 시기에 술을 거의 안 마시고 있었어요. 그다음에 떠오른 건 운동을 안 해서, 잠을 못 자서 같은 것들이었어요. 짐작만 늘어나고 답은 안 나왔어요.

예전 같으면 여기서 검색을 시작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고 진료 예약을 잡았어요. 검색으로 좁혀지는 게 없다는 걸 몇 번 겪고 나서 생긴 습관이에요. 결과적으로 이게 잘한 선택이었어요.


먹는 걸 다 적어 갔어요

진료 전에 준비하면서 뭘 챙겨 먹고 있는지 목록을 만들었어요. 물어볼 것 같아서 미리 적어둔 거예요. 그런데 적으면서 좀 놀랐어요. 생각보다 개수가 많았거든요.

그냥 통을 세어보면 몇 개인지는 알아요. 그런데 목록으로 적으니 다르게 보였어요. 하나씩 이름을 쓰다 보니 제가 이걸 왜 먹기 시작했는지 기억 안 나는 게 여럿 있었어요. 언제부터 먹었는지도 흐릿했고요.

여기에 종합 영양제처럼 여러 성분이 한꺼번에 들어 있는 것도 있었어요. 그러니 실제로 몸에 들어가는 항목은 통의 개수보다 훨씬 많았던 거예요. 저는 그때까지 통 단위로만 세고 있었어요.

적는 것 자체도 생각보다 번거로웠어요. 통 앞면에 크게 적힌 건 대개 상품 이름이라 그걸 옮겨 적어도 소용이 없더라고요. 뒷면을 봐야 실제로 뭐가 들었는지 나오는데, 어떤 건 목록이 길어서 다 옮기기 어려웠어요. 결국 통 뒷면을 사진으로 찍어두는 쪽으로 정리했어요. 필요할 때 그 사진을 보여주면 되니까요.

책상에 늘어놓은 여러 개의 영양제 통과 그 옆에 손으로 적은 목록


답을 못 한 질문들이 있었어요

진료실에서 목록을 보여드렸더니 질문이 이어졌어요. 이건 얼마나 드시냐, 언제부터 드셨냐, 이 둘은 같이 드시냐 같은 것들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상당수에 제대로 답을 못 했어요.

특히 겹치는 성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몰랐어요. 각각을 따로 사서 따로 먹고 있었으니 그 안에 같은 게 중복으로 들어 있는지 확인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종합 영양제와 개별 제품을 같이 먹으면 그럴 수 있다는 이야기를 그때 들었어요.

그 자리에서 확실해진 게 하나 있어요. 저는 제 몸에 뭐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모르는 상태로 몇 년을 지냈다는 거예요.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 반대였어요. 늘리기만 했지 파악한 적이 없었어요.

이동하며 사는 것도 한몫했어요. 한국에 갔을 때 산 것, 미국에서 산 것, 다른 나라에서 눈에 띄어 담은 것이 섞여 있었거든요. 표기된 언어도 다르고 적는 방식도 달라서 나란히 놓고 비교하기가 어려웠어요. 같은 게 이름만 다르게 적혀 있어도 저는 알아볼 수가 없었고요. 한곳에서만 샀으면 이 정도로 뒤엉키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한꺼번에 끊지는 않았어요

그날 나온 결론은 몇 가지를 정리해 보자는 것이었어요. 다만 전부 끊는 게 아니라 순서를 정해서 줄이는 방식이었어요. 그리고 얼마 뒤에 다시 확인해 보자고 했고요.

이 부분이 저에게는 좀 의외였어요. 저는 문제가 있으면 다 끊으라고 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러면 뭐가 영향을 준 건지 알 수 없게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한꺼번에 바꾸면 원인을 못 찾는다는 건 다른 일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라 기억에 남았어요.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순서를 제가 정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뭘 먼저 빼고 뭘 남길지는 제 판단 영역이 아니었어요. 인터넷에서 이런 걸 정하는 방법을 찾아본 적도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안 하기를 잘했어요.


