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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셋 & 웰니스 (Mindset & Wellness)

리마에서 사무치게 그리웠던 한식의 밤, 저는 결국 된장찌개를 끓였다

by wellnomadness 2026. 10. 6.

리마에서 석 달째 되던 밤, 갑자기 된장찌개가 사무치게 먹고 싶어졌어요. 한식당도 한인 마트도 지나칠 정도로 멀었던 날이었어요. 결국 그날 밤 저는 직접 된장찌개를 끓였어요.


갑자기 찾아온 그리움은 예고가 없다

낮에 일할 때는 멀쩡했어요. 화상 미팅도 평소처럼 진행했고, 업무 메일도 평소와 다름없이 처리했어요. 그런데 저녁에 혼자 숙소 주방에서 간단히 파스타를 삶으려는데, 갑자기 가슴 한쪽이 묵직하게 눌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뭔가 허전하다는 감각이 먼저 왔고, 그게 뭔지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한식이 먹고 싶었던 거예요.

냄비에 물을 올려놓고도 멍하니 서 있었어요. 파스타 면을 뜯으려던 손이 멈췄고, 머릿속에는 자꾸만 뜨끈한 국물 생각만 맴돌았어요. 몇 달 전 한국을 떠날 때만 해도 이런 그리움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이렇게 구체적으로 찾아올 줄은 몰랐어요. 특정 음식 하나가 이렇게까지 간절해지는 경험은 꽤 오랜만이었어요. 리마에 온 지 벌써 석 달이 넘었는데도 이렇게 선명한 그리움이 찾아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어요.

리마는 제가 그동안 머문 도시 중에서도 한식당을 찾기가 유난히 어려운 곳이었어요. 구글 지도를 검색해보니 가장 가까운 한식당이 택시로 40분 거리였어요. 한인 마트도 비슷한 거리였고요. 평소라면 "그래, 다음에 가지" 하고 넘겼을 텐데, 그날따라 그 거리감이 유난히 크게 느껴졌어요.

택시 앱을 열어 요금을 확인해봤어요. 왕복이면 꽤 큰 비용이었고, 거기에 식사 비용까지 더하면 이 늦은 시간에 나가는 게 과연 합리적인가 싶었어요.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동안에도 그리움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수록 그 맛이 더 또렷하게 떠올랐어요.


없는 재료로 어떻게든 비슷하게 만들어봤다

결국 택시를 부르는 대신 냉장고를 열어봤어요. 된장은 운 좋게 몇 주 전 한인 마트에 갔을 때 사둔 작은 통이 남아 있었어요. 두부는 없었지만 현지 마트에서 파는 콩 요거트 비슷한 식감의 치즈로 대체해보기로 했어요. 애호박 대신 현지에서 흔한 호박 종류를 썼고, 대파는 아예 없어서 양파로 아쉬운 대로 향을 냈어요.

재료를 하나씩 도마 위에 꺼내놓으며 머릿속으로 한국 집 주방을 떠올렸어요.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된장찌개의 순서를 기억나는 대로 되짚어봤어요.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부터 낸다는 것, 된장을 체에 걸러 푼다는 것, 마지막에 두부를 넣고 오래 끓이지 않는다는 것까지. 완벽하게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그 순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양파를 썰면서는 오랜만에 한국에 계신 어머니께 영상통화를 걸까 잠깐 고민했어요. 시차를 계산해보니 한국은 이미 자정이 지난 시간이라 그만뒀어요. 대신 마음속으로 레시피를 여쭤보듯 재료를 하나씩 넣었어요. 누군가에게 직접 묻지 못해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손맛을 더듬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어요.

물을 끓이고 된장을 풀면서도 계속 '이게 맛이 날까' 싶었어요. 멸치 육수를 낼 재료가 없어서 그냥 맹물에 된장만 풀었더니 확실히 밍밍했어요. 그래도 끓는 냄비에서 된장 특유의 구수한 냄새가 올라오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놓였어요. 완벽하지 않아도 그 냄새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됐어요.

늦은 밤 작은 주방에서 된장찌개를 끓이며 김이 올라오는 냄비를 바라보는 모습

한 숟갈 떠먹어보니 예상대로 한국에서 먹던 맛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짠맛도 애매하고 감칠맛도 부족했어요. 그래도 그날 밤 저는 그 어설픈 된장찌개를 두 그릇이나 비웠어요. 맛보다 중요했던 건 그 익숙한 냄새와 따뜻한 국물이 주는 감각 자체였어요.

밥도 없어서 현지 쌀로 대충 지은 밥에 찌개만 끼얹어 먹었어요. 정확한 한국의 맛은 아니었지만, 숟가락으로 뜨거운 국물을 떠먹을 때마다 몸이 서서히 데워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느낌 하나로 저녁 내내 무겁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어요.


그리움은 맛이 아니라 냄새에서 왔다

그날 깨달은 게 하나 있어요. 제가 그리워했던 건 완벽하게 재현된 한식의 맛이 아니라, 그 냄새와 분위기였다는 거예요. 된장이 끓을 때 나는 구수한 냄새, 뜨거운 국물을 호호 불어가며 먹는 그 행동 자체가 그리움의 실체였어요. 재료가 조금 달라도, 그 익숙한 과정만 재현되면 마음은 꽤 많이 풀렸어요.

예전에는 한식이 그리우면 무조건 한식당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대로 된 맛을 보지 못하면 그리움이 해소되지 않을 거라 믿었거든요. 그런데 그날 밤 직접 끓여본 경험으로, 꼭 완벽한 맛이 아니어도 그 과정 자체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서툴게나마 직접 만드는 행위 자체에 생각보다 큰 힘이 있었어요.

그 뒤로는 새 도시에 도착하면 한인 마트가 아무리 멀어도 된장과 고추장만큼은 꼭 미리 챙겨두게 됐어요. 부피가 크지 않으니 짐에 큰 부담도 안 되고요. 완벽한 한식을 매번 만들 수는 없어도, 비상용으로 그 냄새 하나는 언제든 재현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는 거예요.

캐리어 한쪽 구석에는 이제 된장, 고추장, 즉석밥 몇 개가 항상 자리 잡고 있어요. 다른 짐을 줄이더라도 이 구역만큼은 건드리지 않아요. 그날 리마에서의 밤처럼, 또 언제 어디서 갑작스러운 그리움이 찾아올지 모르니까요.


낯선 재료로 끓인 어설픈 된장찌개 한 그릇이, 그날 밤 리마에서의 외로움을 꽤 많이 달래줬어요. 노마드로 사는 동안 종종 찾아오는 이런 그리움은, 완벽한 해결책보다 익숙한 냄새 하나로도 충분히 다독여질 수 있다는 걸 그날 배웠어요. 다음에 또 이런 밤이 찾아오면, 이번에는 조금 더 능숙하게 냄비를 꺼낼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