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즈니스 생산성 (Productivity)

트빌리시에서 노트북 화면이 깨졌어요: 수리점을 찾아 헤맨 하루

by wellnomadness 2026. 10. 8.

가방 속에서 "쩍" 소리가 났어요

트빌리시 구시가지의 좁은 돌계단을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뎠어요. 메고 있던 백팩이 바닥으로 꽂듯이 떨어졌어요. 순간 가방 안에서 "쩍" 하는 소리가 났어요. 노트북이 들어 있다는 걸 깨닫고 심장이 멎는 것 같았어요. 가방을 열어보니 액정 한쪽 모서리부터 거미줄처럼 금이 퍼져 있었어요.

전원을 켜보니 화면 절반은 그래도 보였지만, 금이 간 부분은 색이 번지고 깜빡거렸어요. 그 노트북 하나로 모든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면이 멈추는 순간 머릿속에서도 뭔가가 같이 멈춰버리는 느낌이었어요. 당장 처리해야 할 작업들이 하나씩 떠오르면서 손이 떨렸어요.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노트북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상태를 확인했어요. 지나가던 현지인 몇 명이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봤지만, 그걸 신경 쓸 여유도 없었어요. 당장 다음 날까지 넘겨야 하는 마감이 두 개나 있었는데, 그 생각이 들자마자 등줄기가 서늘해졌어요.


수리점을 찾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구글 지도에 "노트북 수리"를 검색했어요. 몇 군데가 떴지만 리뷰가 거의 없거나 영어로 된 정보가 전혀 없었어요. 조지아어로 적힌 상점 이름을 하나하나 번역 앱에 넣어가며 어떤 곳이 믿을 만한지 가늠해야 했어요.

가장 평점이 높은 곳을 찾아갔는데, 막상 가보니 문이 닫혀 있었어요. 영업시간이 구글 지도와 다르게 운영되는 모양이었어요. 다음으로 가까운 곳을 찾아 걸어갔어요. 노트북 없이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했어요.

트빌리시 골목 계단에 앉아 화면이 깨진 노트북을 들고 있는 모습

세 번째로 찾은 작은 전자제품 수리점에서 겨우 영어가 통하는 직원을 만났어요. 화면을 보여주니 직원은 바로 "크랙"이라는 단어를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어요. 다행히 같은 모델의 액정 패널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답을 들었어요.

그 작은 가게 안은 각종 전자제품 부품들로 가득했어요. 직원이 모델명을 확인하려고 노트북 바닥면을 꼼꼼히 살펴보는 동안, 저는 혹시 "부품이 없다"는 말이 나올까 봐 조마조마하게 지켜봤어요. 다행히 직원은 창고 어딘가에 비슷한 모델의 재고가 있을 것 같다며 확인해보겠다고 했어요.


부품을 구하는 데 사흘이 걸렸다

문제는 액정 패널이 트빌리시에 바로 없다는 거였어요. 직원은 조지아 내 다른 도시에서 부품을 가져와야 한다며 사흘 정도 걸릴 거라고 했어요. 그 사흘 동안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노트북 없이 할 수 있는 업무가 거의 없었거든요.

숙소 근처 코워킹 스페이스에 데스크톱 대여 서비스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평소라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서비스였는데, 그 순간만큼은 구원처럼 느껴졌어요. 하루 대여료를 내고 공용 데스크톱으로 급한 업무만 겨우 처리했어요.

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혹시 급하면 노트북도 하루 빌려줄 수 있다고 알려줬어요. 데스크톱 대여료의 세 배 가까운 가격이었지만, 그 순간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마감이 걸린 작업 두 개만이라도 안전하게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가격을 따질 여유조차 없었어요.

익숙하지 않은 키보드와 낯선 모니터 비율로 일하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어요. 평소 쓰던 단축키도 몇 개는 작동하지 않았고, 파일을 옮기는 것도 클라우드를 거쳐야 해서 번거로웠어요. 그래도 아예 일을 못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어요.


사흘 만에 되살아난 노트북

사흘 뒤 수리점에서 연락이 왔어요. 부품이 도착했고 교체 작업도 끝났다는 소식이었어요. 찾으러 가는 길이 그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어요. 화면을 켜는 순간, 금이 간 자국 없이 깨끗하게 돌아온 액정을 보고 안도감이 밀려왔어요.

수리비는 걱정했던 것보다 저렴했어요. 조지아의 부품 가격과 인건비가 한국보다 낮은 편이라 그런 것 같았어요. 직원에게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수리점을 나섰어요. 노트북 가방을 끌어안듯 품에 안고 걸었던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수리점을 나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근처 카페에 앉아 클라우드에 올려둔 파일들이 전부 무사한지 확인하는 거였어요. 다행히 작업 파일은 하나도 손실되지 않았어요. 화면이 깨진 사흘 동안에도 클라우드 동기화만은 꾸준히 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안도했어요.


그 뒤로 생긴 가방 패딩 습관

그 일을 겪고 나서 가장 먼저 한 건 노트북 전용 파우치를 하나 더 산 거였어요. 기존에 쓰던 가방 수납공간만으로는 충격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다는 걸 그날 알았어요. 두꺼운 패딩이 있는 파우치에 노트북을 한 번 더 감싸서 넣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중요한 파일은 항상 클라우드에 실시간으로 동기화되도록 설정을 바꿨어요. 노트북 자체가 고장 나도 작업 파일만은 안전하게 지킬 수 있도록요. 데스크톱 대여 서비스가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 목록도 미리 몇 군데 저장해두는 습관이 생겼어요.


장비 하나에 너무 많은 걸 의존했다는 자각

그 사흘 동안 가장 크게 느낀 건, 제 일 전체가 노트북 한 대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어요. 백업 장비나 대체 수단을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혼자 일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단일 장비 의존이 더 위험하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어요. 회사에 다닐 때는 IT팀이 알아서 처리해주던 일을, 혼자 일하는 지금은 전부 스스로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도 새삼 체감했어요.

지금은 여행용 보조 키보드와 저렴한 보조 노트북 하나를 따로 챙겨 다녀요. 평소엔 안 쓰지만, 혹시 주 장비에 문제가 생기면 최소한의 업무는 이어갈 수 있도록요. 트빌리시의 그 돌계단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도 노트북 하나에 모든 걸 걸고 있었을 거예요. 가방을 멜 때도 노트북이 바닥에 닿지 않도록 안쪽 깊숙이 넣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붙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