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잡 인터뷰만 100번 넘게 봤어요. 한 달에 10번은 기본이었고 어떤 달은 그보다 많았어요. 그런데 그 1년이 끝날 때까지 제대로 된 직장은 하나도 못 구했어요. 결과만 놓고 보면 완전히 실패한 1년이었어요.
미국 취업, 1년에 잡 인터뷰 100번 넘게 봤다
일정만 보면 잘 풀리는 사람 같았어요. 서류는 통과가 됐거든요. 이력서를 고치고 또 고쳤고 지원할 만한 곳은 다 넣었어요. 연락도 꽤 왔어요. 그래서 그때는 방향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문제는 늘 그다음이었어요. 면접실에 들어가면 준비한 게 반도 안 나왔어요. 질문에 답은 하는데 딱 그것만 하고 끝났어요. 옆에서 보면 성실한데 인상에는 안 남는 사람이었을 거예요.
저는 공부만 열심히 하던 사람이었어요. 범위가 정해져 있고 답이 있는 일은 잘했어요. 그런데 면접은 그런 게 아니었어요. 준비한 대로 나오지 않고,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사람이 사람을 고르는 자리였어요.
게다가 소심한 편이었어요. 먼저 말을 거는 걸 못 했어요. 행사에 가면 구석에 서 있다가 그냥 나왔어요. 명함을 받아 와도 다음 날 연락을 못 했어요. 실례가 될까 봐, 귀찮게 하는 것 같아서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제일 큰 손해였어요.
나중에야 알았는데 제가 지원하던 자리 중 상당수는 이미 안에서 정해져 있었어요. 공고는 절차상 올라온 거였어요. 저는 그 절차의 바깥에서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었던 거예요. 열릴 리가 없는 문이었는데 저는 제 실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100번의 인터뷰는 실력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제가 들어갈 수 없는 방식으로 1년을 계속 시도한 거였어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채로요.
떨어진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도 힘들었어요. 대부분은 연락이 아예 안 와요. 오더라도 다른 분으로 정해졌다는 한 줄이 전부예요. 뭘 고쳐야 할지 모르는 채로 다음 면접에 들어가니까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했을 거예요.
하루에 두 곳을 본 날도 있었어요. 오전에 한 곳, 오후에 한 곳이요.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앉아 있는데 제가 오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났어요. 그 정도로 기계적으로 다니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서류는 잘 통과됐어요. 그래서 더 헷갈렸어요. 서류가 되니까 자격은 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남은 문제는 저라는 뜻인데, 그게 뭔지를 몰랐어요. 그 1년 내내 그 지점에서 맴돌았어요.
파트타임 8달러 50센트, 월 1,000달러로 버틴 방법
그동안 생계는 파트타임으로 꾸렸어요. 시간당 8달러 50센트였어요. 주 30시간쯤 일했고 한 달에 1,000달러가 조금 넘게 들어왔어요.
그 돈으로 방값을 내고 밥을 먹었어요. 남는 게 거의 없었어요. 기름값이 아까워서 되도록 걸었고 외식은 안 했어요. 물건을 사는 일이 아예 없던 시기였어요. 뭘 사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안 들었어요.
그러면서 짬짬이 일을 받았어요. 웹사이트는 한 달에 2개쯤 만들었어요. 큰돈은 아니었지만 파트타임 월급에 얹으면 숨통이 트였어요. 그 돈이 들어오는 주에는 마음이 확실히 달랐어요.
프로그램은 6개월에 1개 정도였어요. 이건 규모가 있어서 한 번 들어오면 몇 달이 편했어요. 대신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까 계획을 세울 수가 없었어요. 다음 게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어요.
이 일들은 전부 아는 사람을 통해서 왔어요. 지원해서 받은 게 하나도 없어요. 그때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그게 답이었어요. 제가 100번 인터뷰를 보는 동안 실제로 돈이 된 건 전부 사람을 통해 온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그걸 못 알아봤어요. 저는 여전히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들어오는 일들은 그때까지 버티는 수단이라고 여겼어요. 순서가 거꾸로였다는 걸 한참 뒤에 알았어요.
