탭이 40개쯤 열려 있었어요
어느 날 화면이 이상해서 봤더니 브라우저 위쪽에 글자가 하나도 안 보였어요. 탭이 너무 많아서 이름이 전부 잘려 있었던 거예요.
세어보니 40개가 넘었어요. 그중에 오늘 연 건 몇 개 안 됐어요. 나머지는 며칠 전, 몇 주 전에 열어놓고 그대로 둔 것들이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건 제가 그걸 불편해하지 않고 있었다는 거예요. 필요한 걸 찾을 때마다 하나씩 눌러보면서도 많다는 생각을 안 했어요.
그날 처음으로 이게 제 집중을 갉아먹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계가 느려진 것도 그 무렵이었어요. 처음에는 오래 써서 그런가 했는데 탭을 줄이고 나니 확실히 나아졌어요. 눈에 안 보이는 부담이 계속 걸려 있었던 거예요.
창도 여러 개였어요. 브라우저를 두세 개 띄워놓고 각각에 탭이 잔뜩 있는 상태요. 그러다 보면 아까 본 게 어느 창에 있었는지부터 찾게 돼요.
책상은 괜찮은데 화면은 달랐어요
저는 책상이 어수선한 편이에요. 그리고 그게 저에게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디에 뭐가 있는지 손이 기억하니까요.
한동안은 화면도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좀 어질러져 있어도 제가 아니까 괜찮다고요. 그런데 몇 번 겪어보니 이 둘이 전혀 달랐어요.
책상 위 물건은 자리가 고정돼 있어요. 어제 오른쪽에 뒀으면 오늘도 오른쪽에 있어요. 눈으로 안 찾아도 손이 가요.
화면은 안 그래요. 탭 하나를 새로 열면 나머지가 다 밀려요. 창을 껐다 켜면 순서가 바뀌고요. 어제 그 자리에 있던 게 오늘은 다른 데 있어요.
그러니까 화면에서는 어수선함이 지도가 안 돼요. 매번 처음부터 찾아야 해요. 같은 어질러짐인데 하나는 익숙해지고 하나는 안 익숙해지는 거예요.
그리고 화면은 겹쳐요. 책상은 물건이 나란히 놓이는데 화면은 위아래로 쌓여요. 밑에 깔린 건 아예 안 보이니까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가요.
크기도 계속 달라져요. 노트북만 쓸 때와 외부 화면을 붙였을 때 배치가 통째로 바뀌거든요. 이동이 잦으면 이 조합이 자주 바뀌어서 더 그래요.
왜 안 닫았을까 생각해 봤어요
그러면 왜 안 닫았을까요. 저는 그게 궁금해서 며칠 지켜봤어요.
대부분은 나중에 볼 것 같아서였어요. 읽다가 만 것, 참고할 것 같아서 열어둔 것, 나중에 정리해야 하는 것들이요.
그런데 실제로 다시 본 건 거의 없었어요. 며칠 지나면 왜 열어놨는지도 기억이 안 나요. 그래서 지우지도 못하고 그냥 두게 돼요.
닫으면 사라질까 봐 못 닫는 것도 있었어요. 다시 찾으려면 어떻게 검색했는지 기억해야 하는데 그게 귀찮았거든요. 그래서 열어두는 게 안전하다고 느꼈어요.
결국 저는 브라우저를 할 일 목록처럼 쓰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목록은 순서도 없고 우선순위도 없고 끝나지도 않아요. 계속 늘어나기만 해요.
영수증이나 서류 사진 같은 것도 열어둔 채였어요. 나중에 처리하려고요. 그런데 그건 탭에 둔다고 처리되는 게 아니잖아요. 열어두는 걸로 뭔가 하고 있다고 착각한 거예요.
읽다 만 글이 제일 많았어요. 다 읽을 생각이었는데 며칠 지나면 흥미가 식어요. 그래도 안 닫는 건 안 읽었다는 게 마음에 걸려서였던 것 같아요.

닫으면 다시 못 찾을 줄 알았어요
그래서 하루는 마음먹고 다 닫아봤어요. 하나씩 보면서 지금 필요한 것만 남겼어요.
남은 게 세 개였어요. 40개 중에 세 개요. 나머지 서른몇 개는 그날 이후로 한 번도 안 찾았어요.
그중 몇 개는 나중에 다시 필요해졌어요. 그런데 검색하니까 30초 만에 나왔어요. 제가 두려워하던 다시 찾는 비용이 실제로는 아주 작았던 거예요.
