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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라이프 (Nomad Life)

말하기 어려운 증상을 외국어로 설명해야 했어요: 종이에 적어 간 이야기

by wellnomadness 2026. 4. 29.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증상이 있어요

몇 년 전에 몸에 불편한 곳이 생겼어요. 아프다고 하기에는 약하고, 괜찮다고 하기에는 계속 신경이 쓰이는 정도였어요. 위치도 애매했고요.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불편한지 한국말로도 설명하기가 어려웠어요.

부위도 문제였어요. 남에게 말하기 조금 민망한 쪽이었거든요. 그래서 주변에 이야기를 못 했어요. 이런 건 다들 겪는 건가 싶으면서도 물어볼 사람이 마땅치 않았어요. 가까운 사람일수록 오히려 꺼내기가 더 어려웠고요.

여기에 하나가 더 얹혔어요. 저는 그때 미국에 있었어요. 설명하기 어려운 증상을 외국어로 설명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은 거예요. 이게 생각보다 큰 장벽이었어요. 결과적으로 저는 그 장벽 때문에 병원 가는 걸 한참 미뤘어요.


검색으로 해결하려고 했어요

대신 검색을 했어요. 증상을 적어 넣고 나오는 글들을 읽었어요. 그런데 이게 도움이 안 됐어요. 같은 증상에 대해 아주 가벼운 것부터 심각한 것까지 온갖 가능성이 나오거든요. 읽을수록 불안만 커졌어요.

이게 검색의 구조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가벼운 경우는 굳이 글로 안 남기잖아요. 며칠 만에 나았으면 그냥 잊고 지나가니까요. 반면 심각했던 경우는 오래 기억되고 자세히 쓰이고 널리 읽혀요. 그러니 검색 결과에 남는 이야기는 실제 비율과 다를 수밖에 없어요. 저는 그걸 모르고 목록을 읽으며 최악을 상상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스스로 관리해 보겠다는 쪽으로 갔어요. 앉는 자세를 바꿔보고, 방석을 사고, 스트레칭을 찾아서 해봤어요. 일어나서 걷는 횟수도 늘렸고요. 이 중 몇 가지는 실제로 조금 나았어요. 오래 앉아 있으면 심해지는 건 분명했으니까요.

그런데 근본적으로는 그대로였어요. 좋아졌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몇 달 동안 제가 한 건 관리가 아니라 미루기였어요. 뭔가를 하고 있으니 대응하는 것 같았지만, 정작 이게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르는 상태였거든요.


예약을 잡고 나서 준비한 것

결국 예약을 잡았어요. 그리고 그때부터가 진짜 준비였어요. 짧은 진료 시간에 제 상태를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데, 그 자리에서 영어 문장을 만들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종이에 적어 갔어요.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어떤 느낌인지, 어떤 상황에서 심해지고 어떤 때 괜찮은지, 그동안 뭘 해봤는지요. 한국어로 먼저 정리하고 영어로 옮겼어요. 모르는 단어는 미리 찾아뒀고요.

이걸 적으면서 알게 된 게 있어요. 저는 제 증상을 정확히 관찰한 적이 없었어요. 막연히 불편하다고만 생각했지 언제 심해지는지 같은 건 기억이 흐릿했어요. 적으려니까 그제야 며칠 지켜보게 됐고, 그 과정에서 제가 몰랐던 규칙성도 보였어요.

진료 전에 증상을 한국어와 영어로 정리해 적어둔 종이와 펜


통역은 요청하면 돼요

이때 알게 된 게 하나 더 있어요. 미국 병원 중에는 요청하면 통역을 붙여주는 곳이 많다는 거예요. 전화로 연결되는 방식도 있고, 화상으로 통역사가 참여하기도 해요. 저는 이런 게 있는 줄 몰라서 그동안 혼자 감당하려고 했어요.

예약할 때 미리 이야기하면 준비해 주니까, 접수 단계에서 물어보시는 게 좋아요. 저는 첫 진료 때는 몰라서 그냥 갔고, 그다음부터 요청했어요. 확실히 달랐어요. 특히 의사가 설명하는 걸 알아듣는 쪽에서 차이가 컸어요. 제가 말하는 건 준비해 가면 되는데 듣는 건 준비가 안 되거든요.

