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동안 몇 마디나 했는지 세어봤어요
어느 날 문득 궁금해서 세어봤어요. 그날 제가 소리 내어 말한 게 몇 마디였는지요. 커피를 살 때 주문한 것, 배달 온 사람과 나눈 인사, 그게 전부였어요. 화상 회의가 없는 날이었거든요. 다음 날도 비슷했고 그다음 날도 그랬어요.
그때까지 저는 제가 외롭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일이 바빴고, 낮에는 메시지와 메일로 사람들과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건 글자였지 말이 아니었어요. 하루 종일 대화 같은 걸 했는데 정작 목소리를 낸 시간은 몇 분도 안 됐던 거예요.
숫자로 보니까 확실히 이상했어요. 감정으로 느낄 때는 그냥 좀 조용한 시기려니 했는데, 세어보니 이건 시기의 문제가 아니라 제 생활 구조의 문제였어요. 지금 사는 방식대로면 아무 일이 없어도 말할 일이 안 생기게 되어 있었어요. 누가 저를 멀리한 것도 아니고 제가 사람을 피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되어 있더라고요.
두 종류의 자리가 있더라고요
그 뒤로 몇 년에 걸쳐 여러 도시에서 사람 만나는 자리에 나가봤어요. 그러면서 알게 된 게 있는데, 그 자리들이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는 거예요. 말하는 게 주된 활동인 자리와, 뭔가 다른 걸 하는 자리요.
앞쪽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목적인 모임이에요. 밋업이라고 부르는 것들, 공유 오피스의 교류 시간, 업계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요. 뒤쪽은 목적이 따로 있고 사람은 그 김에 만나는 자리예요. 같이 달리거나, 뭘 만들거나, 배우거나 하는 것들이요.
제 경우에는 뒤쪽만 남았어요. 앞쪽은 여러 번 나갔는데 두 번 이상 간 곳이 거의 없어요. 처음에는 제가 낯을 가려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 지나고 보니 그것보다 구조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말이 중심인 자리에서 있었던 일
말하는 게 주된 활동인 자리에 가면 대화의 처음이 늘 똑같아요. 무슨 일 하세요. 그러면 저도 답하고 상대에게 되묻고, 그다음에는 서로 상대가 나에게 쓸모가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간이 이어져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런 목적으로 모인 자리니까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문제는 제가 그 시간을 마치고 나오면 더 피곤했다는 거예요. 사람을 만나고 왔는데 충전이 안 되고 오히려 소모된 느낌이었어요. 두 시간 동안 계속 저를 설명하고 있었으니까요. 원래 부족했던 건 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아니라 그냥 사람 사이에 있는 시간이었는데, 그 자리는 다른 걸 채워줬어요.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 만난 사람은 거의 다시 안 보게 돼요. 한 번 만나 명함 같은 걸 주고받고 끝이에요. 몇 년 동안 그렇게 모은 연락처가 꽤 되는데 실제로 이어진 관계는 손에 꼽아요. 그게 그 자리 탓은 아니고, 애초에 제가 원한 게 그런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다른 걸 하는 자리가 편했어요
반대로 활동이 중심인 자리는 훨씬 오래 갔어요. 도시마다 달랐는데 같이 달리는 모임에 나간 적도 있고, 손으로 뭔가 만드는 수업에 등록한 적도 있어요. 공통점은 그 시간의 대부분을 말이 아니라 다른 걸로 채운다는 거예요.

이게 왜 편했냐면, 침묵이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말이 중심인 자리에서는 대화가 끊기면 그걸 메워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는데, 같이 뭘 하고 있으면 말이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하다가 자연스럽게 몇 마디 하고, 또 하던 걸 하고요. 하루에 필요한 말의 양은 그 정도로도 충분히 채워졌어요.
