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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에선 안 되던 와이파이, 식당 다섯 곳을 돌아 찾은 자리 방에서는 안테나가 한 칸에서 올라가지 않았어요자메이카 몬테고베이의 숙소에 체크인하고 방에 들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노트북을 켜는 거였어요. 예약할 때 와이파이가 제공된다고 되어 있었으니 당연히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안테나가 한 칸에서 더 올라가지 않았어요. 페이지 하나를 여는 데 한참이 걸렸고, 그마저도 중간에 끊겼어요. 메일함을 여는 것도 버거운 수준이었어요. 그날 오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분명했어요. 인터넷이 안 되면 노트북은 그냥 무거운 짐이에요. 저처럼 화면 너머의 사람들과 일하는 사람에게는 전기와 인터넷이 곧 업무 환경 전체거든요. 창밖으로는 카리브해가 눈부시게 펼쳐져 있는데, 저는 안테나 표시만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휴양지에 와서 바다 대.. 2026. 4. 3.
아침에 눈을 떴는데 여기가 어딘지 몰랐어요: 몇 초짜리 세수로 넘깁니다 눈을 떴는데 여기가 어딘지 몰랐어요아침에 깨서 천장을 보는데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던 적이 있어요. 몇 초쯤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 몇 초가 길게 느껴졌어요.창문이 어느 쪽인지, 문이 어디인지, 화장실을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가 안 떠올랐어요. 몸을 일으키고 나서야 하나씩 맞춰졌어요.처음 겪었을 때는 좀 놀랐어요. 어디 아픈 건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날 하루는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갔어요.그 뒤로 몇 번 더 있었어요. 공통점을 찾아보니 전부 옮긴 지 얼마 안 된 시기였어요.밤에 화장실을 가려다 벽에 부딪힌 적도 있어요. 불을 안 켜고 예전 방 구조대로 걸어간 거예요. 그러고 나서 한참 웃었는데 생각해 보면 좀 서글프기도 했어요.길게 자고 일어난 날에 더 심했어요. 낮잠을 오래 잔 뒤에도 비슷.. 2026. 4. 2.
지도를 끄고 바람이 미는 쪽으로: 프라하 골목을 걸었던 오후 그날은 노트북을 두고 나왔어요프라하에 머물던 어느 오후, 저는 처음으로 노트북을 숙소에 두고 나왔어요. 평소의 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어디를 가든 가방에 노트북이 들어 있어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거든요. 그날은 창문을 열어놨는데 바람이 방 안까지 들어왔어요. 프라하성 쪽에서 구시가지로 내려가는 방향의 바람이었어요. 그 바람을 맞고 있으니 문득 아무 데도 정하지 않고 그냥 걷고 싶어졌어요. 지도 앱도 켜지 않았어요. 어차피 길을 잃어도 저녁에 돌아올 숙소 이름만 알면 되니까요. 휴대폰은 주머니에 넣고 손은 비운 채로 나섰어요. 지난 이십 년 동안 저는 늘 목적지를 정하고 최단 경로를 계산하며 움직이는 사람이었어요. 어디를 가든 몇 시까지 무엇을 하고 다음은 어디로 갈지가 머릿속에 짜여 있었어요. 여.. 2026. 4. 2.
회사를 나오니 두 시간도 못 앉아 있겠더라고요: 없어진 게 월급만이 아니었어요 회사를 나오니 책상이 없었어요20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처음 며칠은 좋았어요. 아침에 안 나가도 되고 하루를 제가 정하니까요.그런데 일을 시작하려고 앉았는데 앉을 데가 마땅치 않았어요. 식탁에 노트북을 놓고 두 시간쯤 하다가 목이 뻐근해서 일어났어요.그날 저녁에 생각했어요. 회사에서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왜 지금은 두 시간도 못 앉아 있지 하고요.답은 단순했어요. 회사에는 제가 앉으라고 만들어둔 자리가 있었거든요. 저는 그걸 한 번도 제가 마련한 적이 없었어요.그때는 그게 제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회사를 안 다니니까 몸이 풀어진 건가 싶었어요. 며칠 더 해보고 나서야 앉아 있는 자리가 다르다는 게 눈에 들어왔어요.집에서 일하면 편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도 있어요. 출근을 안 하니까요. 그런데 편.. 2026. 4. 1.
시장에서 사 놓고 버린 뒤 바꾼 장보기 방식 관광지보다 시장이 먼저인 이유낯선 도시에 짐을 풀고 이틀쯤 지나면 저는 재래시장을 찾아가요. 유명한 곳들을 둘러보는 건 그다음이에요.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그 동네에서 뭘 사 먹을 수 있는지 알아야 나머지 생활이 정해지기 때문이에요. 대형 마트도 물론 가요. 오히려 처음 며칠은 마트가 편해요. 가격표가 붙어 있고, 계산대가 있고, 말을 한마디도 안 해도 장을 볼 수 있으니까요. 다만 마트만 다니면 그 도시에서 뭐가 흔하고 뭐가 귀한지가 잘 보이지 않아요. 어느 나라 마트를 가든 진열 방식이 비슷하고, 수입 식품이 섞여 있어서 여기가 어디인지 흐릿해져요. 시장은 달라요. 그날 들어온 것만 놓여 있어서, 무엇이 제철인지가 그냥 눈에 보여요. 그래서 저는 시장을 장 보는 곳이라기보다 그 도시를 파악.. 2026. 4. 1.
낯선 방에서 첫날 밤을 보내는 방식 첫날 밤은 거의 항상 설쳤어요숙소를 옮긴 날 밤에 잘 못 자는 건 오래된 일이에요. 아무리 피곤해도 그래요. 비행기를 오래 타고 와서 몸은 녹초인데 눈만 말똥말똥한 밤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침대가 불편한 것도 아니고, 방이 시끄러운 것도 아니에요. 그냥 잠이 얕아요. 두어 시간마다 깨고, 깰 때마다 여기가 어디였는지 잠깐 생각해야 해요. 이상한 건 다음 날부터는 괜찮다는 거예요. 같은 침대, 같은 방인데 이틀째부터는 푹 자요. 그러니까 문제는 침대가 아니라 첫날이라는 조건 자체였어요. 나중에 이게 꽤 알려진 현상이라는 걸 알았어요. 낯선 곳에서 자는 첫날 밤에는 뇌가 완전히 쉬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어요. 몸의 절반은 자고 절반은 주변을 살피는 셈이라고 해요. 그 설명을 보고 나서 조금 마음이 놓였어요... 2026. 3.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