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전혀 안 하던 사람이었어요
미국에 와서 한동안은 다 사 먹었어요. 요리를 할 줄도 몰랐고 할 생각도 없었어요. 시간을 아껴서 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거든요. 한 끼 만드는 데 드는 시간에 일을 하면 그 돈으로 몇 끼는 사 먹을 수 있으니까요.
계산은 맞는 것 같았는데 몇 달 지나니 문제가 보였어요. 우선 돈이 생각보다 많이 나갔어요. 미국은 외식 값이 비싸고 팁까지 붙으니 한 끼가 만만치 않아요. 그리고 매번 뭘 먹을지 정하는 것도 일이더라고요. 하루에 두세 번씩 그 결정을 해야 했어요. 사소해 보여도 매번 뭘 먹을지 고르는 게 은근히 피로하더라고요.
무엇보다 먹고 나서 만족스럽지 않은 날이 많았어요. 배는 부른데 뭔가 아쉬운 상태요. 그러다 결국 해 먹어보기로 했어요. 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요.
시간 계산도 다시 해보니 제 생각과 달랐어요. 사 먹으려면 나가야 하고,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다시 돌아와야 해요. 배달을 시켜도 고르고 기다리는 시간이 있고요. 실제로 재보니 한 끼에 40분 넘게 쓰고 있었어요. 그 정도면 간단한 걸 해 먹는 시간과 큰 차이가 없더라고요.
처음엔 잘하려고 했어요
시작은 의욕적이었어요. 영상을 보고 조리법을 찾아서 따라 했어요. 재료를 여러 가지 사고 양념도 갖춰놓고요. 결과가 아주 나쁘지는 않았는데 문제는 다음이었어요.
한 번 만들자고 산 재료가 대부분 남았어요. 그 조리법에만 쓰이는 것들이라 다른 데 쓸 데가 없었어요. 결국 냉장고 구석에 있다가 버려졌어요. 게다가 그날 저녁은 두 시간을 썼는데 설거지까지 하고 나니 지쳐서 일도 못 했어요.
이런 식으로 몇 번 하다가 그만뒀어요. 그리고 다시 사 먹는 생활로 돌아갔죠. 지금 생각하면 실패한 이유가 분명해요. 저는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 아닌데 즐기는 사람의 방식으로 시작했던 거예요. 취미로 하는 사람에게는 그 과정이 재미인데 저에게는 그냥 일이었어요.
잘하는 걸 포기했더니 됐어요
한참 뒤에 다시 시도했는데 이번에는 방식을 완전히 바꿨어요. 목표를 맛있게 먹는 게 아니라 그냥 먹을 게 있는 상태로 잡았어요. 그러니까 기준이 달라졌어요.
우선 만드는 걸 몇 가지로 줄였어요. 대여섯 가지 정도를 정해놓고 그것만 돌려요. 새로운 걸 안 하니까 조리법을 찾을 필요가 없고, 재료도 겹치니까 남는 게 줄어요. 뭘 살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요.
그리고 대충 해요. 계량을 안 하고, 손질도 최소한만 하고, 모양은 신경 안 써요. 처음에는 이게 죄책감이 들었는데 몇 달 하니 아무렇지 않아요. 남에게 대접하는 게 아니라 제가 먹는 거니까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으니 그제야 계속할 수 있게 됐어요.
고르는 기준도 정해졌어요. 재료가 다섯 가지를 넘거나 단계가 여러 개인 건 안 해요. 사 온 걸 씻고 썰어서 한 번에 익히면 끝나는 것들만 남겼어요. 이 기준으로 걸러내니 만들 수 있는 게 확 줄었는데, 줄어든 그 안에서 몇 년째 돌리고 있어요. 선택지가 적은 게 오히려 편하더라고요.
한 번에 만들어두는 방식
지금은 며칠에 한 번 몰아서 만들어요. 시간이 있는 날 한 시간쯤 잡고 몇 가지를 해두는 거예요. 그러면 그다음 며칠은 데우기만 하면 되니까 매 끼니 결정할 일이 없어져요.
한꺼번에 하는 게 시간도 덜 들어요. 한 번 만들 때 드는 준비와 정리가 매번 반복되면 그게 제일 큰 부담이거든요. 몰아서 하면 그 과정을 한 번만 거치면 돼요. 실제로 계산해 보니 매일 조금씩 하는 것보다 절반 정도 시간이 줄었어요.

다만 일이 몰리는 주에는 이것도 못 해요. 그럴 때는 그냥 사 먹어요. 못 한 걸 죄책감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해요. 이건 매일 지켜야 하는 규칙이 아니라 여유가 있을 때 쓰는 방법이니까요.
