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친구가 놀러 온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든 감정은 반가움이 아니었어요. 그 주에 마감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 생각을 한 제가 좀 별로였어요.
반가운데 계산이 먼저 됐다
연락을 받자마자 달력을 열었어요. 그 주에 뭐가 있는지, 며칠을 비울 수 있는지를 봤어요.
그러고 나서 좀 이상했어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인데 제가 일정부터 계산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어쩔 수가 없어요. 저는 여기서 살고 있는 거지 여행 중이 아니거든요. 친구가 오는 그 주에도 일은 그대로 있어요.
회사에 다니면 휴가를 내면 되잖아요. 저는 낼 데가 없어요. 안 하면 그만큼 밀리고 그건 다음 주로 넘어가요.
그래서 반가움과 부담이 같이 왔어요. 이 감정을 친구에게 말할 수는 없어서 그냥 좋다고만 했고요.
돌아보면 이게 제일 어려운 부분이에요. 멀리 사니까 자주 못 보는데, 막상 오면 온전히 시간을 못 내요. 그러면 미안한 마음이 남고요.
그리고 친구는 큰맘 먹고 오는 거잖아요. 시간도 돈도 들여서요. 그 무게를 아니까 더 부담이 됐어요.
항공권을 이미 끊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어요. 물어보고 정한 게 아니라 정해놓고 알려주는 방식이었는데, 그게 서운했다기보다 제 사정을 모를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밖에서 사는 사람의 하루가 어떤지는 겪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잖아요.
그리고 저도 제 사정을 잘 안 말했어요. 바쁘다고 하면 오지 말라는 뜻으로 들릴까 봐요. 그래서 괜찮다고만 했고, 그 괜찮다는 말이 나중에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었어요.
오는 시기도 제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친구는 휴가를 낼 수 있는 때에 오는 거니까요. 그게 제 일정이 제일 빡빡한 시기와 겹칠 수도 있는데 그건 아무도 어쩔 수 없어요.
몇 년에 한 번 있는 일이라 더 그래요. 자주 있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오랜만이니까 잘해주고 싶고 그 마음이 부담으로 바뀌더라고요.
한번은 그 주에 고객 일정이 갑자기 잡혔어요. 친구가 이미 비행기를 탄 뒤였고요. 결국 도착한 날 저녁에 몇 시간 보고 그다음 이틀을 거의 못 봤어요. 그때가 제일 미안했어요.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사이라 그 며칠 안에 몇 년 치를 나눠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어요. 실제로는 그게 안 되잖아요. 밥 먹고 걷다 보면 며칠이 그냥 가요.
여행 온 사람과 사는 사람은 시간표가 다르다
막상 만나고 나서 알게 된 게 있어요. 우리 둘의 하루가 완전히 다르게 굴러갔어요.
친구는 며칠뿐이니까 아침부터 밤까지 채우고 싶어 해요. 당연해요. 그 며칠을 위해 온 거니까요.
저는 오전에 일하고 오후에 나가야 해요. 그러면 친구는 오전을 혼자 보내게 돼요. 제 숙소에서 저를 기다리거나 혼자 나갔다 오거나요.
그게 며칠 이어지니까 서로 눈치를 보게 됐어요. 저는 일하는 게 미안하고 친구는 기다리는 게 미안하고요.
그리고 제가 이미 여러 번 가본 곳들을 다시 가는 것도 있어요. 친구에게는 처음이니까 좋은데 저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걸 티 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은근히 신경이 쓰였어요.
반대로 제가 좋아하는 동네 가게에 데려가면 친구는 시큰둥할 때가 있어요. 며칠 온 사람에게는 유명한 데를 가는 게 맞으니까요. 그것도 당연한 건데 그때는 조금 서운했어요.
그 며칠이 끝나고 친구를 보내고 나서 좀 지쳤어요. 좋았는데 지쳤다는 게 이상했어요.
돈 쓰는 감각도 달랐어요. 친구는 며칠이니까 좋은 데를 가고 싶어 해요. 저는 여기서 계속 살아야 하니까 평소 쓰던 만큼만 쓰고 싶고요. 계산할 때마다 이 차이가 조금씩 드러났어요.
