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에 어금니 통증으로 잠이 깼어요. 진통제를 먹어도 30분을 못 버티고 다시 아려왔어요. 멕시코시티에서 지낸 지 열흘째였는데, 그 도시에 치과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로 날이 밝기만 기다려야 했어요. 침대에 걸터앉아 아픈 뺨을 손으로 감싼 채, 해가 뜨기까지 남은 시간을 몇 번이고 확인했어요.
스페인어 한마디 없이 치과 문을 두드렸다
날이 밝자마자 숙소 근처 치과를 검색했어요. 리뷰가 많고 평점이 높은 곳을 골라 무작정 찾아갔어요. 접수대에 앉아 있던 직원에게 영어가 되는지 물었더니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어요. 다행히 안쪽에서 나온 의사 선생님이 짧은 영어로 대화를 이어줬어요. "어디가 아프세요"라는 질문에 손가락으로 오른쪽 아래 어금니를 가리켰어요. 통증 때문에 제대로 입도 못 벌리면서 겨우 상황을 설명하려니, 평소라면 간단했을 대화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어요.
엑스레이를 찍는 동안에도 긴장이 가시지 않았어요. 낯선 기계, 낯선 언어로 적힌 안내문, 처음 보는 간호사까지. 한국이었다면 익숙한 동네 치과에서 몇 번이나 다녔을 텐데, 이곳에서는 모든 게 처음이라는 사실이 통증보다 더 크게 다가왔어요. 진료 의자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괜찮을 거야'라고 혼자 되뇌었던 기억이 나요.
대기실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괜히 휴대전화로 "멕시코 치과 외국인 진료"를 검색해봤어요. 비슷한 경험담이 몇 개 나왔는데, 대부분 큰 문제 없이 잘 끝났다는 후기라 조금은 마음이 놓였어요. 그래도 통증이 욱신거릴 때마다 '혹시 말이 잘못 전달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계속 따라다녔어요. 진료실 문이 열리고 제 이름이 어설픈 발음으로 불렸을 때, 그 불안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섰어요.
번역 앱으로 신경치료 설명을 들었다
엑스레이 결과를 보더니 의사 선생님 표정이 조금 심각해졌어요. 영어 단어 몇 개와 손짓만으로는 정확한 설명이 어려웠는지, 간호사가 태블릿을 가져와 번역 앱을 켜줬어요. 화면에 스페인어 문장을 입력하면 영어로 번역돼 나왔고, 저도 거기에 영어로 답을 타이핑했어요. 신경이 손상돼서 신경치료가 필요하다는 설명을 그렇게 화면을 주고받으며 이해했어요. 화면 속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스스로 확인하고서야 고개를 끄덕였어요.
비용도 그 자리에서 번역 앱으로 확인했어요. 한국보다 저렴한 편이라 안도하면서도, 혹시 보험 처리가 안 될까 봐 걱정이 됐어요. 해외여행자 보험에 치과 치료가 포함돼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거든요. 일단 통증부터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 판단하고 치료를 받기로 했어요.

치료 동의서에 서명하기 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진단서와 영수증을 꼭 받을 수 있는지 번역 앱으로 재차 확인했어요. 직원은 친절하게 전부 영문 병기로 발급해주겠다고 답해줬어요.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 보험사에 서류를 제출할 때, 그때 챙긴 영문 진단서 덕분에 절차가 수월했어요. 아플 때는 당장의 통증에만 매달리기 쉬운데, 그 와중에도 서류를 챙겨야 한다는 걸 잊지 않았던 게 다행이었어요.
첫 치료는 2시간 가까이 걸렸어요. 신경을 건드리는 과정에서 몇 번 움찔했는데, 그때마다 간호사가 손을 잡아주며 괜찮다는 제스처를 보내줬어요. 말이 통하지 않아도 그 손길 하나로 긴장이 조금씩 풀렸어요. 치료가 끝나고 나니 거짓말처럼 통증이 가라앉아 있었어요.
치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다리에 힘이 풀려 택시를 탔어요. 창밖으로 멕시코시티의 낯선 거리가 지나가는 걸 보면서, 이상하게도 안도감과 피로감이 동시에 몰려왔어요. 숙소에 도착해서는 진통제 처방전을 들고 근처 약국을 찾아야 했는데, 이번에도 번역 앱이 큰 도움이 됐어요. 약사에게 처방전을 보여주니 금방 알아보고 약을 챙겨줬어요.
세 번의 통원으로 알게 된 것들
신경치료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일주일 간격으로 세 번을 더 가야 했어요. 갈 때마다 번역 앱을 미리 켜두고 궁금한 점을 적어갔어요. 두 번째 방문부터는 접수대 직원도 저를 알아보고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넸어요. 낯설던 병원이 세 번째쯤 가니 제법 익숙한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어요.
두 번째 통원 때는 혼자서 진료 일정을 스페인어로 바꿔달라고 요청하는 데도 성공했어요. 번역 앱에 "다음 주 화요일 오후로 바꿀 수 있나요"라고 입력해서 보여줬더니, 직원이 바로 달력을 확인하고 일정을 조정해줬어요. 작은 성공이었지만, 그 순간 처음으로 이 낯선 도시에서 혼자서도 뭔가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 생겼어요. 세 번째 방문 즈음엔 진료실 가는 길도, 대기실 의자의 위치도 전부 익숙해져 있었어요.
치료가 끝나던 날, 의사 선생님이 번역 앱으로 한 마디를 더 전했어요. "여행 중에 아프면 정말 힘들죠, 그래도 잘 참으셨어요." 전문적인 의학 용어보다 그 한마디가 더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낯선 나라에서 아픈 몸으로 혼자 버틴다는 게 생각보다 외로운 일이라는 걸, 그 짧은 위로 덕분에 조금 덜어낼 수 있었어요.
마지막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간호사가 작은 쪽지를 건넸어요. 번역 앱으로 미리 적어둔 듯, "치아 잘 관리하세요"라는 영어 문장이 손글씨로 적혀 있었어요. 큰 의미 없는 인사였을지도 모르지만, 그 쪽지를 받는 순간 몇 주 동안 쌓였던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는 기분이었어요. 숙소로 돌아와 그 쪽지를 한동안 책상 위에 놓아두었어요.
그 뒤로 새 도시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영어 진료가 가능한 병원과 치과 목록부터 찾아두는 습관이 생겼어요. 몸이 아플 때는 언어보다 먼저 안심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아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걸, 그 새벽의 통증이 가르쳐줬어요. 그리고 번역 앱에는 지금도 '통증을 설명하는 기본 문장' 몇 개를 즐겨찾기로 저장해두고 있어요. 다시는 쓸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한 최소한의 대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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