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서 매일 마주치는 분이 있었어요
한 건물에 넉 달쯤 살았을 때예요. 아침에 나가는 시간이 비슷해서 거의 매일 같은 분과 엘리베이터를 탔어요.
처음 며칠은 가볍게 인사를 나눴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서로 고개만 까딱하게 됐고, 나중에는 각자 휴대전화를 봤어요.
이상한 건 그게 어색해서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인사를 더 이어가면 다음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 다음을 만들 생각이 없었거든요.
떠나는 날 짐을 들고 나오다 그분과 마지막으로 마주쳤어요. 저는 그날도 그냥 고개만 까딱하고 나왔어요.
그 넉 달 동안 그분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몇 층에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이름이 뭔지요. 매일 봤는데도 그래요.
돌아보면 제가 먼저 닫은 쪽이었어요. 상대는 처음에 몇 마디 더 붙이려고 했던 것 같은데 제가 짧게 답했거든요. 그러면 상대도 더 안 물어봐요.
몇 달짜리 이웃이라는 게 애매해요
이웃이라는 말이 원래는 오래 같이 사는 사람을 가리키잖아요. 저는 그 조건에 안 맞아요.
몇 달 뒤에 떠날 걸 알고 있으니 관계를 시작하는 게 망설여져요. 친해지면 헤어질 때 그만큼 인사할 게 늘어나고, 안 친하면 사는 동안 계속 서먹해요.
그리고 상대는 제가 언제 떠날지 몰라요. 저만 알고 있는 정보로 거리를 조절하는 셈인데 그게 좀 미안하기도 했어요.
처음 몇 년은 아예 안 만들었어요. 어차피 지나갈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편했고 실제로 아무 문제도 없었어요.
문제가 없다는 게 문제라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세탁실 같은 데서 마주치면 더 애매해요. 기다리는 동안 서 있어야 하는데 할 말은 없고 나가기도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한동안은 사람이 없는 시간을 골라 갔어요.
짐을 들고 들어오는 날이나 나가는 날에는 티가 나요. 캐리어를 끌고 다니니까요. 그러면 여행 왔냐고 묻는 분들이 있는데 설명하기가 애매해서 대충 답하게 돼요.
아무도 저를 모른다는 뜻이기도 했어요
한번은 며칠 몸이 안 좋아서 나가지 못한 적이 있어요. 밖에 안 나가고 며칠을 방에서 보냈어요.
그때 문득 생각했어요. 제가 이 방에서 며칠 안 나와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하고요. 그 건물에 저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거든요.
무섭다기보다 좀 서늘했어요. 한국에 있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아파도 누군가 연락이 오고 안 받으면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그 며칠 뒤로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관계를 만드는 게 정을 나누자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도 하겠다 싶었어요.
그렇다고 갑자기 사교적이 된 건 아니에요. 저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고 지금도 아니에요.
열쇠를 두고 나온 적도 있어요. 그때 도움을 청할 데가 없어서 관리하는 쪽에 연락이 될 때까지 밖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어요. 이웃 한 명만 알았어도 잠깐 앉아 있을 데는 있었을 텐데요.
그리고 이런 일이 생기면 그날 일이 통째로 날아가요. 혼자 일하니까 그 시간을 대신해 줄 사람도 없고요. 관계가 없다는 게 결국 시간 손해로 돌아오는 셈이에요.
그 며칠 동안 연락이 온 건 일 관련된 것뿐이었어요. 답을 안 하면 일이 밀리니까 그건 챙겼고요. 그러니까 제가 아프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때 아무도 없었어요.

인사만 하는 사이를 만들기로 했어요
대신 기준을 하나 낮췄어요. 친해지는 게 아니라 얼굴을 아는 사이까지만 만들기로요.
도착하고 며칠 안에 같은 층 사람들과 한 번씩 인사해요. 이름은 안 물어요. 그냥 여기 산다고 알리는 정도예요.
