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동안 가보고 싶었던 도시였어요
직장 다닐 때부터 언젠가 가겠다고 정해둔 도시가 하나 있었어요. 치앙마이요. 그 이름을 처음 들은 게 20대였는데 실제로 간 건 한참 뒤였어요.
그동안 그곳 사진을 자주 봤어요. 언제 갈 수 있을까 하면서요. 그 도시가 제 머릿속에서는 실제 장소라기보다 어떤 상태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비행기를 탈 때 설렘보다 긴장이 컸어요. 오래 기다린 만큼 실망하면 어쩌나 싶었거든요.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어요. 다만 제가 예상한 방식은 아니었어요.
그 시절에는 그런 도시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됐어요. 지금 여기가 전부가 아니라는 증거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오래 미뤄두면서도 자꾸 들여다봤던 것 같아요.
숙소를 잡을 때도 오래 골랐어요. 어차피 한 달인데 며칠 여행처럼 정하기가 아까웠어요. 결국 조용한 골목에 있는 곳으로 정했는데 그 선택은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해요.
사흘쯤 지나니 아무 느낌이 없었어요
첫날과 둘째 날은 좋았어요. 공기가 다르고 길이 다르니까 계속 두리번거리게 돼요.
그런데 사흘쯤 지나니 그게 가라앉았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나가서 일하고 저녁을 먹었어요. 원래 살던 데서 하던 것과 순서가 같았어요.
그때 좀 당황했어요. 20년을 기다린 곳인데 특별한 기분이 안 드는 거예요. 제가 뭘 잘못하고 있나 싶었어요.
그래서 며칠은 억지로 돌아다녔어요. 유명하다는 데를 찾아갔고 사진도 찍었어요. 그런데 그게 더 이상했어요. 관광하러 온 게 아닌데 관광객처럼 굴고 있으니까요.
사진을 많이 찍은 것도 그 며칠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찍은 사진들을 나중에 보니 대부분 안 보게 되더라고요. 기억이 없는 사진은 남의 사진 같아요.
주변에 다녀온 분들 이야기를 미리 많이 들은 것도 영향이 있었어요. 좋았다는 이야기만 들으니까 저도 그렇게 느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감정은 그렇게 주문해서 나오는 게 아니더라고요.
한 달은 여행하기엔 길고 살기엔 짧아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알았는데, 그 애매함이 기간 때문이었어요.
며칠이면 여행이에요. 계획을 세우고 다 보고 돌아오면 돼요. 몇 년이면 사는 거고요. 천천히 알아가면 되니까 서두를 게 없어요.
한 달은 그 사이에 있어요. 여행처럼 다 보기에는 일을 해야 해서 시간이 없고, 사는 것처럼 여유를 부리기에는 떠날 날이 이미 정해져 있어요.
그래서 계속 계산하게 돼요. 오늘 안 가면 못 갈 수도 있다고요. 그 계산이 하루를 조급하게 만들어요.
이게 제일 힘들었어요. 일하는 동안에는 못 노는 게 아깝고, 나가 있는 동안에는 일이 밀려서 불안하고요.
돌아갈 날이 정해져 있다는 게 생각보다 크게 작동해요. 며칠 남았는지를 자꾸 세게 되고, 세다 보면 지금 이 시간이 아깝게 느껴져요. 그러면 정작 앞에 있는 걸 못 봐요.
그리고 한 달은 그 도시를 안다고 하기에도 애매해요. 다녀온 뒤에 누가 어떠냐고 물으면 답하기가 곤란했어요. 겉은 봤는데 안은 모르는 상태거든요.

일이 있으니 도시가 배경이 됐어요
그리고 저는 거기서 일을 해야 했어요. 여행 온 게 아니니까요.
일이 있으면 하루의 중심이 일이 돼요. 도시는 그 주변에 배경으로 놓여요. 창밖이 무엇이든 화면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똑같으니까요.
그래서 처음 몇 주는 제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안 느껴졌어요. 마감이 걸린 주에는 특히 그랬어요. 그 주에 제가 본 건 숙소와 카페 한 곳이 전부였어요.
이게 일과 휴식을 한곳에서 하겠다는 말의 함정 같아요. 두 개를 합치면 둘 다 좋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둘 다 어중간해지기 쉬워요.
