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5 거울에서 아버지 얼굴을 봤다, 노화를 늦추려던 몇 년을 그만둔 이유 세면대 거울을 보다가 아버지 얼굴을 봤어요. 잠깐 놀라서 그대로 멈췄어요. 닮았다는 이야기는 어릴 때부터 들었는데 그날은 닮은 정도가 아니었어요.거울에서 아버지 얼굴을 봤다특별한 일이 있었던 밤은 아니에요. 늦게 씻으려고 서 있었는데 조명 각도가 그랬는지 순간 다르게 보였어요. 몇 초쯤 그대로 서 있었어요.제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그 나이 때 얼굴이었어요. 사진으로 남아 있는 모습이요. 지금 계산해 보면 그때 아버지가 딱 지금 제 나이쯤이셨을 거예요.그러고 나서 며칠 동안 자꾸 얼굴을 봤어요. 예전에는 거울을 봐도 얼굴을 안 봤어요. 씻고 나가는 데 필요한 만큼만 보고 지나갔죠.제대로 보니 여러 가지가 보였어요. 웃을 때 접히는 자국이 안 펴지고, 눈 밑이 예전 같지 않고, 머리가 앞쪽에서 조금 물러나 있.. 2026. 8. 25. 계산서 앞에서 매번 멈칫했어요: 미국 팁을 정리하는 데 몇 년이 걸린 이야기 계산서 앞에서 매번 멈칫했어요미국에 와서 제일 오래 어색했던 게 팁이었어요. 음식 맛이나 영어보다 이게 더 신경 쓰였어요. 계산서를 받으면 잠깐 멈춰서 계산을 해야 하고, 그 몇 초 동안 종업원이 옆에 서 있으면 마음이 급해져요. 얼마가 적당한지 모르는 상태로 숫자를 적어 넣는 게 매번 불편했어요.한국에서는 이런 판단을 할 일이 없었어요. 적힌 금액을 내면 끝이니까요. 그런데 여기서는 마지막에 제가 정해야 하는 항목이 하나 더 있어요. 그것도 상대가 보는 앞에서요. 액수가 큰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부담이 됐어요.처음 몇 달은 그냥 많이 줬어요. 적게 줘서 무례한 사람이 되는 게 싫었거든요. 몰라서 후하게 주는 쪽을 택한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그게 몇 년 쌓이면 꽤 큰 .. 2026. 8. 20. 괜찮으시냐고 묻는 걸 그만뒀어요: 멀리서 부모님 안부를 확인하는 법 전화를 끊고 나면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고요부모님과 통화를 하면 대화가 늘 비슷하게 흘러가요. 밥은 먹었냐, 거긴 날씨가 어떠냐, 몸은 괜찮냐. 저도 비슷하게 답하고, 별일 없다는 말을 주고받고 끊어요. 통화 시간은 10분쯤이고 서로 기분은 나쁘지 않아요. 끊고 나면 할 일을 했다는 느낌도 들고요.그런데 어느 날 전화를 끊고 나서 문득 생각했어요. 방금 통화에서 제가 알게 된 게 뭐가 있지. 아무것도 없었어요. 부모님이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어디가 불편하신지, 병원에는 다니시는지 저는 하나도 몰랐어요. 매주 통화를 하면서도요.이유는 간단해요. 제가 안부를 물었고 부모님은 안부로 답하셨거든요. 괜찮냐고 물으면 괜찮다는 답이 돌아오는 게 당연해요. 특히 멀리 있는 자식에게는 더 그렇고요. 걱정시키고 싶지 않.. 2026. 8. 18. 팔이 짧아졌어요 팔이 짧아졌어요언젠가부터 휴대폰을 조금씩 멀리 들고 보게 됐어요. 처음에는 제가 그러는 줄도 몰랐어요. 어느 날 문자를 확인하는데 글자가 흐릿해서 저도 모르게 팔을 쭉 뻗고 있더라고요. 팔을 다 펴야 겨우 초점이 맞았어요. 우스갯소리로 나이가 들면 팔이 짧아진다고들 하는데, 그게 딱 제 이야기가 됐어요. 식당에서 메뉴판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멀찍이 들었고, 약통 뒤의 작은 글씨는 아예 읽기를 포기했어요. 그런데도 저는 한동안 이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그냥 그날 눈이 좀 피곤한가 보다 했어요. 나이 이야기는 떠올리지 않았어요. 정확히는 떠올리기 싫었던 것 같아요.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신호는 늘 이렇게 슬그머니 오는데, 저는 매번 그걸 다른 걸로 둘러대곤 했어요.핑계를 대던 시기그 뒤로 한동안은 핑계.. 2026. 7. 27. 신호가 끊기는 곳으로: 40대 노마드가 국립공원에서 머리를 비우는 법 일을 두고 떠나는 게 죄스럽던 시절한동안은 며칠씩 국립공원으로 차를 모는 게 어쩐지 죄스러웠어요. 혼자 일하는 사람한테는 내가 멈추면 모든 게 멈추니까, 자리를 비운다는 게 곧 손해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처음 몇 번은 떠나긴 떠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운전하는 내내 머릿속으로는 밀린 일을 세고 있었고, 웅장한 협곡 앞에 서서도 사진 한 장 찍고는 곧바로 휴대폰을 열어 메일함을 확인했어요. 몸은 대자연 앞에 있는데 머리는 여전히 책상에 앉아 있었던 거예요. 그렇게 다녀오면 쉰 것도 아니고 일한 것도 아닌, 어정쩡한 피로만 남았어요. 큰맘 먹고 시간과 기름값을 써서 다녀왔는데 돌아온 게 피곤함뿐이면, 다음에 또 떠날 마음이 안 생기더라고요. 사실 회사를 다닐 땐 이런 고민이 없었어요. 휴가를 내면.. 2026. 6. 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