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서 일하면 두 배가 될 줄 알았어요
한동안 걸으면서 일해보려고 했던 시기가 있어요. 앉아 있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거든요.
생각은 단순했어요. 어차피 걸어야 하고 어차피 일해야 하니까 같이 하면 시간이 절약된다는 거였어요. 하루에 두 가지를 겹쳐서 처리하는 셈이니까요.
그때 저는 이런 걸 영리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글도 여럿 봤고요. 일하면서 걸으면 성과가 몇 배가 된다는 식으로요.
그런데 며칠 해보고 알았어요. 두 가지를 겹치면 두 배가 되는 게 아니라 둘 다 반쪽이 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 무렵 저는 하루에 앉아 있는 시간을 재고 있었어요. 숫자를 보고 나면 늘 기분이 안 좋았어요. 그런데 줄일 방법은 딱히 없었고요. 일이 다 앉아서 하는 것들이었으니까요.
밖에 나가서 걷는 시간을 따로 만들어보기도 했어요. 며칠은 되는데 일이 몰리면 제일 먼저 밀려요. 안 해도 당장 아무 일이 없는 것부터 사라지더라고요.
타이핑은 안 됐어요
제일 먼저 포기한 게 글 쓰는 일이었어요.
몸이 흔들리니까 손끝이 자꾸 어긋나요. 오타가 나는 것도 문제인데 그것보다 시선이 문제였어요. 화면 한 지점을 계속 보고 있어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니까 초점이 안 잡혀요.
몇 분은 되는데 30분을 넘기면 눈이 피로해져요. 그리고 문장을 다듬는 일은 아예 안 됐어요. 한 단어를 놓고 고민하는 종류의 작업은 몸이 가만히 있어야 되는 거더라고요.
숫자를 다루는 일도 마찬가지였어요. 표를 보면서 하나씩 대조하는 작업은 걸으면서 하면 실수가 늘어요. 실제로 한 번 틀린 걸 보내고 나서 그 뒤로는 안 해요.
문서를 읽는 것도 애매했어요. 훑어보는 정도는 되는데 꼼꼼히 봐야 하는 건 안 돼요.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면 내용이 안 남아 있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리고 화면을 보면서 걸으면 앞을 안 보게 돼요. 밖에서 그러다 몇 번 아찔한 적이 있었어요. 그 뒤로는 걸으면서 화면을 보는 건 아예 안 하기로 정했어요.
되는 일이 따로 있었어요
그런데 전부 안 되는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앉아서 할 때보다 나은 것도 있었어요.
듣기만 하면 되는 회의가 그래요. 제가 말할 차례가 별로 없는 자리요. 앉아서 들으면 중간에 딴생각을 하거나 화면으로 다른 걸 열게 되는데, 걸으면서 들으면 오히려 끝까지 따라가게 되더라고요.
통화도 좋았어요. 목소리만 오가는 자리라 화면을 볼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걸으면서 말하면 말이 좀 더 잘 나와요. 앉아서 할 때보다 문장이 짧아지고 덜 딱딱해져요.
제일 뜻밖이었던 건 정리가 안 되는 문제를 붙잡고 있을 때였어요. 책상에서 30분을 봐도 안 풀리던 게 걷기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 방향이 잡히는 경우가 있었어요.
왜 그런지는 저도 설명을 못 하겠어요. 다만 화면을 보고 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눈앞에 아무것도 없으면 머릿속에서만 굴리게 되니까요.
혼자 말로 정리하는 것도 걸으면서 하면 잘돼요. 복잡한 걸 소리 내어 설명해 보는 건데, 앉아서 하면 어색한데 걸으면서 하면 자연스럽게 나와요.
녹음을 켜두기도 해요. 걷다가 떠오른 걸 적을 수가 없으니까요. 나중에 들어보면 대부분 쓸모없는데 가끔 하나가 건져져요. 그 하나 때문에 계속 켜둬요.

그래서 일을 나눴어요
이걸 몇 주 겪고 나서 방식을 바꿨어요. 걸으면서 하는 시간을 늘리는 게 아니라 일을 두 종류로 나눈 거예요.
손을 써야 하는 일과 안 써도 되는 일이요. 이 기준이 제일 잘 맞았어요. 만들고 고치는 일은 앉아서 하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일은 걸으면서 해요.
그러고 나니 하루 일정을 짜는 방식도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급한 순서대로 배치했는데 지금은 종류를 섞어요. 앉는 일을 두 시간 하고 나면 걸으면서 할 걸 하나 끼워 넣어요.