체력도 달랐어요. 친구는 며칠만 버티면 되니까 무리해도 돼요. 저는 다음 주에도 여기서 일해야 하니까 그렇게 못 해요. 저녁에 먼저 들어가겠다고 말하는 게 매번 미안했어요.
그리고 제가 이 도시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몇 달 살면서 제가 다닌 곳은 몇 군데뿐이거든요. 친구가 물어보는 곳들을 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같이 찾아봤어요.
밥 먹는 것도 그래요. 친구는 며칠이니까 매 끼를 밖에서 먹고 싶어 하는데 저는 그러면 몸이 힘들어요. 그래서 몇 번은 숙소에서 해 먹자고 했는데, 그게 성의 없어 보였을까 봐 신경이 쓰였어요.
밤에도 차이가 났어요. 친구는 늦게까지 있고 싶어 하고 저는 다음 날 오전에 일이 있으니 일찍 들어가야 해요. 그 시간을 맞추는 게 며칠 내내 조금씩 어긋났어요.
헤어지고 나서 며칠은 방이 유난히 조용했어요. 며칠 동안 사람이 있다가 없어지니까요. 그 조용함이 오기 전보다 더 크게 느껴졌어요.

지금은 미리 정해두고 만난다
그 뒤로 몇 번 더 겪으면서 방식을 바꿨어요.
오기 전에 미리 말해요. 며칠 중에 어느 날이 통으로 되는지, 어느 날은 오후부터인지를요. 처음에는 이걸 말하는 게 야박해 보일까 봐 망설였는데 말하고 나니 서로 편했어요.
그리고 하루는 통으로 비워요. 아무리 바빠도 그 하루는 만들어요. 며칠 내내 조금씩 보는 것보다 하루를 온전히 같이 있는 게 훨씬 나았어요.
나머지 날은 각자 다녀요. 친구는 가고 싶은 데를 가고 저는 일을 해요. 그리고 저녁에 만나서 그날 뭘 봤는지 이야기해요. 이게 의외로 좋았어요.
숙소도 따로 잡으시라고 해요. 제 방에 같이 있으면 제가 일하는 걸 계속 보게 되잖아요. 그러면 둘 다 불편해요. 처음에는 이 말도 꺼내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미리 이야기해요.
그리고 유명한 곳은 혼자 다녀오시라고 해요. 저는 안내를 잘 못 해요. 몇 달 살아도 관광지는 안 가보는 경우가 많거든요. 대신 제가 아는 건 어디서 뭘 먹으면 좋은지 정도예요.
이렇게 나누고 나서 오히려 만나는 시간이 좋아졌어요. 서로 기대가 맞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일하는 동안 갈 만한 곳을 미리 알려드려요. 걸어서 갈 수 있는 데 몇 군데요. 그러면 친구도 혼자 있는 시간을 계획할 수 있어요. 기다리는 시간과 혼자 다니는 시간은 완전히 다르니까요.
통화를 미리 한 번 해요. 오기 전에 서로 뭘 기대하는지 맞춰보는 거예요. 관광을 하러 오는 건지 저를 보러 오는 건지에 따라 며칠의 모양이 완전히 달라지더라고요.
떠나는 날 배웅은 꼭 가요. 그건 일정을 어떻게든 비워요. 며칠 동안 제대로 못 챙긴 게 있어도 그 마지막에 같이 있으면 서로 마무리가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다음에 언제쯤 볼 수 있을지를 그 자리에서 이야기해요. 막연히 또 보자가 아니라 대략의 시기를요. 그러면 헤어지는 게 덜 무겁고요.
그리고 제가 안내를 잘 못 한다는 걸 미리 말해요. 몇 달 살아도 관광지는 안 가본 데가 많다고요. 그 말을 안 하면 친구는 제가 다 알 거라고 기대하게 되잖아요.
이렇게 바꾸고 나서 제일 좋았던 건 제 죄책감이 줄었다는 거예요. 못 해준 게 아니라 처음부터 그렇게 정한 거니까요. 정해두면 못 지킨 게 아니라 그대로 한 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누가 온다고 하면 예전만큼 부담스럽지 않아요. 반가움이 먼저 오고 계산은 그다음이에요. 순서가 바뀐 게 전부인데 그게 꽤 컸어요. 멀리 살면 만나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만나는 방식을 다시 정해야 하는 거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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