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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생산성 (Productivity)

무슨 일을 하셨냐는 질문에 답을 못 했어요: 보여줄 게 없던 10년

by wellnomadness 2026. 8. 28.

무슨 일을 하셨냐는 질문에 답을 못 했어요

모임에서 무슨 일 하시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직업은 말할 수 있는데 그다음이 문제였어요. 어떤 걸 하셨냐고 물으시면 거기서 막혀요.

제가 한 일은 대부분 이름을 말할 수 없어요. 계약서에 그렇게 되어 있거든요. 어디에 쓰였는지, 누구 것인지 밝히면 안 돼요.

그래서 늘 두루뭉술하게 답했어요. 그런 걸 좀 합니다 하고요. 그러면 대화가 거기서 끝나요. 상대도 더 물어보기 애매하니까요.

몇 년 그러고 나서 알았어요. 저는 10년 넘게 일했는데 그걸 보여줄 방법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어요. 결과물은 다 남의 것이었고 제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처음에는 이게 겸손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자기 일을 떠벌리지 않는 사람으로요. 그런데 몇 년 지나고 보니 겸손이 아니라 그냥 설명을 못 하는 상태였어요. 말할 수 있는 범위를 제가 정리해 두지 않았던 거예요.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분들은 자기가 만든 걸 바로 보여주시더라고요. 화면을 켜서 이거라고 하시면 설명이 끝나요. 저는 그 자리에서 제일 오래 일한 축이었는데 제일 할 말이 없었어요.


보여줄 수 있는 게 정말 없었어요

한 번은 새로 이야기가 오간 곳에서 예전 작업을 보여달라고 하셨어요. 당연한 요청이에요. 저라도 그렇게 물었을 거예요.

그런데 보여드릴 게 없었어요. 제일 잘한 일들이 전부 말할 수 없는 것들이었거든요. 내놓을 수 있는 건 초기에 한 작은 것 몇 개뿐이었어요.

그날 제 실력이 낮아 보였을 거예요. 그사이에 훨씬 큰 일들을 했는데 그게 없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그 일은 결국 안 됐어요.

돌아오면서 생각했어요. 이건 제가 게을러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준비를 안 해서 생긴 문제라고요. 일할 때는 일만 했지 그 일을 어떻게 남길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날 이후로 지난 몇 년을 되짚어봤어요. 계약서를 다시 열어보니 조건이 제각각이었어요. 아예 언급을 금지한 곳도 있고, 이름만 빼면 되는 곳도 있고, 아무 조항이 없는 곳도 있었어요. 저는 구분하지 않고 전부 말하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었어요.

실제로 확인해 보니 언급해도 되는 곳이 몇 군데 있었어요. 몇 년 동안 쓸 수 있는 걸 안 쓰고 있었던 거예요. 물어보는 데 몇 분이면 될 일이었는데요.


처음으로 후기를 부탁했어요

그래서 결과물 대신 사람의 말을 남기기로 했어요. 마무리한 고객에게 짧게 한마디 써주실 수 있냐고 여쭤보는 거예요.

처음 부탁할 때 한참 망설였어요. 돈을 받고 한 일인데 칭찬까지 달라고 하는 것 같았거든요. 거절당하면 그다음이 어색해지겠다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흔쾌히 써주셨어요. 오히려 이런 걸 왜 이제 부탁하냐고 하셨어요.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해주겠다고요.

그 뒤로 몇 분께 더 부탁드렸는데 거절하신 분은 거의 없었어요. 제가 몇 년 동안 혼자 어려워하던 일이었는데 실제로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부탁드리는 문장도 짧게 써요. 길게 쓰면 오히려 부담스러워하시더라고요. 두세 줄이면 되고, 시간이 없으시면 안 하셔도 된다는 말을 꼭 넣어요. 그 한 줄이 있으면 상대가 편하게 답하세요.

한 분은 써주시면서 이런 걸 부탁받은 게 처음이라고 하셨어요. 일 잘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안 물어본다고요. 그 말을 듣고 제가 유별난 부탁을 한 게 아니라 다들 안 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알았어요.

비어 있는 포트폴리오 화면을 띄운 노트북과 옆에 놓인 계약서 봉투


부탁하는 방법을 바꿨어요

몇 번 하면서 요령이 생겼어요. 제일 중요한 건 시점이에요. 일이 끝나고 바로 부탁드려요. 마무리 인사를 드릴 때 같이요.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흐려지고 담당자가 바뀌기도 해요. 몇 달 뒤에 연락드리면 그때는 무슨 일이었는지부터 다시 설명해야 해요.

