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15분 전, 코워킹 스페이스 와이파이가 통째로 끊겼어요. 직원도 원인을 모른다고 했어요. 결국 그날 발표는 휴대전화 핫스팟으로 버텨야 했어요. 노트북 화면만 쳐다보며 새로고침을 몇 번이나 눌렀는지 몰라요.
신호가 갑자기 사라졌다
하노이의 코워킹 스페이스는 평소 와이파이 속도가 꽤 괜찮은 곳이었어요. 몇 주째 그곳에서 작업했는데 한 번도 끊긴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하필 중요한 투자자 미팅 발표가 있던 날, 접속이 아예 안 됐어요. 노트북 화면 상단에 뜬 "연결할 수 없음" 표시를 보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어요.
그 자리는 베트남 진출을 검토 중인 투자자들과의 첫 화상 미팅이었어요. 몇 주 동안 자료를 준비하고, 발표 순서까지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되짚어본 날이었어요. 그런 자리를 코앞에 두고 인터넷이 끊긴다는 건 상상도 못 했던 변수였어요. 평소라면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자료를 다시 훑어봤을 시간에, 저는 대신 와이파이 아이콘만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어요.
직원에게 달려가 물으니 건물 전체 인터넷 회선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어요. 복구까지 얼마나 걸릴지도 알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어요. 발표까지 남은 시간은 15분. 다른 코워킹 스페이스로 옮길 시간도 안 됐어요.
근처에 다른 카페라도 가야 하나 싶어 지도를 켰지만, 걸어서 10분 거리였고 거기 가서 와이파이 상태를 확인하고 자리까지 잡으려면 이미 발표 시간을 넘길 게 분명했어요. 그 순간 선택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어요. 자리에서 그대로 버티거나, 어떻게든 다른 연결 방법을 찾는 것뿐이었어요.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이용자들도 다들 휴대전화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어요. 몇몇은 짜증 난 표정으로 직원에게 항의하고 있었고, 몇몇은 이미 짐을 챙겨 자리를 뜨고 있었어요. 그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저만 발표 시간이 코앞이라는 생각에 더 조급해졌어요.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다른 노마드 한 명이 제 상황을 보고는 "핫스팟 켜봤어요?"라고 먼저 물어왔어요. 당황한 와중에도 그 한마디가 생각의 전환점이 됐어요. 서로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곤란을 겪는 사람들끼리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게 되더라고요. 그 짧은 조언 덕분에 멈춰 있던 머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결국 휴대전화 핫스팟을 켰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 휴대전화 데이터로 핫스팟을 켰어요. 베트남 유심의 데이터 속도가 화상 미팅을 버틸 만큼 나올지 걱정이 됐어요. 일단 노트북을 핫스팟에 연결하고, 화면 공유 테스트부터 해봤어요. 다행히 끊기지는 않았지만, 화질이 눈에 띄게 떨어졌어요.
테스트 삼아 화면 공유를 켜놓고 5초, 10초를 세어가며 끊김이 있는지 확인했어요. 손목시계도 없이 숫자를 세는 게 어색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게 가장 중요한 일처럼 느껴졌어요. 몇 번의 테스트 끝에 그래도 버틸 만하다는 판단이 섰고, 발표 시작 2분을 남기고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어요.

발표 자료의 이미지와 그래프가 많아서 화질 저하가 걱정됐어요. 급하게 자료를 단순화할 시간도 없어서, 일단 카메라를 끄고 화면 공유에만 데이터를 쓰기로 했어요. 혹시라도 중간에 끊기면 전화로 이어가겠다는 계획까지 세워뒀어요. 만약을 대비해 발표 자료를 PDF로도 따로 저장해, 메신저로 바로 공유할 수 있게 준비해뒀어요.
발표가 시작되자 생각보다 안정적으로 진행됐어요. 중간에 한 번 화면이 멈칫했지만 금방 복구됐어요. 투자자 쪽에서도 특별히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았어요. 발표 내내 손에 땀이 났지만, 목소리만큼은 최대한 평온하게 유지하려 애썼어요.
발표 중간에 질문이 들어올 때마다 속으로 '제발 지금은 끊기지 마라' 하고 기도하는 심정이었어요. 다행히 가장 중요한 숫자 자료를 설명하는 구간에서는 한 번도 끊기지 않았어요. 그 몇 분 동안 제가 들었던 긴장감을 상대방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게, 끝나고 나서 오히려 더 신기하게 느껴졌어요.
끝나고 나서야 데이터 사용량을 확인했다
발표가 끝나고 나서 데이터 사용량을 확인해보니 1시간 만에 한 달 요금제의 3분의 1을 써버렸어요. 화면 공유가 생각보다 데이터를 많이 먹는다는 걸 그날 제대로 체감했어요. 다행히 그날 안에 추가로 데이터를 충전할 수 있는 요금제라 큰 문제는 없었어요.
사용량 그래프를 보면서 혼자 웃음이 났어요. 평소 한 달 내내 쓰던 데이터량을 그 한 시간 발표에 거의 다 쏟아부은 셈이었으니까요. 다음 미팅부터는 화질을 조금 낮춰서라도 데이터 소모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어요.
코워킹 스페이스 와이파이는 결국 3시간 뒤에나 복구됐어요. 알고 보니 건물 전체 배선 공사 때문에 생긴 일시적 문제였다고 했어요. 다른 입주사들도 다들 비슷한 피해를 겪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어요. 직원은 미안한 기색으로 다음 달 이용료에서 일부를 할인해주겠다고 안내했지만, 그보다는 발표가 무사히 끝났다는 사실 자체가 더 큰 위안이었어요.
그 뒤로는 중요한 미팅 전날이면 데이터 요금제를 넉넉하게 충전해두는 걸 당연한 루틴으로 삼았어요. 코워킹 스페이스 와이파이가 아무리 안정적이어도, 중요한 날에는 항상 핫스팟이라는 두 번째 선택지를 미리 준비해둬요. 그날의 15분이 가르쳐준 건, 믿을 건 와이파이가 아니라 대안을 갖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어요. 지금은 중요한 미팅 날짜가 잡히면 전날 밤 꼭 유심 데이터 잔량부터 확인하는 게 체크리스트의 맨 앞에 자리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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