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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생산성 (Productivity)

3년 전에 제가 만든 걸 제가 못 알아봤어요: 나중의 나는 남이더라고요

by wellnomadness 2026. 8. 22.

3년 전에 제가 만든 걸 다시 열었어요

오래전에 마무리한 고객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그때 만든 걸 조금 수정해야 하는데 봐줄 수 있냐는 이야기였어요. 3년쯤 지난 뒤였어요. 저는 흔쾌히 하겠다고 했어요. 제가 만든 거니까 금방 할 줄 알았거든요. 오랜만에 연락이 온 것도 반가웠고요.

그런데 파일을 열고 나서 한참을 들여다봤어요. 제가 만든 게 맞는데 이해가 안 됐어요. 여기가 왜 이렇게 되어 있는지, 이 부분은 왜 다른 방식으로 안 했는지가 하나도 기억이 안 났어요.

결국 수정 자체보다 파악하는 데 시간이 더 걸렸어요. 반나절이면 될 거라고 말씀드렸는데 이틀이 걸렸어요. 그때 좀 창피했어요. 제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제가 저에게 아무것도 안 남겨뒀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으니까요.

그 이틀 중 하루는 그냥 읽기만 했어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한 덩어리인지, 이 부분이 저 부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다시 그려야 했거든요. 추가된 시간은 청구하지 않았어요. 제가 만든 걸 제가 다시 파악하는 시간이니 고객이 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맞는 판단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손해가 다음부터 기록을 남기게 만든 계기는 됐어요.


무엇을 했는지는 보이는데 왜인지는 안 보여요

파일을 보면 무엇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있어요. 그건 남아 있으니까요. 문제는 왜 그렇게 했는지예요. 그건 어디에도 안 남아요. 제 머릿속에만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요.

그때 저는 분명히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했을 거예요. 고객이 그렇게 해달라고 했거나, 다른 방식을 시도했다가 안 됐거나, 일정이 촉박해서 우선 그렇게 두고 넘어갔거나요. 그런데 3년 뒤의 저는 그 이유를 모르니까 이게 실수인지 의도인지 판단이 안 돼요.

더 위험한 건 여기서 잘못 건드리는 경우예요. 이상해 보여서 고쳤는데 알고 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면 다른 데서 문제가 터져요. 저는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서 남의 작업물을 함부로 정리하지 않게 됐어요. 그게 제 것이더라도요. 깔끔해 보이는 게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요.


그때부터 이유를 적기 시작했어요

그 일 이후로 습관이 하나 생겼어요. 작업하면서 판단이 들어간 지점에 짧게 이유를 적어두는 거예요. 길게 안 써요. 한두 줄이면 충분해요. 왜 이 방식을 골랐는지, 무엇을 고려했는지 정도요.

특히 중요한 건 안 한 것을 적는 거예요. 더 좋아 보이는 방법이 있었는데 안 쓴 경우, 왜 안 썼는지를 남겨요. 이게 없으면 나중에 누가 봐도 왜 이렇게 안 했지 하고 되돌아가게 되거든요. 그 되돌아가는 시간을 아껴주는 게 이 한 줄이에요. 몇 초 적는 것으로 몇 시간을 아끼는 셈이라 손해 볼 일이 없어요.

그리고 임시로 해둔 것에는 임시라고 적어요. 제대로 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일단 넘어간 부분이요. 이걸 안 적으면 나중에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처럼 보여요. 저도 남의 작업을 보면서 이게 왜 이러지 했다가, 사실 그쪽도 급해서 그랬던 거였구나 하고 나중에 안 적이 여러 번 있어요.

오래된 작업 파일이 열린 노트북 화면과 그 옆에 펼쳐 적어둔 메모

어디에 적느냐도 몇 번 바꿔봤어요. 처음에는 따로 문서를 만들어서 모아뒀는데 잘 안 보게 되더라고요. 작업하는 곳과 기록하는 곳이 떨어져 있으면 결국 안 열어요. 지금은 판단이 들어간 그 자리 바로 옆에 짧게 적어둬요. 눈에 걸리는 자리에 있어야 읽히니까요. 대신 전체를 아우르는 설명은 따로 한 곳에 모아두고요.