그리고 다음에 또 만나게 돼요. 그 활동이 계속되니까요. 세 번째쯤 마주치면 그때부터는 이름을 부르게 되고, 다섯 번째쯤에는 저번에 말한 그 일 어떻게 됐냐는 이야기가 나와요. 제가 노력해서 만든 관계가 아니라 그냥 같은 자리에 계속 있어서 생긴 관계예요.
찾는 방법은 도시마다 달랐어요. 어떤 곳은 도서관 게시판에 종이로 붙어 있었고, 어떤 곳은 운동용품 파는 가게에 안내가 있었어요. 동네 카페 벽에 전단이 붙어 있는 경우도 많고요. 검색으로 찾은 것보다 걸어 다니다 우연히 본 쪽이 훨씬 잘 맞았어요. 검색에 잘 나오는 모임은 대개 규모가 크고 사람이 계속 바뀌는데, 종이로 붙여두는 곳은 작고 오래된 모임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영어는 문제가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영어 때문에 못 나간다고 생각했어요. 말이 서툴러서 모임에서 겉돌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몇 년 해보니 그건 부차적인 문제였어요. 말이 중심인 자리는 영어가 유창해도 피곤했고, 활동이 중심인 자리는 말이 서툴러도 괜찮았어요.
오히려 말이 서툰 게 도움이 되는 면도 있었어요. 길게 설명할 수 없으니 짧게 말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듣는 시간이 길어져요. 사람들은 잘 들어주는 사람을 편하게 여기더라고요. 제가 의도한 건 아니고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된 건데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영어를 더 늘려서 모임에 나가겠다는 계획은 안 세워요. 대신 말을 많이 안 해도 되는 자리를 고르는 쪽으로 기준을 바꿨어요. 준비를 다 갖춘 다음에 시작하려고 하면 영영 시작을 못 하겠더라고요.
온라인으로는 대체가 안 됐어요
한동안은 이걸 화면으로 해결하려고 했어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인 온라인 모임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오랜만에 지인들에게 화상 통화를 걸기도 했고요. 나쁘지 않았어요. 다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어요.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다만 화면으로 하는 대화는 시작과 끝이 분명해요. 용건이 있어야 걸고, 용건이 끝나면 끊어요. 같은 공간에 있을 때 생기는 그 목적 없는 시간이 없어요. 별 의미 없는 말을 주고받거나 그냥 옆에 앉아 있는 시간이요. 저에게 부족했던 건 그쪽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화면 앞에 앉아서 하는 일이라 하루 종일 하던 것과 자세가 같아요. 일이 끝나고 다시 화면을 켜면 그게 쉬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지금은 온라인 쪽을 보조로만 써요. 멀리 있는 사람들과 끊기지 않게 유지하는 용도로는 좋은데, 그날의 말수를 채워주지는 못해요.
이제는 일정에 넣어둬요
도시를 옮기고 나면 며칠 안에 뭘 하나 정해요. 사람을 만나려고 정하는 게 아니라 그 활동을 하려고 정하는 거예요. 사람은 따라오면 좋고 아니면 말고요. 이렇게 생각하니까 나가기가 훨씬 쉬워졌어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일정표에 넣어둬요. 마음이 내킬 때 나가려고 하면 마음은 대체로 안 내켜요. 특히 일이 잘 안 풀리는 주에는 더 그렇고요. 그런데 그럴 때일수록 나갔다 오면 낫더라고요. 그래서 컨디션과 상관없이 정해진 날에 가는 것으로 정해뒀어요.
이걸로 외로움이 없어졌다고 말할 생각은 없어요. 여전히 조용한 주가 있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도시에서 몇 주를 보내기도 해요. 다만 그게 제 성격이나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니라 일정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된 뒤로는 훨씬 덜 힘들어요. 만약 이런 상태가 오래 이어지고 일상이 무너질 정도라면 그건 혼자 판단할 일이 아니니 전문가와 이야기해 보시는 게 맞고요. 저는 말수를 세어보는 것에서 시작했는데, 그 숫자를 아는 것만으로도 꽤 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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