용기도 몇 개 들고 다녀요. 뚜껑이 잘 닫히고 겹쳐 쌓이는 걸로요. 숙소에 있는 그릇은 랩을 씌워야 하는데 그게 매번 번거롭고, 냉장고 자리도 더 차지해요. 부피가 좀 되지만 이건 계속 쓰는 거라 챙길 값어치가 있었어요.
주방이 매번 다른 게 문제예요
이동하면서 하려니 어려운 점이 있어요. 숙소마다 주방 사정이 완전히 달라요. 냄비 하나 없는 곳도 있고, 팬은 있는데 뚜껑이 없는 곳도 있고, 칼이 전혀 안 드는 곳도 많아요.
그래서 도구가 적어도 되는 것만 해요. 팬 하나로 되는 것, 냄비 하나면 되는 것이요. 오븐이 필요한 건 아예 안 만들어요. 있는 집도 있고 없는 집도 있으니 그걸 전제로 하면 도시가 바뀔 때마다 방식이 무너지거든요.
칼은 결국 하나 사서 들고 다녀요. 크지 않은 걸로요. 잘 안 드는 칼로 하다 보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손을 다칠 뻔한 적도 있었어요. 짐을 늘리는 걸 싫어하는데 이건 예외로 뒀어요. 매번 스트레스받느니 하나 챙기는 게 낫더라고요. 칼집에 넣어서 짐 안쪽에 두면 이동할 때도 문제없고요.
일주일치는 무리였어요
처음에는 일주일 분량을 한 번에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게 잘 안 됐어요. 이유가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냉장고예요. 숙소 냉장고가 작은 경우가 많고, 공유 숙소면 제가 쓸 수 있는 칸이 정해져 있어요. 일주일치를 넣을 자리가 안 나와요. 다른 하나는 질린다는 거예요. 같은 걸 닷새째 먹으면 손이 안 가고, 결국 남은 걸 버리게 돼요.
냉동을 쓰면 되지 않냐는 이야기도 있는데, 숙소 냉동칸은 더 작거나 성에가 가득한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얼렸다 녹이면 맛이 확 떨어지는 것들이 있어서 저는 잘 안 써요.
그래서 지금은 사흘치 정도만 해요. 이 정도가 자리도 나오고 질리기 전에 끝나요. 그리고 사흘에 한 번이면 부담도 적어요. 완벽하게 준비해두려다 아예 못 하는 것보다, 적당히 해두고 계속하는 쪽이 결과적으로 더 많이 해 먹게 되더라고요.
떠나기 전날은 아예 안 만들어요. 남은 걸 두고 가야 하니까요. 대신 마지막 며칠은 냉장고에 있는 걸 털어내는 기간으로 잡아요. 조합이 이상해도 그냥 먹어요. 이걸 정해두니 이사할 때 버리는 음식이 거의 없어졌어요.
취미가 아니라 인프라예요
지금 제가 요리를 대하는 태도는 이래요. 이건 취미가 아니라 인프라예요. 즐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생활이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 거요. 그렇게 생각하니 판단이 쉬워져요.
인프라니까 화려할 필요가 없어요. 대신 안 멈추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저는 새로운 걸 배우기보다 지금 하는 걸 더 간단하게 만드는 쪽으로 신경 써요. 단계를 하나 줄이거나 도구를 하나 덜 쓰는 방법을 찾으면 그게 제일 큰 개선이에요.
그렇다고 사 먹는 걸 나쁘게 보지는 않아요. 그 도시에서만 먹을 수 있는 걸 찾아다니는 것도 밖에서 사는 재미고, 사람을 만나는 자리도 있어야 하니까요. 다만 그게 매 끼니의 기본값이 되면 돈도 몸도 지치더라고요. 지금은 평소에 해 먹고 나가서 먹는 날을 따로 두는 쪽이에요.
혹시 해 먹어야지 하면서 매번 실패하고 계시다면, 잘 만들려는 목표부터 내려놓아 보시길 권해요. 저는 그걸 놓고 나서야 시작할 수 있었어요. 대여섯 가지를 대충 돌리는 지금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데, 잘하려던 시절에는 두 주를 못 넘겼거든요. 오래 가는 쪽이 결국 이기는 것 같아요.
'노마드 라이프 (Nomad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말하기 어려운 증상을 외국어로 설명해야 했어요: 종이에 적어 간 이야기 (0) | 2026.04.29 |
|---|---|
| 된장찌개 한 그릇이 몇 달 만에 제일 만족스러웠어요: 해외에서 한국 음식 챙겨 먹기 (0) | 2026.04.20 |
| 병원 청구서가 몇 달 뒤에 왔어요: 지금은 가기 전에 값을 묻습니다 (0) | 2026.04.15 |
| 후쿠오카 골목,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라멘집 (0) | 2026.04.10 |
| 싼 표를 골랐다가 이틀을 날렸어요: 도착 시각을 안 보던 시절 (0) | 2026.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