그것만으로도 달라지는 게 있어요. 복도에서 마주칠 때 눈을 피하지 않게 되고, 무슨 일이 있으면 물어볼 수 있는 상대가 생겨요.
실제로 도움을 받은 적도 있어요. 물이 안 나오는 날에 이게 저희 집만 그런 건지 물어볼 데가 있다는 게 생각보다 큰 차이였어요.
그리고 이 정도는 떠날 때 부담이 없어요. 인사만 하던 사이니까 인사만 하고 나오면 돼요.
인사 정도만 하기로 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요. 더 다가가야 하나 하는 고민이 없어졌거든요. 선을 미리 정해두면 그 안에서는 자연스러워져요.
물론 상대가 더 다가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그때는 그쪽에 맞춰요. 제가 정한 건 제 쪽에서 시작하는 선이지 상대를 밀어내는 선은 아니니까요.
가게 쪽이 더 쉬웠어요
이웃보다 오히려 쉬운 게 있었어요. 매일 가는 가게예요.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 가면 몇 주 안에 알아보세요.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돼요. 손님과 주인이라는 자리가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어색할 일도 없고요.
이웃은 관계의 모양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어려운 것 같아요. 어디까지 다가가야 하는지를 매번 제가 정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새 도시에 가면 자주 갈 곳을 두세 군데 정해요. 그러면 몇 주 만에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몇 명 생겨요. 이게 저에게는 제일 부담 없는 방식이었어요.
떠날 때 인사를 하고 나오기도 해요. 그러면 다음에 그 도시에 다시 갔을 때 들를 데가 있어요.
같은 이유로 운동하는 곳이나 도서관도 괜찮았어요. 정해진 시간에 가는 곳이면 어디든 비슷해요. 매번 다른 곳을 가면 몇 달이 지나도 아무도 저를 못 알아봐요.
그래도 미안한 게 남아요
이렇게 정리하고 나서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요.
저는 늘 떠나는 쪽이에요. 남는 쪽이 되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헤어짐의 무게를 덜 지는 자리에 있는 것 같아요.
한 도시에서 몇 달 지내면서 몇 번 밥을 같이 먹은 분이 있었어요. 떠난다고 말했더니 아쉬워하셨는데 저는 이미 다음 도시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날 좀 미안했어요.
그분은 그 도시에 계속 계시고 저 같은 사람을 몇 번 더 보내셨을 거예요. 오는 사람보다 보내는 사람이 더 힘들다는 걸 그때 생각했어요.
그래서 요즘은 떠날 때 미리 말해요. 갑자기 사라지지 않으려고요. 그 정도가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떠난 뒤에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잖아요. 그 사람도 저처럼 몇 달 있다 갈 수도 있고요. 그 건물에 오래 사는 분들 입장에서는 옆집이 계속 바뀌는 셈이에요.
깊이가 아니라 개수였어요
몇 년 지나고 정리된 생각은 이래요.
저는 관계를 깊이로만 생각했어요. 친하거나 안 친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요. 그러니 오래 있을 곳이 아니면 아예 시작을 안 했어요.
그런데 얕은 관계도 쓸모가 있더라고요. 얼굴을 아는 사람이 몇 명 있는 동네와 한 명도 없는 동네는 사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그 몇 명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요.
그러니까 필요한 건 깊이가 아니라 개수였어요. 몇 달 있는 곳에서는 이게 더 맞는 것 같아요.
이 생각은 다른 데도 적용되더라고요. 일에서도 오래 갈 관계만 챙기려다 보면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을 놓쳐요. 지금 이 몇 달 안에서 되는 것만 챙겨도 충분한 경우가 많았어요.
혹시 짧게 머무는 곳에서 아무와도 안 엮이고 계신다면, 인사만 하는 사이를 몇 개 만들어보시길 권해요. 저는 그게 친해지는 것보다 훨씬 쉬웠고 떠날 때도 부담이 없었어요. 그리고 사는 동안 확실히 덜 외로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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