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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라이프 (Nomad Life)

낯선 나라에서 머리 자르기

by wellnomadness 2026. 7. 26.

노마드 생활에서 제일 겁났던 일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일을 다 스스로 해결해야 해요. 낯선 곳에서 장을 보고, 교통편을 알아보고, 급하면 약국을 찾는 일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어요. 그런데 유독 오래도록 겁이 났던 일이 하나 있어요. 바로 머리를 자르는 거예요.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어요. 그깟 머리 자르는 게 뭐가 무섭냐고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게 꽤 부담스러운 일이에요. 우선 말이 잘 안 통해요. 원하는 걸 정확히 설명해야 하는데 그게 제일 어려워요. 게다가 한번 자르면 되돌릴 수가 없어요. 음식이 입에 안 맞으면 안 먹으면 그만이고, 숙소가 별로면 다음엔 다른 데 가면 돼요. 그런데 머리는 잘못 잘라도 몇 주 동안 그 상태로 다녀야 해요. 마음에 안 드는 결과를 몸에 붙이고 다녀야 한다는 게, 다른 일과는 확실히 달랐어요.


말 안 통하는 미용실에서 생긴 일

처음 외국에서 머리를 자른 날을 아직 기억해요. 큰맘 먹고 동네 미용실에 들어갔어요. 아는 단어 몇 개와 손짓으로 옆이랑 뒤는 짧게, 위는 조금만 다듬어 달라고 했어요. 제 딴에는 분명히 전달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거울 속 결과는 상상과 꽤 달랐어요. 옆이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짧게 밀려 있었어요. 아마 제 손짓을 그쪽에서 다르게 알아들은 것 같아요. 자르는 중간에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말로 멈추게 할 수가 없어서 그냥 끝까지 갔어요. 미용실을 나오면서 좀 허탈했어요. 그 뒤로 며칠은 거울 볼 때마다 어색했고요. 그날 이후로 저는 외국에서 머리 자르는 걸 한동안 미뤘어요. 머리가 좀 길어 지저분해져도 참았어요. 또 실패할까 봐 겁이 났거든요. 별것 아닌 일 같은데, 낯선 곳에서는 이런 사소한 일 하나가 은근히 스트레스가 돼요.

낯선 나라의 이발소 의자에 앉아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맡기고 있는 모습


사진과 손짓, 그리고 숫자

그렇다고 계속 미룰 수는 없으니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지금 제가 쓰는 방식은 단순해요. 먼저 원하는 머리 모양 사진을 몇 장 저장해 가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사진 한 장을 보여주는 게 훨씬 나아요. 옆머리와 뒷머리는 바리캉 번호로 이야기해요. 삼 번, 육 번 하는 식으로 손가락과 함께 보여주면 대충 통해요. 그리고 자르기 시작하면 중간에 한 번 거울로 확인하고 싶다고 손짓을 해요. 끝나고 나서 후회하는 것보다 중간에 짧게 확인하는 게 나으니까요. 이 방법을 쓰고 나서는 크게 실패하는 일이 확 줄었어요. 완벽하진 않아도 적어도 상상과 아주 딴판인 결과는 안 나와요. 돌이켜보면 처음의 실패는 실력이 아니라 준비의 문제였어요. 사진 한 장만 있었어도 그날 그렇게 짧게 밀리진 않았을 거예요. 한 가지 더 신경 쓰는 게 있다면, 되도록 손님이 많은 곳에 가요. 대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만큼 그 동네에서 검증된 곳이라는 뜻이니까요. 처음 몇 번은 한산한 곳에 들어갔다가 아쉬운 적이 있어서 생긴 버릇이에요.


망쳐도 몇 주면 자라요

방법이 생긴 뒤에도 가끔은 마음에 안 드는 날이 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예전만큼 스트레스는 아니에요. 이유는 단순해요. 머리는 자라거든요. 마음에 안 들어도 몇 주 지나면 다시 자라고, 그 사이에 또 자를 기회가 와요. 처음에는 이 당연한 사실을 자꾸 잊었어요. 눈앞의 어색한 머리만 보고 큰일 난 것처럼 느꼈죠. 그런데 여러 번 겪다 보니 알겠더라고요. 어차피 임시예요. 길어야 몇 주짜리 실수인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니 낯선 미용실 의자에 앉는 게 훨씬 편해졌어요. 그러고 보면 여행지에서 겁이 나는 일들도 대부분 얼마나 오래 남느냐로 따져보면 가벼워지는 것 같아요. 되돌릴 수 없어 보여도, 실은 몇 주면 지나가는 일이 꽤 많거든요. 머리 자르는 일은 그중에서도 회복이 가장 빠른 축이었어요. 아무리 이상하게 잘려도 결국은 원래대로 돌아오니까요. 이 사실 하나를 받아들이고 나니, 의자에 앉아 남에게 맡기는 그 순간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이발소 의자에 앉은 삼십 분

외국에서 머리를 자르다 보면 뜻밖의 것도 얻어요. 미용실이나 이발소 의자에 앉는 그 삼십 분이, 그 나라를 아주 가까이서 겪는 시간이라는 거예요. 관광객으로 다닐 때는 대개 돈을 내고 뭔가를 받고 지나가요. 그런데 머리를 자를 때는 낯선 사람이 제 머리를 오래 만지고 곁에 붙어 있어요. 어떤 곳은 자르는 내내 말을 걸어요. 알아듣진 못해도 분위기로 대충 통하고, 서로 웃게 돼요. 어떤 곳은 다 자른 뒤 목덜미를 정리해주거나 어깨를 툭툭 털어주는데, 그 손길에서 그 동네의 방식 같은 게 느껴져요. 태국의 한 이발소에서는 끝나고 시원한 물수건을 얹어줬고, 어떤 곳은 묻지도 않았는데 면도까지 해줬어요. 이런 건 관광 안내서에 안 나와요. 머리를 자르러 들어가야만 겪는 거예요. 저는 그 삼십 분이 그 도시에서 잠깐이나마 손님으로 대접받는 시간이라고 느껴요.

이발사에게 휴대폰 속 원하는 머리 사진을 보여주는 모습


결국은 남에게 맡기는 일이에요

처음 그 실패를 겪었을 때만 해도, 저는 외국에서 머리 자르는 일을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에요. 무엇이 달라졌나 생각해보면, 기술이 늘었다기보다 마음이 바뀐 것 같아요. 말도 안 통하는 사람에게 제 머리를 맡기고 삼십 분을 가만히 앉아 있는 일에 익숙해진 거예요. 처음에는 그 시간이 불안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그냥 눈을 감고 맡겨요. 어차피 제가 할 수 있는 건 사진을 보여주는 데까지고, 그다음은 그 사람 손에 달렸으니까요. 낯선 곳에서 지내다 보면 이렇게 남에게 맡겨야만 하는 순간이 종종 있어요. 처음 가는 병원이든, 이발소든, 처음 보는 기사님의 차든요. 그때마다 제가 다 통제할 수는 없다는 걸 받아들이게 돼요. 머리 자르는 일이 저에게는 그 연습 같은 거였어요. 별것 아닌 삼십 분이지만, 그 안에 낯선 곳에서 사는 법이 조금 들어 있었어요. 요즘은 낯선 나라에 한동안 머물게 되면 자리를 좀 잡은 뒤 동네 이발소를 한 곳 정해둬요. 겁내던 일이 어느새 그 도시에 잠깐 뿌리를 내리는 저만의 방식이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