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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생산성 (Productivity)

잘된 일마다 운이 좋았다고 말했어요: 겸손이 아니라 자기 부정이었습니다

by wellnomadness 2026. 5. 12.

운이 좋았다고 말하고 있었어요

일이 잘 풀린 이야기를 할 때 제가 늘 붙이는 말이 있었어요. 운이 좋았다고요.

한 번은 오랜만에 만난 분이 요즘 어떠냐고 물으셨어요. 그 무렵 몇 달이 괜찮았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냥 운이 좋았다고 답하고 넘어갔어요.

그날 돌아오면서 좀 이상했어요. 겸손하려고 한 말이 아니었거든요.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이게 겸손이 아니라 다른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말을 언제부터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한국에서 자라면서 배운 말투이기도 하고, 실제로 제가 그렇게 느끼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 대화가 편해요. 상대가 부담을 안 느끼고 저도 더 설명할 게 없어지니까요. 그게 편해서 계속 그렇게 했던 것 같기도 해요.


잘된 일은 이유를 안 찾았어요

돌아보니 제가 이상한 방식으로 살고 있었어요.

일이 어긋나면 이유를 끝까지 찾아요. 어디서 잘못됐는지, 뭘 놓쳤는지를 며칠씩 되짚어요. 그리고 대개 답을 찾아내요.

그런데 잘되면 안 찾아요. 그냥 잘됐구나 하고 넘어가요. 왜 잘됐는지를 앉아서 따져본 적이 거의 없었어요.

그러니 제 머릿속에는 실패의 이유만 목록으로 쌓여 있어요. 성공의 이유는 하나도 없고요. 그 목록만 보면 제가 실수만 하는 사람 같아요.

그래서 잘된 것도 다음에 또 될 것 같지가 않았어요. 왜 됐는지를 모르니 다시 만들 수가 없잖아요.

안 좋았던 일은 몇 년이 지나도 기억나요. 그때 뭘 잘못했는지까지 또렷하게요. 반대로 잘 끝난 일은 그런 게 있었다는 것만 남고 내용이 흐려져요.

그러다 보니 제 일을 설명할 때 실패한 이야기가 먼저 나와요. 배운 게 많다는 뜻으로 하는 말인데, 듣는 쪽에서는 다르게 들릴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혼자 일하면 확인할 데가 없어요

여기에 혼자 일하는 조건이 얹혀요.

회사에 있을 때는 결과가 나오면 누군가 그걸 두고 이야기를 해줬어요. 잘한 부분이 어디였는지, 다음에 뭘 하면 되는지가 그 자리에서 정리됐어요.

지금은 결과만 있고 해석이 없어요. 고객이 만족하셨다고 하면 그걸로 끝이에요. 뭐가 좋았는지는 안 알려주시고, 저도 안 물어봐요.

그러니 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어요. 결과는 계속 나오는데 그게 제 덕인지 상황 덕인지 알 수가 없는 상태로 몇 년이 갔어요.

이동하며 일하니 더 그래요. 오래 같이 일하는 동료가 없으니 저를 몇 년째 지켜본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고객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냐고 하실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어려워요. 뭐가 좋았냐고 묻는 게 칭찬을 요구하는 것처럼 들릴까 봐 못 물어봤어요.

그리고 결과가 좋아도 그게 제 몫인지 상황 덕인지는 정말 애매해요. 그 시기에 시장이 괜찮았을 수도 있고 상대가 관대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 가능성이 떠오르면 제 몫을 세기가 더 어려워져요.

비슷하게 혼자 일하는 분들과 이야기해 보면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해요. 잘하고 계신 게 밖에서는 보이는데 본인은 잘 모르시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저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노트에 손으로 적어 내려간 짧은 목록


그 말이 실제로 손해를 냈어요

그러다 이 습관이 기분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누가 소개를 부탁하거나 제가 뭘 할 수 있는지 물을 때도 저는 같은 식으로 말했어요. 어쩌다 하게 됐다거나 운이 좋아서 맡았다고요.

그러면 듣는 쪽에서는 판단할 게 없어요. 이 사람이 이걸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러 물어본 건데 제가 답을 안 준 셈이니까요.

