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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체류4

한국에서 온 친구와 보낸 며칠, 여행 온 사람과 사는 사람은 시간표가 달랐다 한국에서 친구가 놀러 온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든 감정은 반가움이 아니었어요. 그 주에 마감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 생각을 한 제가 좀 별로였어요.반가운데 계산이 먼저 됐다연락을 받자마자 달력을 열었어요. 그 주에 뭐가 있는지, 며칠을 비울 수 있는지를 봤어요.그러고 나서 좀 이상했어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인데 제가 일정부터 계산하고 있었으니까요.그런데 어쩔 수가 없어요. 저는 여기서 살고 있는 거지 여행 중이 아니거든요. 친구가 오는 그 주에도 일은 그대로 있어요.회사에 다니면 휴가를 내면 되잖아요. 저는 낼 데가 없어요. 안 하면 그만큼 밀리고 그건 다음 주로 넘어가요.그래서 반가움과 부담이 같이 왔어요. 이 감정을 친구에게 말할 수는 없어서 그냥 좋다고만 했고요.돌아보면 이게 제일 어려운 부분.. 2026. 8. 30.
해외 생활 20년, 집이 어디냐는 질문에 아직 답을 못 정했다 집에 언제 가냐는 말에 답을 못 한 적이 있어요. 상대는 인사처럼 물은 건데 저는 몇 초 동안 생각했어요. 어디를 말하는 건지 몰라서요.집에 언제 가냐는 말에 답을 못 했다그날 상대가 물은 건 한국이었어요. 오래 나와 있으니 언제 돌아가냐는 뜻이었죠. 흔한 질문이에요.그런데 저는 잠깐 다른 걸 떠올렸어요. 그때 제가 머물던 방이요. 그날 밤에 돌아갈 곳은 거기였으니까요.결국 웃으면서 아직 계획 없다고 답했어요. 그런데 그 질문이 며칠 남았어요. 답을 못 한 게 아니라 답이 여러 개였던 거예요.비슷한 질문을 자주 받아요. 어디 사냐, 어디서 왔냐, 집이 어디냐요. 상황마다 다른 답을 하게 돼요.서류에 적을 때, 처음 만난 사람에게 말할 때, 오래 알던 사람과 이야기할 때가 다 달라요. 거짓말을 하는 건 아.. 2026. 8. 27.
어디가 제일 좋았냐는 질문에 매번 버벅여요: 도시가 두 종류로 나뉘거든요 어디가 제일 좋았냐는 질문을 자주 받아요이렇게 지낸다고 하면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 있어요. 그동안 다닌 데 중에 어디가 제일 좋았냐는 거예요.그런데 저는 이 질문에 매번 버벅여요. 한 곳을 못 고르겠어서요. 몇 초 생각하다가 결국 두세 곳을 말하게 되고, 그러면 상대도 좀 애매한 표정이 돼요.처음에는 제가 기억력이 나빠서 그런 줄 알았어요. 다녀온 곳이 쌓이니까 흐려지는 거라고요.그런데 몇 번 더 받아보고 알았어요. 문제는 제 답이 아니라 질문이 하나였다는 거였어요.질문하시는 분들이 기대하는 답이 어떤 건지도 알아요. 지명 하나와 짧은 이유요. 그게 대화가 이어지기 좋은 형태거든요. 그런데 제 안에서는 그 답이 안 만들어져요.그러다 언제부턴가 그냥 최근에 있었던 곳을 말하게 됐어요. 성의 없는.. 2026. 4. 5.
20년 기다린 도시에 갔는데 사흘 만에 아무 느낌이 없었어요 20년 동안 가보고 싶었던 도시였어요직장 다닐 때부터 언젠가 가겠다고 정해둔 도시가 하나 있었어요. 치앙마이요. 그 이름을 처음 들은 게 20대였는데 실제로 간 건 한참 뒤였어요.그동안 그곳 사진을 자주 봤어요. 언제 갈 수 있을까 하면서요. 그 도시가 제 머릿속에서는 실제 장소라기보다 어떤 상태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그래서 비행기를 탈 때 설렘보다 긴장이 컸어요. 오래 기다린 만큼 실망하면 어쩌나 싶었거든요.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어요. 다만 제가 예상한 방식은 아니었어요.그 시절에는 그런 도시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됐어요. 지금 여기가 전부가 아니라는 증거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오래 미뤄두면서도 자꾸 들여다봤던 것 같아요.숙소를 잡을 때도 오래 골랐어요. 어차피 한 달인데 며칠 여행.. 2026. 3.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