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언제 가냐는 말에 답을 못 한 적이 있어요. 상대는 인사처럼 물은 건데 저는 몇 초 동안 생각했어요. 어디를 말하는 건지 몰라서요.
집에 언제 가냐는 말에 답을 못 했다
그날 상대가 물은 건 한국이었어요. 오래 나와 있으니 언제 돌아가냐는 뜻이었죠. 흔한 질문이에요.
그런데 저는 잠깐 다른 걸 떠올렸어요. 그때 제가 머물던 방이요. 그날 밤에 돌아갈 곳은 거기였으니까요.
결국 웃으면서 아직 계획 없다고 답했어요. 그런데 그 질문이 며칠 남았어요. 답을 못 한 게 아니라 답이 여러 개였던 거예요.
비슷한 질문을 자주 받아요. 어디 사냐, 어디서 왔냐, 집이 어디냐요. 상황마다 다른 답을 하게 돼요.
서류에 적을 때, 처음 만난 사람에게 말할 때, 오래 알던 사람과 이야기할 때가 다 달라요.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에요. 다 사실이에요.
다만 어느 하나가 저를 대표하지 못해요. 그래서 매번 상대가 뭘 물었는지를 먼저 판단해야 해요. 그게 은근히 피곤해요.
짧게 답하고 싶은데 짧게 답하면 오해가 생겨요. 설명하자니 길어지고요.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 이야기로 10분을 쓴 적도 있어요.
그날 이후로는 상대가 왜 묻는지를 먼저 봐요. 대부분은 그냥 인사예요. 제 사정이 궁금한 게 아니라 대화를 여는 거예요.
그걸 알고 나서는 편해졌어요. 인사에는 인사로 답하면 되는 거였어요. 저는 그동안 매번 정확하게 답하려고 애쓰고 있었어요.
서류에 적는 건 또 다른 문제예요. 주소 칸이 하나인데 저에게 해당하는 게 여러 개거나 어느 것도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있어요. 몇 초 멈췄다가 제일 문제가 안 될 것 같은 걸 적어요. 그때마다 조금 어색해요.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는 그냥 한국이라고 답해요. 이건 헷갈릴 게 없어요. 그런데 그다음에 한국 어디냐고 물으시면 또 애매해져요. 태어난 곳과 자란 곳과 마지막으로 살던 곳이 다르거든요.
오래 알던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가 제일 편해요. 설명이 필요 없으니까요. 그분들은 제 사정을 아니까 지금 어디냐고만 물으시고 그걸로 끝나요. 그 짧음이 고마울 때가 있어요.
반대로 제일 어려운 건 서류를 처리하거나 계약을 할 때예요. 여기서는 애매한 답이 안 통해요. 하나를 정해서 적어야 하고 그게 근거가 돼요. 제 생활은 애매한데 서류는 그걸 못 받아주더라고요.
한 번은 상대가 제 답을 듣고 부럽다고 하셨어요. 어디든 갈 수 있어서 좋겠다고요. 그 말이 틀린 건 아닌데 그날은 좀 다르게 들렸어요. 갈 곳이 많은 것과 돌아갈 곳이 있는 건 다른 이야기니까요.
돌아갈 곳과 사는 곳이 갈라졌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생각해 봤어요. 처음 나왔을 때는 이런 게 없었어요. 집은 한국이고 저는 나와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나와 있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 관계가 뒤집혔어요. 어느 순간부터 한국에 가는 게 돌아가는 게 아니라 다녀오는 게 됐어요.
표현이 바뀐 시점이 분명히 있었어요. 제가 의식하고 바꾼 건 아니에요. 말하다 보니 그렇게 나오더라고요.
몇 년 만에 한국에 갔을 때 확실히 알았어요. 익숙한데 제 자리는 없더라고요. 다들 반겨주는데 제가 낄 일상이 없었어요.
그때 좀 서운했어요. 서운할 일이 아닌데도요. 제가 없는 동안 그곳의 시간도 흘렀다는 걸 그날 알았어요.
그렇다고 지금 사는 곳이 집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몇 달 뒤면 떠날 곳이잖아요. 짐도 다 안 풀어요.