다시 확인했을 때

몇 달 뒤에 다시 검사를 받았어요. 그 항목은 범위 안으로 들어와 있었어요. 다행이었죠. 그런데 이게 정리한 것 덕분인지는 저도 확실히 모르겠어요. 그 사이에 다른 것도 여럿 바뀌었거든요.

그 시기에 일이 좀 한가해져서 잠을 더 잤고, 외식이 줄었고, 걷는 시간도 늘었어요. 변수가 하나가 아니었어요. 그러니 무엇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가 없어요. 저는 이런 걸 판단할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고요.

다만 확실한 건 하나 있어요. 확인을 받았다는 것 자체예요. 숫자가 어떻게 됐든 그건 제가 혼자 짐작해서 알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결과지에 화살표를 보고 몇 달 걱정만 하다 넘어갔다면 지금도 몰랐을 거예요.

그 몇 달을 돌아보면 마음도 편치 않았어요. 큰일은 아닐 거라고 스스로 다독이면서도 문득문득 떠올랐거든요. 결과지를 서랍에 넣어두고 안 보려고 했는데 그게 더 신경 쓰였어요. 확인하고 나서 제일 크게 달라진 건 숫자가 아니라 그 생각이 사라진 거였어요.


지금은 목록으로 관리해요

이 일 이후로 생긴 습관이 있어요. 챙겨 먹는 걸 목록으로 적어두는 거예요. 이름,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 왜 먹는지를 한 줄씩 적어요. 새로 추가하면 목록에도 추가하고, 그만두면 지워요.

이걸 하니까 두 가지가 달라졌어요. 하나는 왜 먹는지 설명할 수 없는 걸 애초에 안 사게 됐어요. 목록에 한 줄을 채워야 하는데 그 칸이 안 채워지면 사면서도 이상하니까요. 다른 하나는 진료받을 때 그냥 이 목록을 보여주면 된다는 거예요. 매번 기억을 더듬을 필요가 없어요.

이동이 잦으니 병원도 계속 바뀌는데, 이 목록이 있으면 처음 만나는 분에게도 상황을 빠르게 전달할 수 있어요. 새로 처방을 받을 일이 생기면 이걸 먼저 보여드리고요. 같이 먹어도 되는지는 저 대신 그쪽에서 판단해 주시니까요.

부모님께도 같은 걸 부탁드렸어요. 연세가 있으시면 챙겨 드시는 게 더 많고, 처방받은 약까지 있으니 저보다 복잡하거든요. 통화할 때 지금 뭘 드시는지 여쭤봤는데 그 자리에서 다 못 세시더라고요. 그래서 다음에 병원 가실 때 통을 사진으로 찍어 가시라고 말씀드렸어요. 멀리 있으니 제가 대신 정리해 드릴 수는 없고, 이런 방법이라도 전해드리는 게 최선이었어요.


몸에 들어가는 건 세어봐야 해요

돌아보면 제가 놓친 건 성분이나 제품에 관한 지식이 아니었어요. 그냥 세어보지 않았던 거예요. 하나씩 더할 때는 다 이유가 있었고 각각은 작았는데, 합쳐놓고 본 적이 없었어요.

이건 몸에 관한 일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돈은 통장에 숫자로 찍히니까 합계가 보이는데, 몸에 들어가는 건 어디에도 안 남거든요. 제가 적지 않으면 아무 기록이 없어요. 그러니 늘어나는 걸 알아차릴 방법이 없는 거예요. 게다가 하나씩 늘어날 때는 늘 그럴듯한 이유가 붙어 있어서 더 그래요.

혹시 여러 가지를 챙겨 드시고 있다면 한 번 목록으로 적어보시길 권해요. 그리고 그 목록을 다음 진료 때 가져가 보세요. 겹치는 게 있는지, 지금 드시는 약과 같이 먹어도 되는지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더라고요. 저는 결과지에 화살표가 뜨고 나서야 그걸 알았는데, 그전에 했으면 더 좋았을 일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