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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셋 & 웰니스 (Mindset & Wellness)

정전 속 낯선 이웃의 노크, 양초 하나로 마음이 놓였다

by wellnomadness 2026. 9. 30.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랐어요. 이 숙소에서 아직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 문을 열어보니 옆집 사람이 서 있었어요. 그 짧은 순간이 이 도시에서 지낸 며칠 중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이었어요.


정전으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날 저녁 갑자기 건물 전체가 정전됐어요. 노트북 배터리만 믿고 일을 하던 중이라 크게 당황했어요. 배터리도 얼마 안 남아 있었어요.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작업 중이라 더 초조했어요. 화면이 꺼지기 전에 최대한 저장부터 해두려고 급하게 손을 움직였어요. 저장 버튼을 몇 번이나 눌렀는지 모르겠어요. 혹시라도 작업한 내용이 날아갈까 봐 그 짧은 순간에도 신경이 곤두섰어요.

두꺼비집을 찾아봐야 하는지, 관리실에 연락해야 하는지조차 몰랐어요. 낯선 숙소라 구조도 익숙하지 않았고, 현지어로 상황을 설명할 자신도 없었어요. 이사 온 지 며칠 안 된 터라 관리실 번호조차 저장해두지 않은 상태였어요. 이럴 때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지조차 전혀 준비가 안 돼 있었던 거예요. 계약서 어딘가에 적혀 있었을 텐데, 그마저도 꼼꼼히 챙겨보지 않았던 게 뒤늦게 후회됐어요.

일단 휴대폰 손전등을 켜고 복도로 나가봤어요. 다른 집들도 다 불이 꺼져 있는 걸 보니, 건물 전체 문제라는 것만은 확인할 수 있었어요. 복도도 캄캄해서 벽을 짚어가며 조심스럽게 걸어야 했어요. 평소라면 몇 초면 오갈 거리인데, 그날은 유독 멀게 느껴졌어요. 다른 집 문 앞을 지날 때마다 혹시 누가 나와 있지 않을까 두리번거렸지만, 다들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는 것 같았어요.

막막한 마음으로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던 참이었어요. 그때 누군가 제 문을 두드렸어요. 순간 누구일까 싶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는데, 낯익은 얼굴은 아니었지만 적대적인 느낌은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제 상태를 먼저 살피는 눈빛이었어요.


말은 안 통해도 도움을 받았다

문을 열어보니 옆집에 사는 사람이 손전등을 들고 서 있었어요. 정전 상황을 손짓으로 설명하며, 관리실에 이미 연락했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어요.

서로 언어가 완전히 달라서 정확한 대화는 어려웠어요. 그래도 손짓과 표정만으로도 대충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어요. 번역 앱을 꺼내 몇 마디 문장을 입력해가며 대화를 이어가기도 했어요. 완벽하진 않아도 서로의 마음은 충분히 전달됐어요. 화면을 서로 건네며 문장을 확인하는 그 과정 자체가 어색하면서도 묘하게 재미있었어요. 말이 안 통해도 이렇게 소통할 방법이 있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서로 웃음이 터진 순간도 있었는데, 번역이 이상하게 되어 전혀 다른 뜻으로 나온 문장 때문이었어요.

촛불을 들고 옆집 문 앞에 서 있는 남성의 뒷모습

잠시 뒤 그 사람은 제게 양초 몇 개와 작은 손전등을 건네주고 갔어요. 몇 분 뒤에 전기가 다시 들어올 거라는 손짓도 함께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선뜻 물건을 건네줄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저였다면 같은 상황에서 이렇게 먼저 나설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한국에서 살 때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고 지낸 시간이 훨씬 길었어요. 그런데 이 낯선 곳에서 오히려 더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을 만난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졌어요. 어쩌면 익숙한 곳에서는 당연하게 여기던 거리감이, 낯선 곳에서는 오히려 더 쉽게 허물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이 다시 들어왔어요. 양초를 돌려주려고 다시 그 집 문을 두드렸더니, 그냥 가지고 있어도 된다며 웃어 보였어요. 몇 번이나 괜찮다고 손짓했지만, 그쪽에서 끝까지 괜찮다며 웃어넘겼어요. 결국 감사 인사만 몇 번 더 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어요. 다음에 뭔가 보답할 기회가 있으면 꼭 갚아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어요.

그 짧은 만남이 끝나고 방으로 돌아왔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이 낯선 동네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와 연결된 느낌이었어요. 정전이라는 불편한 상황이 오히려 이 낯선 곳을 조금 덜 낯설게 만들어준 셈이었어요. 며칠 동안 느꼈던 막막함이 그 짧은 만남으로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어요.


혼자라는 느낌이 조금 옅어졌다

그동안 새 숙소에 도착하면 이웃과는 아예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어요. 괜히 어색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어차피 몇 주 뒤면 떠날 사이라고 생각했어요. 인사를 나눠봐야 어차피 곧 떠날 텐데 굳이 관계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 싶었어요. 그런 생각으로 지난 몇 년간 수많은 이웃들을 그냥 스쳐 지나가기만 했어요. 복도에서 마주쳐도 괜히 눈을 피하고, 엘리베이터에서도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어색한 침묵을 견뎠어요. 그게 서로에게 편한 거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일을 겪고 나니 그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요. 짧게 스쳐 지나가는 사이라도, 이렇게 순간의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관계의 길이가 짧다고 해서 그 관계가 아무 의미가 없는 건 아니라는 걸, 그 양초 하나가 알려준 셈이에요. 오히려 짧은 만남일수록 더 순수하게 다가오는 친절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며칠 뒤 복도에서 그 이웃과 다시 마주쳤어요. 서로 눈이 마주치자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눴어요.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순간이었어요. 그날은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넸고, 상대방도 반갑게 손을 흔들어줬어요. 별거 아닌 그 몇 초가 하루 전체의 기분을 조금 밝게 만들어줬어요.

짧은 인사 몇 번이 쌓이면서, 복도에서 마주치는 게 더는 어색하지 않게 됐어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얼굴이 아니라, 이 건물 안에서 아는 얼굴 하나가 생긴 셈이었어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짧은 대화를 나눠요. 날씨 얘기 같은 사소한 대화였지만, 그마저도 이 낯선 건물을 조금 더 편하게 만들어줬어요.


그 정전이 아니었다면, 저는 여전히 이웃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지냈을 거예요. 낯선 도시에서 혼자 지내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는데, 아주 작은 계기 하나로 그 벽이 허물어질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알았어요. 이제는 새 숙소에 도착하면, 먼저 가벼운 인사라도 건네보려고 해요. 언제 또 서로 도움이 필요할지 모르니까요. 정전이라는 불편한 사건 하나가, 결국 이 낯선 도시에서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준 셈이에요. 그 양초는 다 쓰고 없지만, 그날의 온기만큼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