한 번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 일이 다른 분에게 갔어요. 나중에 들으니 제가 자신 없어 보였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겸손하게 말한 거였는데요.

값을 부를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제 실력을 제가 못 믿으니 낮게 부르게 돼요. 그러면 그 값이 그 관계의 기준이 되고요.

이력을 정리할 때도 그랬어요. 제가 한 일을 적는 칸인데 자꾸 축소해서 적게 되더라고요. 나중에 다시 읽어보니 그 문장들이 제 일을 실제보다 작게 만들어놨어요.

그리고 이런 말투가 반복되면 상대도 그렇게 대하게 돼요. 제가 스스로를 낮춰 말한 만큼 그 자리에서 제 몫이 정해지는 걸 몇 번 봤어요.


잘된 것도 이유를 적기로 했어요

그래서 방식을 하나 바꿨어요. 일이 잘 끝나면 왜 잘됐는지를 한 줄 적어둬요.

길게 안 써요. 무엇 덕분이었던 것 같다는 정도예요. 초반에 조건을 확실히 정해서였다든가, 중간에 한 번 확인해서였다든가요.

틀릴 수도 있어요. 제가 짐작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실패의 이유도 짐작이었잖아요. 한쪽만 적고 있었던 게 문제였던 거예요.

이걸 몇 달 하고 나니 목록이 생겼어요. 그 목록에 반복되는 게 몇 개 있었어요. 잘된 일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던 조건이요.

그걸 보고 나서야 이게 전부 운은 아니었겠구나 싶었어요. 운이었다면 공통점이 없었을 테니까요.

실패한 일에도 같은 걸 해요. 이유를 적되 그중 제가 어쩔 수 없었던 부분도 같이 적어요. 예전에는 전부 제 탓으로 적었거든요. 양쪽 다 정확하게 적는 게 목적이에요.

적는 자리는 따로 두지 않았어요. 일 끝나고 마무리하는 문서에 한 줄 덧붙이는 정도예요. 새 습관을 만드는 것보다 하던 것에 붙이는 쪽이 오래가더라고요.


말하는 방식도 바꿨어요

그다음에 말하는 방식을 바꿨어요. 이게 더 어려웠어요.

운이 좋았다고 하는 대신 제가 뭘 했는지를 말해요. 자랑하는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거예요. 이런 조건에서 이런 방식으로 했고 결과가 이랬다고요.

처음에는 이 문장이 입에 안 붙었어요. 말하고 나서 내가 너무 나댔나 싶은 날도 있었고요.

그런데 상대 반응이 달랐어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다음 질문이 나와요. 운이었다고 하면 대화가 거기서 끝나고요.

그리고 운이 작용한 부분은 그대로 운이라고 말해요. 그건 정직한 거니까요. 다만 전부를 운이라고 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남이 잘한 걸 볼 때도 달라졌어요. 저 사람은 운이 좋았다고 넘기는 대신 뭘 다르게 했는지를 보게 됐어요. 제 것에 이유를 붙이기 시작하니 남의 것도 그렇게 보이더라고요.


겸손과 자기 부정은 달랐어요

정리하면 저는 두 가지를 헷갈리고 있었어요.

겸손은 내가 한 걸 알면서 낮춰 말하는 거예요. 자기 부정은 내가 뭘 했는지를 실제로 모르는 상태고요. 겉으로는 같은 말이 나오는데 안이 다릅니다.

저는 뒤쪽이었어요. 그래서 다음 일 앞에서 늘 불안했어요. 지난번에 왜 됐는지를 모르니 이번에도 될 거라고 믿을 근거가 없었거든요.

지금도 그 불안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어요. 다만 그럴 때 제 목록을 봐요. 그러면 적어도 아무것도 없이 여기까지 온 건 아니라는 건 알겠더라고요.

이게 자신감이 생겼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저는 여전히 다음 일 앞에서 긴장해요. 다만 그 긴장을 근거 없는 불안과 구분하게 된 정도예요.

혹시 잘된 일을 두고 계속 운이었다고 말하고 계신다면, 그게 정말 그런지 한 번 적어보시면 좋겠어요. 저는 적어보고 나서야 그중 몇 가지는 제가 한 거였다는 걸 알았어요. 몇 년 동안 그걸 저에게도 안 알려주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