시차도 한몫했어요. 고객이 있는 곳과 시간이 어긋나니까 저녁이나 새벽에 통화가 잡혀요. 그러면 그날 저녁 계획이 없어져요. 낮에 아무리 좋은 걸 봐도 저녁에 화면 앞에 앉아 있으면 하루의 끝은 일이에요.
인터넷도 신경이 쓰였어요. 숙소가 느린 날은 그것 때문에 오전을 다 쓴 적도 있어요. 관광하러 온 사람은 몰라도 되는 걸 계속 신경 써야 하는 게 이 생활이더라고요.
그래서 하루를 반으로 나눴어요
몇 주 지나고 나서 방식을 바꿨어요. 하루를 반으로 자르기로 한 거예요.
오전에는 일만 해요. 그날 꼭 해야 하는 걸 오전에 몰아넣어요. 대신 오후에는 일을 안 봐요.
이렇게 하니까 두 가지가 달라졌어요. 오전에 집중이 잘 됐어요. 뒤에 시간이 없다는 걸 아니까요. 그리고 오후에 나가서도 마음이 편했어요. 할 일을 남겨두고 나온 게 아니니까요.
이걸 지키려면 일의 양을 미리 줄여야 했어요. 그 한 달은 새 일을 안 받았어요. 수입이 조금 줄었는데 그건 그 기간의 비용이라고 생각했어요.
오후에는 대체로 걸었어요. 목적지를 안 정하고요. 몸이 뻐근한 날에는 근처에서 마사지를 받았어요. 그 도시에서는 그게 부담 없는 값이라 자주 갈 수 있었어요.
이 방식이 처음부터 잘된 건 아니에요. 오전에 못 끝낸 날은 오후에도 손이 갔어요. 그러다 며칠 지나면서 오전에 넣는 양을 줄였어요. 지킬 수 있는 양으로 맞추는 게 먼저였어요.
저녁은 대체로 밖에서 먹었어요. 매일 다른 데를 가보려고 했는데 나중에는 몇 군데를 돌려가며 갔어요. 새로운 걸 계속 찾는 것도 일이 되더라고요.
남은 건 유명한 곳이 아니었어요
한 달이 지나고 돌아올 때 기억에 남은 걸 떠올려봤어요.
유명한 곳들은 잘 기억이 안 나요. 갔던 건 아는데 그날의 느낌이 안 남아 있어요.
대신 매일 지나던 길이 남았어요. 숙소에서 일하러 가던 그 길이요. 어느 집 앞에 개가 앉아 있고 어디쯤에서 냄새가 바뀌는지를 아직 기억해요.
그리고 늘 가던 국수집에서 제 얼굴을 알아보시고 말없이 같은 걸 내주시던 게 기억나요. 그게 그 한 달에서 제일 좋았던 순간이에요.
그러니까 남은 건 그 도시의 명소가 아니라 제가 거기서 반복한 것들이었어요.
그리고 그 반복이 생기기까지 2주쯤 걸렸어요. 그 전까지는 매일이 처음이라 익숙한 게 하나도 없었어요. 한 달을 채운 게 의미가 있었다면 그 2주 뒤의 시간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떠나기 며칠 전부터는 그 길을 일부러 천천히 걸었어요. 곧 안 보게 될 걸 아니까 그제야 제대로 보게 되더라고요. 그 며칠이 한 달 중에 그 도시를 제일 자세히 본 시간이었어요.
가는 것과 지내는 것은 달랐어요
돌아와서 정리해 보니 제 기대가 어긋난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저는 그 도시가 저를 바꿔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20년을 그렇게 상상했으니까요. 그런데 도시는 아무것도 안 해요. 거기서 어떻게 지낼지는 결국 제가 정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그 한 달의 성패는 치앙마이가 아니라 제 하루의 순서에 달려 있었어요. 오전과 오후를 나누고 나서야 그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으니까요.
그 뒤로 어디를 가든 도착하면 하루의 틀부터 정해요. 도시마다 다시 정해요. 여기서는 오전에 일이 되는지 저녁이 되는지가 다르거든요. 그 틀이 잡히기 전까지는 그 도시가 잘 안 보여요.
오래 꿈꾸던 곳에 가실 계획이 있으시다면, 거기서 뭘 볼지보다 하루를 어떻게 쓸지를 먼저 정해보시면 좋겠어요. 저는 그걸 안 정하고 가서 절반을 조급하게 보냈어요. 그 도시가 기대에 못 미친 게 아니라, 제가 거기서 지내는 방식을 안 가져간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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