그리고 백지로 부탁드리지 않아요.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답이 제일 많았거든요. 그래서 어떤 점이 괜찮았는지 두세 가지만 짚어주시면 된다고 항목을 드려요.

초안을 제가 써서 확인만 받는 방식도 해봤는데 그건 안 하기로 했어요. 편하기는 한데 그건 제 말이지 그분 말이 아니잖아요. 읽는 사람도 그건 알아보더라고요.

받은 후기는 그대로 써요. 문장을 다듬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안 해요. 다듬으면 전부 비슷한 말투가 되거든요. 어색한 표현이 섞여 있는 쪽이 오히려 진짜처럼 읽혀요.


이름 없이 쓰는 법을 배웠어요

회사 이름을 못 쓰는 경우는 여전히 많아요. 그럴 때는 업종과 규모만 적어요. 어떤 분야의 어느 정도 되는 곳이라고요.

처음에는 이렇게 쓰면 믿음이 덜 갈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오히려 이걸 보고 안심하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남의 이름을 함부로 안 쓰는 사람이라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지금은 이 부분을 먼저 말씀드려요. 이 일도 나중에 어디에 이름을 밝히지 않겠다고요. 계약서에 그런 조항이 없어도 먼저 이야기해요.

이게 영업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비밀 유지가 중요한 분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놓으세요. 제 실적을 못 보여주는 게 오히려 근거가 되는 셈이에요.

과장하지 않으려고도 해요. 규모를 적을 때 실제보다 크게 쓰면 나중에 같이 일하게 됐을 때 다 드러나니까요. 처음에 크게 보이려다 나중에 곤란해지는 게 제일 나쁜 순서예요.


숫자로 남기는 것도 시작했어요

말로 된 후기 말고 숫자도 모으기 시작했어요. 몇 년 동안 몇 곳과 일했는지, 그중 다시 의뢰한 곳이 몇 곳인지 같은 것들이요.

이건 이름을 안 밝혀도 되는 정보예요. 그리고 저에게도 도움이 됐어요. 세어보기 전에는 제가 얼마나 일했는지 저도 몰랐거든요.

세어보고 놀란 것도 있어요. 다시 의뢰한 비율이 생각보다 높았어요. 저는 늘 새 고객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어요.

이 숫자를 보고 나서 방향을 바꿨어요. 새로 찾는 데 쓰던 시간을 이미 일해본 분들에게 연락하는 쪽으로 나눠 썼어요. 그게 훨씬 덜 힘들고 결과도 좋았어요.

이 기록은 한 곳에 모아둬요. 예전에는 메일함 어딘가에 흩어져 있었어요. 필요할 때 찾느라 시간을 쓰고, 끝내 못 찾은 것도 있어요. 지금은 받는 즉시 한 파일에 옮겨 적어요.


증명은 미리 준비해야 하는 거였어요

지금은 일을 시작할 때부터 마무리를 생각해요. 이 일이 끝나면 무엇을 남길 수 있을지요.

계약할 때 물어보기도 해요. 나중에 이 일을 언급해도 되는지, 된다면 어느 선까지인지요. 처음에 물으면 대개 답을 주세요. 끝나고 물으면 애매해지고요.

혼자 일하면 이걸 챙겨줄 사람이 없어요. 회사에 있으면 실적이 어딘가에 기록되는데 저는 제가 안 남기면 아무 데도 안 남아요. 이동하며 일하니 더 그래요. 같은 동네에서 소문으로 쌓이는 것도 없거든요.

그리고 이건 미루면 계속 미루게 돼요. 지금 하는 일이 끝나기 전에는 늘 바쁘고, 끝나고 나면 다음 일이 시작되니까요. 저는 마무리 인사 문구에 그 부탁을 아예 붙여놨어요. 그러면 잊어버릴 일이 없어요.

혹시 오래 일했는데 보여줄 게 없다고 느끼신다면, 실력의 문제가 아닐 수 있어요. 저도 그랬거든요. 일은 계속했는데 그 일이 있었다는 흔적을 안 남긴 거예요.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남기시면 좋겠어요. 저는 늦게 시작해서, 그 전에 한 일들은 지금 아무리 애써도 못 되돌리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