여기 사람들도 저를 잠깐 있는 사람으로 알아요. 그래서 깊은 이야기는 잘 안 하게 되고요. 어차피 곧 갈 사람이니까요.
한동안 이 상태가 불편했어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게 자유롭기보다 붕 떠 있는 느낌이었어요. 특히 몸이 안 좋거나 일이 안 풀릴 때 그랬어요.
그런데 몇 년 지나면서 좀 달라졌어요. 이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제 조건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됐어요. 속할 곳을 못 찾은 게 아니라 속하는 방식이 다른 거예요.
이 감각은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특히 드러나요. 언제 들어오냐는 이야기가 나오면 저는 답을 미뤄요. 계획이 없기도 하지만 들어온다는 말 자체가 저에게는 정확하지 않게 느껴져서요.
명절이나 연말에 더 그래요. 다들 어디로 모이는데 저는 갈 데가 없어요. 그날 하루가 특별히 외롭다기보다 제가 어디에도 안 걸려 있다는 게 그날 눈에 보이는 거예요.
그래도 이 생활을 후회한 적은 없어요. 얻은 게 훨씬 많으니까요. 다만 이건 대가가 있는 선택이라는 걸 인정하는 데 몇 년이 걸렸어요. 좋은 점만 있는 줄 알고 시작했거든요.
그리고 아플 때 이게 제일 크게 느껴져요. 며칠 누워 있으면 여기가 내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몸이 괜찮을 때는 아무렇지 않던 게 그때는 다르게 다가와요.

지금은 집을 장소로 안 정한다
지금 제가 쓰는 기준은 이래요. 행정적으로는 주소가 하나 있어요. 서류에 적는 곳이고 우편물이 가는 곳이에요. 이건 그냥 기능이에요.
마음으로 정한 건 따로 있어요. 저는 집을 장소가 아니라 상태로 봐요.
짐을 풀고, 밥을 해 먹고, 다음 날 아침에 뭘 할지 아는 상태요. 그게 되면 그 방이 집이에요. 대개 며칠 걸려요.
그래서 도착하면 그 상태를 빨리 만들려고 해요. 몇 가지를 늘 가지고 다녀요. 물건 자체는 별거 아닌데 그게 놓이면 그 방이 제 방처럼 느껴져요.
반대로 이 상태가 안 만들어지는 곳도 있어요. 몇 주를 있어도 계속 남의 집 같은 곳이요. 그런 곳에서는 일도 잘 안 되더라고요.
한국에 대해서는 표현을 바꿨어요. 돌아간다고 안 하고 그냥 간다고 해요. 사소한데 이게 저에게 편해요.
돌아간다고 하면 못 돌아가고 있는 상태처럼 느껴지거든요. 그 말을 할 때마다 조금씩 마음에 걸렸어요.
그리고 한 곳은 정해뒀어요. 무슨 일이 생기면 갈 곳이요. 실제로 갈 일은 거의 없는데 그런 게 하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더라고요.
주변에 비슷한 분들을 만나면 이 이야기를 해요. 이 부분은 겪어본 사람끼리만 통해요. 한곳에 사는 분에게 설명하면 좋겠다는 반응이 돌아오는데, 그게 틀린 건 아니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요.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아직 안 정했어요. 언젠가 한 곳에 자리를 잡게 될 수도 있고 계속 이렇게 살 수도 있어요. 예전에는 이걸 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안 정해도 된다고 봐요.
다만 나이가 들면 이 방식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건 알아요. 그래서 그때를 위한 자리는 조금씩 생각해 둬요. 마음의 준비라기보다 실무적인 준비에 가까워요.
짐도 그 기준으로 정리해요. 어디에 두든 몇 년 안 열어볼 것 같으면 안 가지고 있어요. 물건이 있는 곳이 집이라고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안 봐요.
지금 사는 방을 대하는 태도도 바꿨어요. 어차피 몇 달이라고 대충 쓰지 않아요. 몇 달이어도 그동안은 제 집이니까요.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지내는 게 훨씬 편해졌어요.
이 질문에 깔끔하게 답할 수 있게 되지는 않았어요. 지금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답해요. 다만 답이 하나여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서 편해졌어요. 저는 이게 이 생활에서 제일 늦게 정리된 문제였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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