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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셋 & 웰니스 (Mindset & Wellness)

자그레브에서 친구의 비보를 들었어요: 거리가 슬픔을 더 무겁게 만들었던 하루

by wellnomadness 2026. 10. 5.

자그레브의 아침, 걸려온 전화 한 통

자그레브의 아침 공기는 유난히 맑았어요. 카페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고 노트북을 펼치려는데 휴대전화가 울렸어요. 한국 번호였어요. 시차를 생각하면 한국은 늦은 저녁이었는데, 평소라면 메시지로 연락하던 친구가 전화를 걸어온 것부터가 뭔가 이상했어요.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온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떨리고 있었어요. 대학 동기 한 명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어요. 몇 초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카페의 소음이 갑자기 아득하게 멀어지는 느낌이었어요. 커피잔을 든 손이 허공에 멈춘 채로, 그 말을 몇 번이고 되물었어요.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을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어요. 주문해둔 커피는 식어가고 있었고, 주변 테이블에서는 사람들이 평소처럼 웃고 떠들고 있었어요. 그 평온한 풍경과 제 안에서 일어나는 충격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서, 잠시 현실감이 들지 않았어요. 창밖으로 자그레브의 익숙한 트램이 지나가는 걸 멍하니 바라봤어요.


거리가 슬픔을 더 무겁게 만든다는 걸 알았다

한국에 있었다면 바로 장례식장으로 달려갔을 거예요. 친구들과 함께 모여 서로를 위로하며 그 밤을 보냈겠죠. 그런데 저는 지구 반대편, 비행기를 몇 번 갈아타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도시에 있었어요.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슬픔 위에 또 다른 무게를 얹었어요.

노마드로 떠돌며 산다는 게 그동안은 늘 긍정적인 쪽으로만 느껴졌어요.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경험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요. 그런데 그날만큼은 그 자유로움이 정반대로 다가왔어요. 가장 가고 싶은 곳에 가장 늦게 도착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예요. 비행기 티켓 하나로는 메울 수 없는 거리감이 그제야 선명하게 느껴졌어요.

카페에 그대로 앉아 항공권을 검색했어요. 가장 빠른 편으로도 환승을 포함해 20시간 가까이 걸렸어요. 장례 일정을 고려하면 도착했을 때 이미 발인이 끝나 있을 가능성이 컸어요. 노트북 화면 속 항공권 가격과 시간표를 몇 번이고 새로고침하면서, 간다고 해도 늦을 수 있다는 현실이 자꾸만 마음을 무너뜨렸어요.

결국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에게 연락해 상황을 물었어요. 다들 괜찮다고, 무리해서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그 말이 오히려 더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어요.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혼자 결정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평소라면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외로움이었어요.


낯선 도시에서 혼자 치른 작은 애도

결국 비행기를 타지 않기로 했어요. 대신 그날 하루는 일을 전부 미뤄두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어요. 숙소 근처 공원을 걸으며 그 친구와 함께했던 대학 시절을 하나씩 떠올렸어요. 동아리방에서 밤새 과제를 하던 기억, 함께 갔던 여행, 사소한 농담까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기억들을 혼자 곱씹으며 걸었어요.

야외 카페 테이블에 앉아 통화하는 남성의 뒷모습과 식어버린 커피잔

저녁에는 휴대전화로 장례식장 사진을 몇 장 받았어요. 화면 속 영정 사진을 보는데, 제가 지금 서 있는 자그레브의 골목과 그 장례식장 사이의 거리가 실감 나게 느껴졌어요.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말이 그날만큼은 아무 위안도 되지 않았어요.

숙소로 돌아와서는 친구와 주고받았던 오래된 메시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었어요. 몇 년치 대화가 화면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별것 아닌 농담, 서로의 근황을 묻는 안부, 언젠가 같이 여행 가자던 약속까지. 그 약속이 이제는 영영 지킬 수 없는 것이 됐다는 사실이 밤늦게까지 마음을 짓눌렀어요.


화상으로 마음을 전한 날

발인 다음 날, 친구들 몇 명이 영상통화를 걸어줬어요. 장례식장에서 입던 옷을 그대로 입은 채였어요. 화면 너머로 보이는 친구들의 피곤한 얼굴을 보면서, 제가 그 자리에 없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아프게 다가왔어요. 그래도 그렇게라도 얼굴을 보고 몇 마디를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한 친구가 "네가 보낸 꽃이 장례식장에서 제일 예뻤어"라고 말해줬어요. 미리 온라인으로 조화를 주문해 보냈는데, 그 말 한마디에 조금이나마 역할을 했다는 안도감이 들었어요. 몸은 못 갔어도 마음을 전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어요.

영상통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했어요. 화면이 꺼진 뒤에도 친구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어요. 그 밤, 자그레브의 숙소 창밖으로 보이는 낯선 도시의 불빛들이 그날따라 유난히 공허하게 느껴졌어요.


그 뒤로 생긴 작은 원칙

그 일을 겪고 나서 생긴 원칙이 하나 있어요. 가까운 사람의 경조사 소식이 오면, 갈 수 있든 없든 일단 가족에게 직접 전화를 건다는 거예요. 메시지 하나로 끝내지 않고, 목소리로 안부를 전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거리가 멀어서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을수록, 마음을 전하는 방식에 더 신경 쓰게 됐어요.

그리고 여권과 신용카드 정보를 늘 최신 상태로 관리해두는 습관도 생겼어요. 혹시라도 급하게 귀국해야 하는 상황이 다시 생긴다면, 적어도 서류 때문에 발이 묶이는 일은 없도록 하기 위해서예요. 그날의 20시간이라는 숫자가, 제 준비 부족을 뼈아프게 보여준 셈이었어요. 항공사 마일리지 계정도 긴급 상황에 바로 쓸 수 있도록 정리해뒀고, 비상금도 환전해서 따로 챙겨두게 됐어요.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

몇 달이 지난 지금도 그날 가지 않은 선택이 옳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요. 가족들은 괜찮다고 했지만, 제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그 장례식장에 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노마드로 사는 삶이 주는 자유만큼, 이런 순간에는 그만큼의 대가도 따른다는 걸 그때 처음 체감했어요.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삶을 선택한 대가로, 가장 중요한 순간에 곁에 있어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이제는 각오하고 지내요.

이제는 어디를 가든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의 건강과 안부를 더 자주 확인해요. 당연하게 여겼던 연락 한 통이, 거리가 먼 곳에 있을수록 더 소중하다는 걸 그 자그레브의 아침이 가르쳐줬어요. 멀리 있다는 이유로 미뤄뒀던 안부 전화를, 이제는 조금 더 자주 걸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