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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셋 & 웰니스 (Mindset & Wellness)

리스본에서 안경다리가 뚝 부러졌어요: 포르투갈어 간판 앞에서 헤맨 하루

by wellnomadness 2026. 10. 2.

안경다리가 뚝 부러진 순간

아침에 눈을 뜨고 침대 옆 협탁에서 안경을 집는데 손에 뭔가 가벼운 느낌이 들었어요. 들어보니 오른쪽 다리가 경첩 부분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가 있었어요. 전날 밤 피곤해서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게 화근이었어요. 협탁 모서리에 살짝 걸렸는지, 아니면 그냥 몇 년 동안 쓰던 경첩이 수명을 다했는지 알 수 없었어요.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았어요. 안경 없이는 모니터 글자도 흐릿하게 보이는 근시라, 이 상황 자체가 바로 업무 중단이었어요.

한국이었다면 별일 아니었을 거예요. 동네마다 안경점이 있고, 걸어서 5분이면 비슷한 테를 찾아 끼울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때 리스본에 있었어요. 머문 지 2주 정도 된 도시라 마트와 자주 가는 카페 정도만 겨우 익숙해진 상태였고, 안경점이 어디 있는지는 전혀 몰랐어요. 침대에 걸터앉아 부러진 다리를 손에 쥐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어요.


임시방편으로 버틴 하루

그날 오전에 화상 미팅이 하나 잡혀 있었어요. 미룰 수 없는 일정이라, 일단 숙소에 있던 테이프로 다리를 임시로 고정했어요. 테이프를 두르니 모양은 우스꽝스러웠지만 그럭저럭 얼굴에 걸칠 수는 있었어요. 다만 조금만 움직여도 삐뚤어져서, 미팅 내내 신경이 안경 쪽으로 자꾸 쏠렸어요. 화면 속 상대방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저는 말하다가도 손으로 몰래 안경을 바로잡느라 집중력이 반쯤은 거기에 가 있었어요.

미팅이 끝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어요. 구글 지도를 열어 숙소 반경 2킬로미터 안의 안경점을 검색했어요. 다행히 몇 군데가 떴어요. 그런데 검색 결과에 나온 이름이 전부 포르투갈어였어요. 영업시간도, 리뷰도 전부 포르투갈어라 어떤 곳이 믿을 만한지 가늠하기가 어려웠어요. 일단 테이프로 고정한 안경을 쓰고 가장 가까운 곳부터 가보기로 했어요.

가방을 챙기면서 문득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생기면 별다른 고민 없이 바로 움직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익숙한 거리, 익숙한 간판, 어디에 뭐가 있는지 대충 짐작이 가는 동네라서 가능한 일이었어요. 리스본의 돌바닥 골목을 걸으며 처음 보는 가게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훑는데,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간판 글자 하나하나가 그날따라 유난히 낯설게 느껴졌어요.


포르투갈어 간판 앞에서 헤맨 시간

구글 지도가 가리킨 위치에 도착했는데, 막상 간판에는 안경 그림 하나 없이 "óptica"라는 글자만 적혀 있었어요. 그게 안경점이라는 뜻인 줄도 그 순간 처음 알았어요.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문이 잠겨 있었어요. 영업시간표를 보니 점심시간이라 2시간 뒤에나 문을 연다고 적혀 있었어요. 리스본 특유의 느긋한 점심 문화를 그날 하필 안경 없이 체감하게 된 셈이었어요.

근처 카페에 앉아 시간을 때우며 생각해보니, 막막한 건 언어가 안 통한다는 사실 자체보다 '내 증상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었어요. 단순히 테를 새로 맞추는 거라면 모양만 가리키면 되지만, 혹시 시력 검사까지 다시 해야 한다면 대화가 필요할 테니까요. 커피를 마시며 번역 앱을 미리 켜두고, 상황을 설명할 문장 몇 개를 포르투갈어로 미리 번역해뒀어요. 이렇게까지 준비하고 들어가야 하나 싶었지만, 막상 그 준비가 나중에 꽤 요긴했어요.

