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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셋 & 웰니스 (Mindset & Wellness)

한국에 갔더니 카페에서 일이 안 됐어요: 알아듣는 말이 제일 시끄러웠습니다

by wellnomadness 2026. 5. 22.

한국에 갔더니 일이 안 됐어요

오랜만에 한국에 갔을 때예요. 며칠 있는 동안에도 일은 해야 해서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어요.

그런데 진도가 안 나갔어요. 두 시간을 앉아 있었는데 평소 한 시간이면 하던 걸 못 끝냈어요.

이상했어요. 밖에서는 시끄러운 카페에서도 잘 앉아 있었거든요. 오히려 조용한 데보다 나은 날도 있었고요.

그날은 그냥 컨디션 문제라고 넘겼어요. 그런데 다음 날도 같았어요.

그날 결국 자리를 옮겼어요. 다른 카페로 갔는데 거기서도 비슷했어요. 두 군데를 돌고 나서 숙소로 돌아왔어요.

한국에 있는 며칠은 일정이 빠듯해서 그 시간을 놓치면 곤란했어요. 그래서 더 조바심이 났고요.


시차 탓인 줄 알았어요

처음에는 시차라고 생각했어요. 온 지 며칠 안 됐으니 그럴 만하잖아요.

그런데 시차가 풀리고 나서도 똑같았어요.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난 날에도 카페에만 앉으면 흐트러졌어요.

숙소에서 하면 괜찮았어요. 그래서 카페가 문제라는 건 알겠는데 왜인지를 몰랐어요. 소리 크기로 보면 밖에서 다니던 곳들이 더 시끄러웠거든요.

며칠 더 다녀보고 나서야 알아차렸어요. 제가 옆자리 대화를 다 듣고 있었어요.

먹은 것도 의심했어요. 오랜만이라 평소와 다른 걸 먹고 있었으니까요. 잠자리가 바뀐 것도 있고요. 짚이는 게 너무 많아서 하나로 좁혀지지가 않았어요.

일하는 시간대를 바꿔보기도 했어요. 아침 일찍 나가봤는데 그때는 좀 나았어요. 그런데 사람이 늘어나면서 다시 같아졌어요. 그때 사람 수와 관련이 있다는 것까지는 알았어요.


옆자리 이야기가 다 들렸어요

듣고 싶어서 들은 게 아니에요. 그냥 귀에 들어와요.

뒷자리에서 누가 회사 이야기를 하면 그 내용이 그대로 따라와요. 옆에서 누가 통화를 하면 무슨 상황인지가 저절로 그려지고요.

그러면 제 화면에 있던 문장에서 잠깐 떠나요. 몇 초 뒤에 돌아오는데 그 몇 초가 계속 반복돼요. 두 시간 동안 그러면 실제로 일한 시간은 얼마 안 되는 거예요.

밖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어요. 같은 크기의 소리가 옆에서 나도 그건 그냥 소리로 지나가요. 뜻이 안 붙으니까요.

그러니까 제가 몇 년 동안 시끄러운 데서도 잘 앉아 있었던 건 제 집중력이 좋아서가 아니었어요. 그 말을 못 알아들어서였어요.

특히 잘 들리는 종류가 있어요. 누가 힘들어하는 이야기나 다투는 이야기요. 그런 건 훨씬 강하게 끌려요. 즐거운 이야기는 오히려 덜하고요.

제 이름이나 아는 지명이 나오면 그건 거의 반사적이에요. 몇 자리 떨어져 있어도 그 단어만 또렷하게 들려요. 뇌가 알아서 골라내는 것 같아요.

몇 년 만에 겪으니 더 크게 왔던 것 같기도 해요. 밖에서는 이런 자극이 없는 상태로 오래 지냈으니까요. 늘 한국에 계신 분들은 이미 걸러내는 데 익숙하실 거예요.

사람이 많은 카페 안쪽 자리에서 노트북을 앞에 두고 앉아 있는 모습


방해하는 건 크기가 아니라 뜻이었어요

이걸 알고 나니 그동안 겪은 것들이 설명됐어요.

공사 소리가 나는 곳에서는 일이 됐어요. 시끄럽긴 한데 알아들을 게 없으니까요. 반대로 조용한 공간에서 한국말이 한마디만 들려도 그쪽으로 고개가 돌아가요.

영어권에 오래 있으면서 영어도 조금씩 그렇게 되고 있어요. 예전에는 옆에서 영어로 떠들어도 소음이었는데 지금은 내용이 들리는 날이 있어요. 그런 날은 확실히 덜 집중돼요.