넘길 때 쓰는 문서도 달라졌어요

고객에게 마무리해서 넘길 때 쓰는 문서도 바꿨어요. 예전에는 어떻게 쓰는지를 설명하는 데 대부분을 썼어요. 지금은 그것보다 다른 걸 더 자세히 적어요.

이걸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어떤 조건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나중에 무엇을 바꾸고 싶어지면 어디를 봐야 하는지요. 사용법은 몇 번 써보면 알게 되는데 이런 건 알려주지 않으면 영영 모르거든요. 그리고 대개 문제는 사용법이 아니라 그쪽에서 터져요.

이 문서를 쓰는 데 시간이 꽤 들어요. 견적에 포함시켜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어요. 지금은 그냥 제가 하는 일의 일부로 봐요. 안 쓰면 나중에 제가 다시 파악하는 데 그 이상의 시간이 드니까 결국 제가 아끼는 셈이거든요.


대체될까 봐 걱정한 적이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망설였어요. 전부 정리해서 넘기면 저 없이도 굴러가게 되는 거잖아요. 다음에 문제가 생겨도 저를 안 찾을 수 있고요. 어설프게 남겨두면 계속 저에게 의존할 텐데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어요.

그런데 몇 년 해보니 반대였어요. 잘 정리해서 넘긴 곳일수록 다시 연락이 왔어요. 이유는 간단한 것 같아요. 일하기 편했던 기억이 남으니까요. 반대로 뭐가 뭔지 모르겠는 상태로 받은 쪽은 그 일 자체를 다시 떠올리기 싫어해요.

그리고 제가 붙잡아두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게 마음이 편해요. 상대가 저를 계속 쓰는 이유가 정보를 저만 갖고 있어서라면, 그건 관계가 아니라 인질에 가깝잖아요. 그런 방식으로 유지되는 일은 오래 못 가고 저도 즐겁지 않았을 것 같아요.

실제로 그렇게 일하는 사람을 본 적도 있어요. 자기만 아는 부분을 일부러 남겨두는 방식이었는데, 그 사람이 자리를 비운 동안 일이 멈춰서 다들 곤란해했어요. 그러고 나서 그 회사는 그 사람과 다시 일하지 않았고요. 붙잡아둔 만큼 되돌려받는 게 아니더라고요.


이동하니까 더 필요했어요

이게 저에게 특히 중요했던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저는 도시를 옮기며 일해서 작업 환경이 계속 바뀌어요. 몇 달 전 그 방에서 어떻게 해뒀는지가 지금 이 방에서는 재현이 안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어떤 도구를 어떤 설정으로 썼는지도 같이 적어둬요. 새 장비로 옮기거나 오래 안 열어본 작업을 다시 시작할 때 이게 없으면 처음부터 맞춰야 하거든요. 몇 시간씩 날린 뒤로는 이 기록을 꼭 남겨요. 특히 새로 산 장비에 옮길 때 이게 없으면 하루가 통째로 사라져요.

한곳에서 같은 책상에 앉아 일하는 사람은 몸이 기억해 주는 부분이 있어요. 저는 그게 없어요. 환경이 매번 바뀌니까 기억에 기댈 수가 없고, 그러니 적어두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불편해서 생긴 습관인데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됐어요.


나중의 나는 남이에요

지금 제가 기준으로 삼는 건 이거예요. 몇 년 뒤의 나는 남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 사람은 오늘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가정하고 남기면 뭘 적어야 할지가 분명해져요.

예전에는 이걸 남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인수인계는 다음 사람을 위한 거고, 문서는 고객을 위한 거라고요. 그런데 실제로 그 기록에서 제일 도움을 받은 사람은 저였어요. 몇 년 뒤에 그 파일을 다시 여는 사람이 대체로 저였거든요.

혹시 지금 하시는 일에서 판단이 들어가는 지점이 있다면, 한 줄만 남겨보시길 권해요. 왜 이렇게 정했는지요. 오늘은 너무 당연해서 적을 필요가 없다고 느껴질 텐데, 그 당연함이 사라지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안 걸려요. 저는 3년이면 충분하다는 걸 이틀을 날리고 나서 배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