이렇게 하면 앉아 있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끊겨요. 억지로 일어나야 한다고 정해두는 것보다 이 방식이 저에게는 훨씬 쉬웠어요. 일정 자체에 들어가 있으니 지킬지 말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거든요.
이 기준을 정하고 나서 회의 잡는 방식도 달라졌어요. 제가 주도해야 하는 회의는 오전 앉는 시간에 넣고, 듣는 자리는 오후로 미뤄요. 상대 일정이 허락하는 선에서요.
그리고 앉아서 하는 일도 종류를 섞어요. 만드는 일만 몇 시간 하면 지치는데, 중간에 정리하는 일을 끼우면 덜 힘들어요. 같은 앉기여도 쓰는 데가 다른가 봐요.
기계가 없어도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이걸 하려면 뭘 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실내에서 걸을 수 있는 장치 같은 것들이요.
그런데 나눠보고 나니 굳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걸으면서 하는 일들은 대부분 화면을 안 봐도 되는 것들이라 그냥 밖에 나가면 되거든요.
지금은 통화가 잡히면 시간을 보고 밖으로 나가요. 그 30분이 걷는 시간이 돼요. 따로 산책 시간을 만들지 않아도 일주일에 몇 시간이 쌓여요.
날씨가 안 좋거나 시간이 애매하면 방 안에서 서성이며 통화해요. 좁은 방에서도 왔다 갔다는 되니까요. 남이 보면 이상하겠지만 혼자 있으니 상관없어요.
그리고 이 방식이 저에게 맞은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몇 달마다 사는 곳이 바뀌는데 이건 어디서나 되거든요. 도시가 바뀌어도 그대로 이어져요.
장비를 안 사게 되면서 얻은 것도 있어요. 그 물건이 있어야 되는 방식이면 그게 없는 곳에서는 못 하잖아요. 지금 방식은 준비물이 없어서 어디서든 그대로 굴러가요.
걸으며 하는 통화에도 지킬 게 있어요
다만 몇 번 실수하고 나서 정한 것들이 있어요.
숨이 차면 상대가 알아요. 오르막을 걸으면서 통화하다가 그런 적이 있어요. 그 뒤로는 통화가 있는 날에는 평지 쪽으로 다녀요.
주변 소리도 신경 써요. 큰길가는 피해요. 상대가 제 말을 두 번 되묻게 되면 그게 그 통화의 질을 떨어뜨리니까요.
그리고 뭔가를 적어야 할 것 같은 자리에서는 안 걸어요. 중요한 이야기가 오갈 가능성이 있으면 앉아서 받아요. 걸으면서 들은 건 나중에 기억이 흐릿하더라고요.
상대에게 미리 말하기도 해요. 지금 밖이라고요. 그러면 소리가 좀 들려도 서로 편해요. 숨기려다 어색해지는 것보다 나았어요.
통화가 길어질 것 같으면 앉을 데를 미리 봐둬요. 걷다가 앉고 싶어지는 순간이 오거든요. 벤치 하나 알아두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져요.
두 배가 되지는 않았어요
몇 년 이렇게 해보고 내린 결론은 담백해요. 두 가지를 겹친다고 시간이 두 배가 되지는 않았어요.
걸으면서 회의를 들어도 회의 시간은 그대로예요. 줄어든 건 따로 산책을 나가야 한다는 부담이었어요. 시간을 번 게 아니라 하나를 다른 하나 안에 넣은 거예요.
그리고 아무 일이나 겹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잘못 겹치면 둘 다 망쳐요. 저는 그걸 오타 난 문서를 보내고 나서 배웠어요.
그래서 지금 제가 중요하게 보는 건 총량이 아니라 배치예요. 하루에 몇 걸음을 걸었는지는 안 세요. 대신 오늘 어떤 일을 어디서 할지를 정해요.
돌아보면 제가 처음에 원했던 건 시간을 아끼는 거였어요. 그런데 실제로 얻은 건 하루의 모양이 덜 지루해진 거였어요. 종일 같은 자세로 있지 않게 됐다는 것이요.
혹시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서 고민이시라면, 걷는 시간을 따로 만들기 전에 지금 하는 일 중에 손을 안 써도 되는 게 뭔지부터 골라보시면 좋겠어요. 저는 그 목록을 만들고 나서야 앉아 있는 시간이 실제로 줄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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