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을 현지 음식만 먹었어요
미국에 자리를 잡고 처음 몇 달은 근처 마트에서 파는 것만 먹었어요. 빵과 치즈, 냉동식품, 샐러드 같은 것들이요. 준비가 간단하고 익숙해지면 편해요. 굳이 멀리 갈 이유를 못 느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계속 아쉬웠어요. 배는 부른데 먹은 것 같지 않은 기분이 있었어요. 정확히 뭐가 부족한지 설명하기 어려웠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건 영양의 문제라기보다 익숙함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 어느 날 한인 마트를 찾아갔어요. 차로 40분쯤 걸리는 곳이었어요. 들어가서 김치 한 통과 된장, 고춧가루를 샀는데 계산하고 나오면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날 저녁에 끓인 된장찌개가 몇 달 만에 제일 만족스러운 한 끼였어요. 특별히 잘 끓인 것도 아니었는데 그랬어요.
구하는 것부터 일이에요
그때부터 한국 음식을 챙겨 먹기 시작했는데, 이게 도시마다 난이도가 완전히 달라요. 한인 마트가 여러 곳인 도시가 있고, 차로 한 시간을 가야 하는 곳이 있고, 아예 없는 곳도 있어요.
값도 만만치 않아요. 한국에서 흔한 것들이 여기서는 수입 식품이라 몇 배가 돼요. 김치 한 통 값을 보고 놀란 적도 있어요. 그래서 자주 가는 대신 한 번에 많이 사 오는 방식이 됐는데, 그러면 보관이 또 문제가 되더라고요. 숙소 냉장고가 작으면 그것부터 걸리고요.
한인 마트가 없는 도시에서는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 식료품을 파는 곳을 찾아가요.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하게 쓸 수 있는 게 있어요. 그것도 없으면 온라인으로 주문하는데, 배송이 며칠 걸리고 냉장이 필요한 건 아예 못 시켜요. 결국 그 도시에서는 그냥 포기하고 지내요.
한 가지 알게 된 건 한인 마트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의 차이가 도시 크기와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인구가 많아도 없는 곳이 있고, 작은 도시인데 오래된 가게가 하나 있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미리 검색해 보고 가는데, 문 닫은 지 오래인 곳이 그대로 떠 있는 경우도 있어서 몇 번 헛걸음했어요. 지금은 최근 후기가 있는지까지 확인하고 움직여요.
냄새가 진짜 문제였어요
제일 큰 어려움은 예상 못 한 데서 왔어요. 냄새였어요. 저는 익숙해서 잘 못 느끼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나는 모양이더라고요.
한 번은 단기로 빌린 숙소에서 찌개를 끓였다가 호스트에게 연락을 받은 적이 있어요. 다음 손님이 들어오기 전에 냄새가 안 빠질 것 같다는 이야기였어요. 화를 내신 건 아니었지만 저는 그 뒤로 조심하게 됐어요. 제 집이 아닌 곳에서 제 방식대로 요리하는 게 폐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공유 주방이 있는 숙소에서는 더 신경 쓰여요. 냉장고를 같이 쓰면 제 통에서 나는 냄새가 남의 음식에도 배거든요. 아무도 뭐라고 안 해도 제가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요. 이런 건 한국에 있을 때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문제였어요.
반대 입장이 되어 본 적도 있어요. 다른 나라 음식 냄새가 방까지 들어와서 며칠 불편했던 적이 있거든요. 그때 알았어요. 남의 음식 냄새는 원래 그렇게 느껴지는 거구나 하고요. 제 음식이라고 예외일 리가 없죠. 그 경험 이후로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서로 지킬 선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방식을 바꿨어요
몇 번 겪고 나서 규칙이 생겼어요. 우선 담는 걸 신경 써요. 밀폐가 잘되는 통을 쓰고, 그것도 지퍼백에 한 번 더 넣어요. 처음에는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하니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끓이는 요리는 조건을 봐요. 창이 열리는 방이면 하고, 안 열리면 안 해요. 환풍기가 있으면 미리 켜두고 시작해요. 요리하는 시간도 저녁 늦게보다 낮에 하는 쪽이 낫더라고요. 창을 열어두고 몇 시간 지나면 어느 정도 빠지니까요.