그래서 저는 알아듣는 정도와 방해받는 정도가 같이 간다고 생각해요. 언어를 잘하게 될수록 그 언어권에서 일하기가 조금씩 어려워지는 셈이에요.

이상한 이야기 같은데 저에게는 그랬어요. 잘 못 알아듣던 시절에는 어디서든 앉을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화상 회의도 비슷해요. 여러 명이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자리에 있으면 훨씬 피곤해요. 영어로 하는 회의보다요. 알아듣는 게 많으니 처리할 것도 많은 거겠죠.

반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권에서는 카페가 사무실처럼 편했어요. 그게 이 생활의 뜻밖의 장점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래서 듣는 걸 고르게 됐어요

대응은 단순해졌어요. 뜻이 붙는 소리를 안 듣는 거예요.

일할 때 가사 있는 노래를 안 틀어요. 한국 노래는 물론이고 영어 노래도요. 예전에는 좋아하는 걸 틀어놓고 일했는데 지금은 그 시간에 안 들어요.

대신 말이 없는 소리를 틀어요. 빗소리 같은 것도 되고 가사 없는 연주도 돼요. 중요한 건 그게 좋은 소리인지가 아니라 제가 해석할 게 없는 소리인지예요.

사람 목소리가 들어간 걸 틀어놓고 일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게 안 돼요. 몇 번 해봤는데 결국 그쪽을 듣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한국에 있을 때는 자리를 더 신경 써서 골라요. 사람이 적은 시간에 가거나 구석에 앉아요. 밖에서보다 조건을 까다롭게 봐야 하더라고요.

볼륨도 낮게 써요. 크게 틀면 그것대로 피곤하더라고요. 주변 소리를 완전히 덮는 게 아니라 조금 흐리게 만드는 정도면 충분했어요.


아무것도 안 듣는 날도 있어요

소리를 계속 쓰다 보니 반대쪽도 알게 됐어요. 몇 시간 이어서 뭘 듣고 있으면 저녁에 귀가 좀 뻐근해요.

그래서 하루 종일 켜두지는 않아요. 오전에 집중이 필요한 시간에만 쓰고 나머지는 그냥 있어요.

아무것도 안 듣는 날도 있어요. 그런 날은 주변 소리를 그냥 배경으로 두는데 그것도 괜찮아요. 매일 소리를 깔아야 일이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소리에 의존하게 되는 게 걱정이었어요. 그게 없으면 못 앉아 있는 상태가 되면 곤란하잖아요. 이동이 잦으니 늘 조건이 갖춰지는 건 아니니까요.

지금은 소리를 쓰는 날과 안 쓰는 날을 섞어요. 그러면 어느 쪽에도 매이지 않아요.

이동하는 날에는 아예 안 써요. 공항이나 기차에서는 안내 방송을 들어야 하니까요. 한 번 놓친 적이 있어서 그 뒤로는 그런 자리에서 귀를 막지 않아요.

그리고 이어폰을 끼고 있으면 주변에서 말을 걸어도 못 들어요. 몇 번 그런 적이 있어서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는 한쪽만 쓰거나 아예 안 써요.


모국어가 있는 곳이 제일 시끄러워요

정리하면 이래요. 저에게 제일 시끄러운 곳은 제가 알아듣는 말이 오가는 곳이에요.

소음의 크기로 자리를 고르던 때는 자꾸 틀렸어요. 조용해 보여서 갔는데 안 되고, 시끄러운데 잘된 날이 있었거든요. 기준이 잘못돼 있었던 거예요.

이건 밖에서 오래 산 사람에게만 생기는 조건인 것 같아요. 한국에 계속 사시는 분들은 모국어 소음 말고는 겪을 일이 없으니까요. 저는 그 반대 상태에 익숙해져 있었던 거고요.

그래서 한국에 갈 때는 일할 계획을 다르게 잡아요. 밖에서처럼 카페에 앉아 반나절을 보내는 건 안 된다고 보고 시작해요.

그래서 요즘 자리를 고를 때 보는 건 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어떤 말이 오가는지예요. 관광객이 많은 곳이 오히려 편할 때도 있어요. 여러 나라 말이 섞여 있으면 어느 것도 또렷하게 안 붙거든요.

혹시 어떤 날은 시끄러운 데서도 잘되고 어떤 날은 조용한 데서도 안 되신다면, 그 자리에서 오간 말이 알아듣는 말이었는지 한번 떠올려보시면 좋겠어요. 저는 몇 년 동안 소리 크기만 보고 있었어요. 기준을 바꾸고 나서야 자리를 제대로 고르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