포르투갈어 간판이 걸린 안경점 카운터에서 부러진 안경테를 들어 보이는 남성의 손


번역 앱으로 겨우 설명한 증상

2시간 뒤 다시 찾아가니 문이 열려 있었어요. 테이프로 감은 안경을 벗어 카운터에 올려놓고, 미리 번역해둔 문장을 보여줬어요. "다리가 부러졌어요, 같은 렌즈로 새 테를 맞추고 싶어요." 직원분이 안경을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뭐라고 빠르게 말했어요. 못 알아들어서 번역 앱 화면을 다시 내밀었더니, 그분도 자기 휴대전화를 꺼내 타이핑을 시작했어요. 둘이서 한참 동안 휴대전화 두 대를 오가며 대화를 이어갔어요.

대화 끝에 알게 된 건, 다행히 렌즈 도수는 그대로 쓸 수 있고 테만 새로 고르면 된다는 거였어요. 다만 같은 브랜드 재고가 없어서 비슷한 디자인의 다른 브랜드 테 몇 개를 추천받았어요. 거울 앞에서 하나씩 써보는데, 직원분이 제스처로 '이게 더 잘 어울린다'는 의견까지 보태줬어요. 말은 안 통해도 표정과 손짓만으로도 대화가 되는 순간이 있다는 걸 그날 새삼 느꼈어요.


안경점에서 받은 예상 밖의 친절

테를 고르고 나니 당일 가공은 어렵고 다음 날 오후에 찾으러 오라고 했어요. 급한 마음에 혹시 더 빨리는 안 되냐고 물었더니, 직원분이 잠깐 안쪽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임시로 쓸 수 있는 낡은 안경테 하나를 빌려줬어요. 자기네 매장에 보관돼 있던 여분이었는데, 도수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급한 대로 쓰라며 선뜻 내어줬어요. 돈을 받지도 않았어요.

낯선 도시에서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손님에게 이렇게까지 해줄 줄은 몰랐어요. 다음 날 찾으러 갔을 때 완성된 안경을 써보니 생각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얼굴에 맞았어요. 빌렸던 임시 안경을 돌려드리며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포르투갈어로 서툴게 전했어요. 직원분은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어요. 그 짧은 인사가 그날 하루 중 가장 따뜻한 순간이었어요.


그 이후로 생긴 몇 가지 습관

이 일을 겪고 나서 여행 가방을 싸는 방식이 조금 바뀌었어요. 가장 먼저 한 건 여분 안경을 하나 더 맞춰서 가방 깊숙한 곳에 넣어두는 거였어요. 평소엔 안 쓰다가 이런 비상 상황에만 꺼내 쓸 용도예요. 그리고 처방전 사진을 휴대전화와 클라우드 두 군데에 저장해뒀어요. 도수를 외우고 다니는 건 불가능하니, 언제든 꺼내 보여줄 수 있는 사진 한 장이 생각보다 큰 안심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새 도시에 도착하면 생필품 가게나 병원 위치만 확인하던 습관에 안경점 위치 확인도 추가했어요. 당장 필요 없어도 미리 알아두면 비상시에 당황하지 않으니까요. 사소한 물건 하나가 고장 나는 것만으로도 하루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걸, 저는 안경다리 하나로 배웠어요. 몸에 걸치는 작은 물건일수록 오히려 대체할 방법을 미리 마련해두는 게 노마드 생활에서는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돌이켜보면 그날 가장 크게 바뀐 건 물건을 챙기는 방식보다 마음가짐이었어요. 예전에는 낯선 도시에서 뭔가 고장 나면 일단 당황부터 했는데, 이제는 '어차피 방법은 있다'는 쪽으로 먼저 생각하게 됐어요. 리스본의 그 작은 안경점을 혼자 찾아가고, 서툰 번역 앱으로 대화를 나누고, 결국 다음 날 새 안경을 받아 쓰던 그 과정 전체가 저한테는 작은 훈련이었던 셈이에요. 이제는 어느 도시에 가든 처음 며칠은 일부러 동네를 한 바퀴 걸으며 눈에 띄는 가게 이름을 사진으로 찍어두는 습관도 생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