번역 앱도 쓰긴 하는데 한계가 있어요. 일상 대화는 잘 되는데 몸에 관한 표현은 어색하게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앱을 보조로만 쓰고, 중요한 건 미리 적어 가거나 통역을 요청하는 쪽으로 정했어요.

진료 시간이 짧다는 것도 준비가 필요한 이유예요. 실제로 의사와 마주 앉아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아요. 그 안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려면 순서를 정해 가야 해요. 저는 제일 중요한 것부터 적어 두고 위에서부터 말해요. 시간이 모자라도 중요한 건 이미 전달된 상태가 되니까요.


가서 알게 된 건 제 짐작과 달랐어요

진료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진행됐어요. 제가 민망해하던 부분도 그쪽에서는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더라고요. 매일 그런 이야기를 듣는 분들이니까요. 제가 혼자 크게 만들어놓은 장벽이었던 거예요. 오히려 제가 어색해하니까 편하게 말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결과는 제가 검색하며 떠올렸던 것들과 달랐어요. 몇 달 동안 머릿속으로 좁혀둔 가능성 목록이 있었는데 거기 없던 설명이 나왔어요. 그때 알았어요. 저는 정보가 부족했던 게 아니라 애초에 판단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는 걸요.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놓였어요. 그 안도감이 꽤 컸어요. 몇 달 동안 저를 힘들게 한 게 증상 자체보다 모른다는 상태였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물론 반대로 확인해서 걱정할 일이 생기는 경우도 있겠죠. 그래도 모르고 미루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요. 모르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니까요.


이동하니까 이어가기가 어려웠어요

한 가지 어려웠던 건 이후 관리였어요. 다시 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사이에 도시를 옮기게 됐거든요. 같은 의사를 계속 보는 게 어려운 게 이 생활의 단점이에요.

약이 걸린 경우에는 더 복잡해요. 처방받은 걸 다 쓰기 전에 다른 주로 가면 그곳에서 다시 받아야 하는데, 처방은 발행한 곳의 규칙을 따르거든요. 저는 이걸 몰라서 약국에 갔다가 그냥 돌아온 적이 있어요. 지금은 옮기기 전에 남은 분량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미리 처리해 두려고 해요.

그래서 요즘은 진료를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를 먼저 따져요. 이게 한 번으로 끝날 일인지, 몇 번 이어가야 하는 일인지요. 후자라면 그 기간 동안 제가 어디에 있을지를 같이 생각해요. 예전에는 아프면 그냥 가까운 데를 갔는데, 지금은 일정과 같이 놓고 정해요.

그리고 오래 머물 곳에서는 필요한 진료를 몰아서 봐요. 몇 달 있을 도시에 자리 잡으면 미뤄둔 것들을 그 기간에 처리하는 식이에요. 짧게 머무는 동안에는 시작하지 않으려고 해요. 중간에 끊기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경우가 있더라고요.


민망함이 제일 비쌌어요

돌아보면 제가 미룬 이유는 세 가지였어요. 부위가 민망해서, 영어로 설명하기 어려워서, 비용과 절차가 번거로워서요. 그런데 이 셋 다 실제로 해보니 생각보다 작은 문제였어요.

민망함은 진료실에 들어가는 순간 사라졌고, 언어는 적어 가는 것으로 해결됐고, 절차는 한 번 겪고 나니 별것 아니었어요. 반면 미루는 동안 치른 대가는 컸어요. 몇 달을 불편한 채로 지냈고, 그보다 더 오래 불안했어요.

혹시 말하기 어려운 증상 때문에 미루고 계신다면, 그냥 예약부터 잡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검색으로 좁혀지는 건 없고, 자세를 바꾸거나 뭘 먹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도 확인해야 아는 거예요. 저는 그 확인을 몇 달 미뤘고, 미룬 만큼만 손해였어요. 낯선 나라에서 이런 걸 처리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것도 알아요. 다만 그 부담은 한 번이고, 미루는 부담은 매일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