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을 받고 며칠을 답하지 못했어요
오래 알고 지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결혼한다는 소식이었고 날짜와 장소가 함께 적혀 있었어요.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는데 그 뒤로 바로 계산이 시작됐어요. 그 날짜에 제가 어느 나라에 있을지, 그때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다녀오려면 며칠이 필요한지요. 결론은 못 간다였어요.
그런데 답장을 며칠 못 보냈어요. 축하한다는 말은 바로 쓸 수 있는데 못 간다는 말을 어디에 어떻게 붙일지 모르겠더라고요. 길게 쓰면 변명 같고 짧게 쓰면 성의 없어 보일 것 같았어요. 그렇게 문장을 고르다가 며칠이 지나갔어요.
결국 늦게 답을 보냈고 친구는 괜찮다고 했어요. 실제로 괜찮았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 뒤로 한참 그 일이 걸렸어요. 못 간 것보다 며칠 미룬 게 더 마음에 남았어요. 축하한다는 말이 늦게 도착하면 그건 좀 다른 말이 되어버리거든요.
못 간 자리가 쌓이고 있었어요
돌아보니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어요. 밖에서 지낸 기간이 길다 보니 그사이에 친구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부모님을 보내드렸어요. 그중 제가 실제로 그 자리에 있었던 건 손에 꼽아요.
한두 번일 때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에요. 그런데 횟수가 쌓이면 성격이 달라져요. 한 번 못 온 사람과 계속 못 온 사람은 다르게 보이니까요. 누가 저에게 그렇게 말한 적은 없어요. 다만 제가 알겠더라고요.
더 어려운 건 제가 선택해서 이렇게 산다는 점이었어요. 사정이 있어서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제가 정한 방식이니까요. 그래서 못 간다는 말에 붙일 이유가 마땅치 않았어요. 일 때문이라고 쓰기도 애매했어요. 그 일도 제가 고른 거니까요.
작은 자리는 더 그래요. 집들이나 아이 돌 같은 건 청첩장처럼 정식으로 알리지 않으니까 나중에 사진으로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때는 축하한다고 하기에도 늦어서 그냥 넘어가게 돼요. 이런 게 몇 번 쌓이면 그 사람의 근황을 저만 모르는 상태가 돼요.
돈만 보내면 되는 줄 알았어요
초반에는 송금으로 해결했어요. 계좌를 물어보고 보내고 축하한다고 적으면 할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제일 간편하기도 했고요.
몇 번 해보고 나서 이게 부족하다는 걸 알았어요. 봉투에 이름을 적어 내는 것과 계좌로 숫자를 보내는 건 받는 쪽에 남는 게 달라요. 명단에 제 이름은 들어가지만 그날 얼굴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저 스스로도 뭔가 처리했다는 기분으로 넘어가게 되더라고요.
실무적으로도 매끄럽지 않았어요. 해외 계좌에서 한국으로 보내면 수수료가 붙고 며칠 걸리는 경우가 있어요. 날짜를 넘기지 않으려면 미리 움직여야 하는데 저는 늘 임박해서 했어요. 한 번은 식이 끝난 뒤에 도착한 적도 있어요. 그 뒤로는 소식을 들은 날 바로 처리해요. 금액을 정하느라 미루는 거였는데, 그건 나중에 정하면 되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금액도 매번 고민이었어요. 한국에 살면 대략의 기준이 몸에 있는데 저는 그게 흐려졌어요. 물가 감각이 지금 사는 곳에 맞춰져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은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한 번씩 물어봐요. 요즘은 어느 정도 하냐고요. 처음에는 이걸 묻는 게 민망했는데, 혼자 짐작해서 잘못 보내는 것보다는 나았어요.

부고는 결이 달랐어요
결혼 소식은 미리 알려주지만 부고는 갑자기 와요. 생각할 시간이 없어요. 그리고 늦으면 의미가 크게 줄어드는 종류의 연락이에요.
몇 년 전에 그런 연락을 새벽에 봤어요. 시차 때문에 그 시각에 확인하게 된 거예요. 바로 답할지 아침까지 기다릴지 잠깐 망설였는데 그냥 바로 보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이른 게 늦은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어요.
