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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생산성 (Productivity)

한 주가 지났는데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났어요: 지친 게 아니라 지루했던 겁니다

by wellnomadness 2026. 5. 15.

지난주에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났어요

금요일 저녁에 한 주를 돌아보려고 앉았어요. 그런데 월요일에 뭘 했는지가 떠오르지 않았어요.

기록을 열어보니 일은 했어요. 결과물도 있고 보낸 메일도 있어요. 그런데 그게 어느 날이었는지가 하나도 구분이 안 됐어요.

한 주가 통째로 한 덩어리처럼 느껴졌어요. 다섯 날이 아니라 긴 하루 하나를 보낸 것 같았어요.

그때는 그게 피곤해서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사진첩을 열어봐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주에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었어요. 찍을 만한 장면이 없었던 거예요.

누가 지난주 어땠냐고 물으면 답할 게 없었어요. 바빴다고 하기에는 딱히 그렇지도 않고, 한가했다고 하기에도 아니고요. 그냥 지나갔다는 말밖에 안 나왔어요.


모든 날이 똑같이 생겼어요

그 시기에 제 하루는 이랬어요. 같은 방에서 일어나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화면을 보다가 그 방에서 잤어요.

아침에 어디로 가는 게 없고 저녁에 어디서 돌아오는 것도 없어요. 장면이 안 바뀌니까 기억에 걸릴 데가 없는 거예요.

회사에 다닐 때는 하루에 최소한 두 번은 장면이 바뀌었어요. 출근길과 퇴근길이요. 그때는 그게 낭비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하루를 나누고 있었더라고요.

그리고 그 시절에는 어떤 날이 기억나요. 지하철에서 뭘 봤다든가 비가 왔다든가 하는 것들이 그날에 붙어 있어요. 지금은 그런 게 없어요.

일이 지겨웠던 건 아니에요. 다만 하루하루가 구분이 안 되니까 시간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는 상태가 이어졌어요.

주말도 비슷했어요. 평일과 다른 게 없으니 주말이라는 느낌이 안 들어요. 달력을 봐야 오늘이 토요일인 걸 아는 날도 있었어요.

그리고 계절이 없는 곳에 있으면 더해요. 늘 비슷한 날씨인 도시에서는 몇 달이 통째로 한 장면이 돼요. 계절이 바뀌는 곳에서는 적어도 그게 시간을 나눠주거든요.

이동하는 날은 예외였어요. 그날은 확실히 기억에 남아요. 공항이든 기차든 장면이 여러 번 바뀌니까요. 그래서 이동한 주는 그나마 구분이 됐어요.


번아웃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했어요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한동안 몰랐어요.

일이 싫은 게 아니에요. 아침에 일어나기 싫은 것도 아니고 능률이 뚝 떨어진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 흔히 말하는 소진 상태와는 좀 달랐어요.

그런데 뭔가 계속 밋밋했어요. 좋은 일이 있어도 그게 그날에 붙어 있지 않고 그냥 흘러가요. 나쁜 일도 마찬가지고요.

몇 달 지나고 나서 알았어요. 지치는 것과 지루한 건 다른 거였어요. 저는 지친 게 아니라 지루했던 거예요.

그리고 지루한 상태는 쉬어서 해결되지 않더라고요. 며칠 쉬어도 그 며칠 역시 똑같이 생겼으니까요.

주변에서는 쉬라고 했어요. 그런데 뭘 쉬어야 할지 몰랐어요. 힘든 게 아니니까요. 쉰다고 누워 있으면 그 시간도 똑같이 흐릿하게 지나갔어요.

이게 오래가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몇 달이 기억에 안 남는다는 건 그 몇 달을 안 산 것과 비슷하잖아요.

아침과 저녁이 구분되지 않는 같은 자리의 책상


밖에 나가는 걸로는 부족했어요

처음에는 나가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침에 한 바퀴 걷고 들어와서 일을 시작해 봤어요.