그걸 알고 나서 기준이 하나 생겼어요. 이걸 다시 찾는 데 몇 분이 걸리나. 몇 분 안에 다시 찾을 수 있으면 닫아요. 그게 대부분이에요.
반대로 다시 못 찾을 것 같은 건 닫기 전에 어딘가에 적어둬요. 이건 많지 않아요. 하루에 한두 개쯤이고 대개 일과 직접 관련된 것들이에요.
다 닫고 나서 처음 며칠은 좀 불안했어요. 뭔가 놓친 것 같은 기분이요. 그런데 일주일쯤 지나니 그 기분도 없어졌어요.
그리고 화면이 넓어 보이는 게 생각보다 좋았어요. 탭 이름이 다 보이니까 원하는 걸 바로 눌러요. 찾는 데 쓰던 몇 초가 없어진 건데 그게 하루에 여러 번이면 꽤 되더라고요.
알림도 같이 봤어요
화면을 정리하다 보니 다른 게 눈에 들어왔어요. 일하는 동안 화면 구석에 뭐가 계속 떠올랐다 사라진다는 거예요.
대부분은 지금 안 봐도 되는 것들이었어요. 그런데 뜨면 눈이 가요. 안 누르고 넘어가도 이미 한 번 시선이 갔다 온 거잖아요.
한 번 끊긴 뒤에 원래 하던 데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려요. 그 시간이 얼마인지는 저도 모르는데, 하루에 몇십 번이면 적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은 일하는 동안 알림을 꺼둬요. 정해진 때에 몰아서 봐요. 급한 건 전화가 오니까 놓칠 걱정은 별로 없었어요.
이걸 고객에게도 미리 말해둬요. 답이 바로 안 갈 수 있다고요. 처음에는 실례일까 봐 망설였는데 문제 삼는 분은 없었어요.
소리를 끈 것부터 시작했어요. 화면에 뜨는 것보다 소리가 먼저 신경을 끌거든요. 소리만 꺼도 절반은 해결됐어요.
다만 완전히 끄지는 않아요. 몇 사람은 예외로 남겨뒀어요. 그분들에게서 오는 건 대개 급한 거라 바로 봐야 하거든요. 전부 끄는 것보다 골라서 남기는 쪽이 오래갔어요.
지금은 화면만 정리해요
지금 제 방식은 좀 이상해 보일 거예요. 책상은 그대로 두고 화면만 정리하거든요.
일을 시작할 때 지금 하는 것과 관련된 것만 열어둬요. 다른 일로 넘어갈 때는 앞의 것을 닫고 넘어가요. 이게 습관이 되기까지 몇 달 걸렸어요.
이동이 잦은 것도 여기에 영향이 있었어요. 도시를 옮기면 책상은 통째로 바뀌지만 화면은 그대로거든요. 제가 어디에 있든 같은 화면을 보니까 여기만은 제가 정할 수 있어요.
그래서 책상보다 화면에 더 신경 쓰게 됐어요. 몇 달마다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과 계속 따라오는 것 중에 어디에 공을 들일지를 생각하면 답이 나오더라고요.
작업하던 걸 저장하는 방식도 바꿨어요. 예전에는 창을 열어둔 게 곧 진행 중이라는 표시였어요. 지금은 어디까지 했는지를 한 줄 적어두고 닫아요. 다음에 열 때 그 줄만 보면 되니까요.
같은 어수선함이 아니었어요
정리하면 이래요. 저는 어수선한 걸 견디는 편이고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어수선함에도 종류가 있었어요. 자리가 고정된 어수선함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져요. 손이 기억하니까 오히려 빨라지기도 하고요.
자리가 계속 바뀌는 어수선함은 익숙해지지 않아요. 아무리 오래 봐도 매번 새로 찾아야 해요. 저는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다 괜찮다고 여기고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정리할지 말지를 이 기준으로 봐요. 여기 있는 게 내일도 같은 자리에 있을지요. 그렇다면 두고, 아니라면 치워요.
이걸 알고 나서 남에게 정리하라는 말을 잘 안 하게 됐어요. 어수선해 보여도 그 사람에게는 자리가 잡혀 있을 수 있으니까요. 겉으로 봐서는 어느 쪽인지 알 수가 없어요.
혹시 책상은 치웠는데도 집중이 안 되신다면 화면을 한 번 보시면 좋겠어요. 저는 몇 년 동안 물건만 치우고 있었어요. 정작 제 하루의 대부분은 그 화면 안에서 흘러가고 있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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