그때 알게 된 게 있어요. 이런 자리에 필요한 건 잘 쓴 문장이 아니었어요. 뭐라고 써야 할지 고르다 보면 시간만 가요. 짧아도 빨리 닿는 게 나았어요.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다음이었어요. 장례가 끝나고 몇 주 지난 뒤에 한 번 더 연락하는 것이요. 정신없는 며칠이 지나고 주위가 조용해졌을 때가 오히려 힘든 시기더라고요. 그 무렵에는 연락하는 사람이 확 줄어들거든요.
시차가 만든 문제
시차가 있으면 그 시간에 함께 있을 수가 없어요. 식이 열리는 시각에 저는 자고 있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어요. 마음이 있어도 같은 시간을 쓸 수가 없는 거예요.
요즘은 영상으로 연결해 주는 경우도 있어서 몇 번 봤어요. 안 보는 것보다는 나았는데 그 자리에 있는 것과는 확실히 달랐어요. 소리가 잘 안 들리고 화면은 한 방향만 비추니까요. 저는 조용히 보고만 있게 되고, 끝나고 나면 애매한 기분이 남았어요.
그래서 방식을 하나 정했어요. 그 행사가 열리는 시각에 맞춰 짧게라도 연락을 보내요. 제가 있는 곳이 몇 시든 상관없이요. 새벽이면 그 시각에 알람을 맞춰 두고 일어나서 보내요. 문장은 두세 줄이에요. 그런데 그 시간에 제가 깨어서 그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건 전달되는 것 같아요.
끝나고 나서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하기도 해요. 예전에는 이게 실례 같아서 못 했어요. 그런데 대부분 반가워하시더라고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봤으니 굳이 안 찾는데, 못 온 사람이 궁금해하는 건 오히려 고맙게 여기시는 것 같아요.
못 간 사람부터 만나요
지금은 못 간다고 답할 때 한 가지를 꼭 붙여요. 언제 보자는 이야기예요. 막연히 나중에가 아니라 대략의 시기를 적어요. 올해 안에 들어갈 것 같다든지, 내년 봄쯤 계획이 있다든지요.
그리고 한국에 들어가는 일정이 정해지면 만날 사람 목록을 미리 만들어요. 짧게 다녀오면 실제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안 되거든요. 도착해서 그때그때 연락하면 일정이 안 맞아 대부분 못 봐요. 몇 번 허탕을 치고 나서 미리 정하는 쪽으로 바꿨어요.
목록의 앞자리는 경조사에 못 갔던 사람으로 둬요. 이게 제 나름의 갚는 방식이에요. 그 자리에는 못 갔지만 따로 시간을 내서 얼굴을 보는 거예요.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어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아요. 실제로 그렇게 만나면 그날 이야기가 나오고, 그제야 제대로 축하하거나 위로하게 되더라고요.
선물을 보내는 것도 몇 번 해봤는데 이건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해외에서 한국으로 보내면 배송이 오래 걸리고 통관에서 지연되는 경우도 있어요. 한 번은 도착하는 데 한 달이 걸렸어요. 지금은 한국 안에서 주문해서 바로 보내는 방식으로 해요. 제 손을 거치지 않아도 제때 도착하는 게 낫더라고요.
사라지지만 않으면 되더라고요
몇 년 겪고 내린 결론은 단순해요. 못 가는 것 자체는 대체로 이해받아요. 다들 사정이 있다는 걸 아니까요. 문제는 그다음이에요. 못 간 뒤에 조용해지는 것이요.
저는 미안한 마음이 클수록 오히려 연락을 미뤘어요. 마주하기 부담스러우니 다음에 하자고 미루고, 시간이 지나면 더 꺼내기 어려워져요. 미안함과 미룸이 겹치면 관계가 그냥 흐려져요. 저는 몇 사람과 그렇게 됐어요.
혹시 멀리 계셔서 비슷한 상황을 자주 겪으신다면, 답을 미루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문장은 짧아도 되고 완벽하지 않아도 돼요. 못 간다는 사실은 어차피 안 바뀌지만, 언제 답했는지는 남거든요. 저는 그걸 몇 번 놓치고 나서야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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