파트타임은 매장 일이었어요. 물건을 정리하고 계산대에 서는 일이요. 몸이 힘든 건 괜찮았는데 오후에 면접이 있는 날이 어려웠어요. 옷을 갈아입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날이 있었어요.
그 시절에 생긴 습관이 하나 있어요. 물건 값을 시간으로 환산하는 거예요. 이건 몇 시간짜리구나 하고요. 지금은 그 계산을 안 하는데도 가끔 튀어나와요. 그때 몸에 밴 게 오래가더라고요.
웹사이트 일은 첫 건이 우연히 왔어요. 매장에 오시던 분이 제가 그런 걸 할 줄 안다는 걸 알고 물어보신 거예요. 제가 먼저 영업한 게 아니었어요. 그 한 건이 다음 건을 데려왔고 그렇게 이어졌어요.

반드시 기회가 올거라고 믿었습니다
미국에 온 이유는 단순했어요. 한국처럼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어요. 같은 조건으로 줄을 서는 게 아니라 다르게 해도 되는 곳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와보니 경쟁이 없는 건 아니었어요. 다만 방식이 달랐어요. 여기서는 줄이 하나가 아니었어요. 문이 여러 개인데 저는 그중 제일 붐비는 문 앞에만 서 있었던 거예요. 다른 문이 있다는 걸 몰랐어요.
그 1년 동안 제가 유일하게 놓지 않은 게 하나 있어요. 반드시 기회가 올 거라는 믿음이요. 근거는 없었어요. 그냥 여기까지 왔으니 뭐라도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믿음이 실제로 한 일은 계속 사람을 만나게 한 거였어요. 안 될 것 같았으면 안 나갔을 텐데, 될 거라고 생각하니까 나갔어요. 소심한 사람이 계속 밖으로 나가려면 그런 게 필요했어요.
그렇게 만난 사람들이 10년쯤 쌓였어요. 지금 제가 하는 일은 대부분 그 안에서 와요. 새 고객도 소개로 오고, 제가 못 하는 분야는 아는 사람에게 넘겨요. 이력서를 마지막으로 쓴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요.
제일 힘들었던 건 한국 소식이 들려올 때였어요.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다는 이야기요. 저는 그때 시급을 받으면서 면접을 다니고 있었어요. 그 비교가 오래갔어요.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데 그때는 그게 매일 따라다녔어요.
네트워크라는 게 한 번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때 명함을 주고받은 분에게서 3년 뒤에 연락이 온 적도 있어요. 저는 그분을 거의 잊고 있었는데요. 그래서 지금은 당장 아무 일이 없어도 만나요. 언제 이어질지는 모르는 거니까요.
소심한 성격은 지금도 그대로예요. 고쳐지지 않았어요. 다만 방식을 바꿨어요.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잘 못하니까 한 명씩 따로 만나요. 저에게는 그게 맞았어요. 성격을 바꾸려고 애쓰던 시기에는 아무것도 안 됐어요. 안 되는 걸 억지로 하는 것보다 되는 방식을 찾는 게 빨랐어요.
그리고 그 시기에 배운 게 하나 더 있어요. 일이 어디서 오는지를 보는 눈이요. 지금도 새로운 걸 시작할 때 먼저 봐요. 이건 지원해서 되는 일인지, 사람을 통해서 오는 일인지요. 대부분은 후자더라고요.
그 1년이 없었으면 지금의 네트워크도 없었을 거예요. 인터뷰 100번은 아무것도 못 만들었지만 그 사이에 만난 사람들은 남았거든요. 저는 그때 취업에 실패한 게 아니라 다른 걸 시작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다만 그걸 알아차리는 데 몇 년이 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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