아예 포기한 것도 있어요. 국물이 많고 오래 끓여야 하는 것들은 단기 숙소에서는 안 해요. 대신 그런 게 먹고 싶으면 한국 식당을 찾아가요. 값은 나가지만 그게 서로 편해요. 모든 걸 방에서 해결하려고 하면 결국 어딘가에 무리가 가더라고요.
직접 담가보려다 실패했어요
한동안 한인 마트가 멀었던 시기에 직접 담가보려고 한 적이 있어요. 재료를 어렵게 모으고 인터넷에서 방법을 찾아 따라 했는데 결과가 별로였어요. 맛이 이상하다기보다 제가 아는 그 맛이 아니었어요.
몇 번 더 해보다가 그만뒀어요. 재료가 다르고 물이 다르고 온도가 다르니 같은 게 나올 리가 없더라고요. 무엇보다 시간이 꽤 들었어요. 그 시간에 일을 하고 그 돈으로 사 먹는 게 저에게는 나은 계산이었어요.
잘하시는 분들도 많다는 건 알아요. 다만 저는 그쪽에 재능도 흥미도 없었어요. 이런 건 인정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져요. 못 하는 걸 붙잡고 있는 것보다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낫더라고요. 대신 다음에 한인 마트에 갈 일이 생기면 넉넉히 사 오는 쪽으로 정했어요.
비상용으로 챙겨 다니는 것들
이동할 때 챙기는 것도 정리가 됐어요. 부피가 작고 냄새가 덜 나고 상하지 않는 것들이요. 고춧가루 조금, 마른 김, 국물 낼 때 쓰는 것 몇 가지 정도예요. 이 정도만 있어도 낯선 주방에서 뭔가 만들어 먹을 수 있어요.
국물이나 장류처럼 액체로 된 건 안 가져가요. 새면 가방 안이 엉망이 되고, 나라에 따라 반입이 안 되는 경우도 있어요. 한 번 공항에서 압수당한 뒤로는 아예 안 넣어요. 아까운 것보다 그 자리에서 곤란한 게 더 싫었거든요. 줄 서 있는 뒤쪽 사람들 눈치도 보이고요.
그리고 도착하면 근처에 아시안 식료품점이 있는지 먼저 찾아봐요. 있으면 마음이 놓이고 없으면 그 기간은 현지식으로 지낼 각오를 해요. 미리 알고 있으면 아쉬울지언정 당황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오래 머물 도시를 고를 때 이걸 조건에 넣기도 해요. 결정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비슷한 조건이면 있는 쪽을 고르게 되더라고요. 몇 달을 지낼 곳이라면 이런 사소한 게 생활의 질을 꽤 좌우해요.
입맛은 잘 안 바뀌더라고요
오래 밖에서 지내다 보면 입맛도 현지에 맞춰질 줄 알았어요. 실제로 많이 익숙해지긴 했어요. 예전에는 못 먹던 것도 지금은 잘 먹고, 좋아하게 된 음식도 여럿 생겼고요.
그런데 완전히 바뀌지는 않더라고요. 특히 아프거나 지쳤을 때는 어김없이 익숙한 음식이 생각나요. 그럴 때 먹는 한 끼는 영양이나 건강과는 다른 종류의 역할을 해요. 뭔가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을 주거든요.
이건 나이가 들수록 더 그런 것 같아요. 처음 나왔을 때는 새로운 걸 먹는 게 즐거웠는데, 지금은 낯선 음식을 계속 먹는 게 은근히 피로해요. 그래서 일이 몰리는 시기에는 일부러 익숙한 걸로 채워요. 하루에 신경 쓸 일이 많을 때는 먹는 것 하나라도 생각 안 하고 넘어가는 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걸 건강 관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몸에 좋아서 챙겨 먹는 게 아니라 그게 제가 아는 맛이라서 먹는 거예요. 오래 떠나 있는 사람에게는 이게 생각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낯선 곳에서 지내는 데 드는 힘을 조금 덜어주는 쪽에 가까워요. 혹시 해외에 오래 계실 계획이라면, 익숙한 음식을 어떻게 구할지도 짐 목록만큼 미리 생각해 보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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