며칠은 괜찮았어요. 그런데 그 산책도 금방 똑같아졌어요. 같은 길을 같은 시간에 걸으니까 그것도 구분이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나갔다 들어와도 앉는 자리는 같았어요. 자리에 앉는 순간 앞의 시간과 이어져 버려요.

그래서 나가는 것 자체가 답은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필요한 건 밖의 공기가 아니라 다른 장면이었어요.

음악을 바꿔보거나 책상 위치를 옮겨보기도 했어요. 이건 며칠 효과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도 금방 새 기본값이 돼요. 방 안에서 할 수 있는 변화에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시간을 나눠보려고도 했어요.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이 일, 그다음은 저 일 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시간은 눈에 안 보이잖아요. 나눴다고 생각만 할 뿐 실제로는 이어져 있었어요.


하루 중간에 자리를 옮겨요

지금은 하루에 한 번은 일하는 자리를 바꿔요.

오전에는 숙소에서 하고 오후에는 밖에서 해요. 반대로 할 때도 있고요. 중요한 건 순서가 아니라 하루가 두 장면으로 나뉜다는 거예요.

그러면 저녁에 돌아봤을 때 오전과 오후가 따로 기억나요. 같은 하루인데 두 개로 저장되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옮기는 사이에 생기는 이동 시간이 쓸모가 있어요. 걷는 동안 앞에서 하던 게 정리돼요. 회사 다닐 때 퇴근길이 하던 일을 이 시간이 하는 것 같아요.

매일 하지는 않아요. 마감이 급한 날은 그냥 한자리에 있어요. 다만 그런 날이 사흘 이상 이어지면 하루가 다시 뭉치기 시작하는 게 느껴져요.

자리를 옮길 때 짐이 많으면 안 하게 돼요. 그래서 오후에 나갈 때는 필요한 것만 들고 나가요. 가볍게 만들어두는 게 이 습관을 유지하는 조건이었어요.

그리고 오후 자리에서는 종류가 다른 일을 해요. 오전에 만드는 일을 했으면 오후에는 정리하거나 읽는 일을 하는 식으로요. 장소와 일의 종류가 같이 바뀌면 구분이 더 확실해져요.


도시를 옮겨도 마찬가지였어요

여기서 하나 짚고 싶은 게 있어요. 도시를 자주 옮긴다고 이게 해결되지는 않았어요.

새 도시에 도착하면 며칠은 확실히 달라요. 모든 게 처음이라 하루하루가 또렷하게 남아요.

그런데 2주쯤 지나면 그 도시에서도 똑같아져요. 다니는 곳이 정해지고 순서가 생기면서 다시 하루가 한 덩어리가 돼요.

밖에서 보면 제 생활이 매일 다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안 그래요. 배경만 바뀌었지 하루의 모양은 어디서나 같거든요.

그래서 도시를 옮기는 걸로 이걸 해결하려고 하지 않아요. 어차피 몇 주면 원래대로 돌아오니까요.

오래 머무는 도시일수록 이걸 더 신경 써요. 짧게 있는 곳은 어차피 매일이 새로우니까 저절로 되거든요. 몇 달 있는 곳에서 오히려 하루가 더 빨리 뭉쳐요.

한곳에 오래 사는 분들도 비슷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재택으로 일하시는 분들은 특히요. 그러니 이건 이동하며 사는 것과는 별개 문제 같아요. 장면이 안 바뀌는 생활이면 다 그런 거겠죠.


기억에 걸릴 자리가 필요했어요

정리하면 제가 필요했던 건 휴식이 아니었어요.

하루에 장면이 하나뿐이면 그 하루는 기억에 안 남아요. 그런 날이 쌓이면 몇 달이 통째로 흐려져요. 저는 그 흐려짐을 피로라고 잘못 부르고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하루에 걸릴 자리를 하나 만들어두려고 해요. 자리를 옮기는 게 제 방식인데 사람마다 다를 거예요. 누구를 만나거나 다른 일을 하나 끼워 넣는 것도 되겠죠.

중요한 건 그게 대단한 일일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날을 다른 날과 구분해 주기만 하면 돼요.

그리고 이렇게 하고 나서 한 주를 돌아보는 게 편해졌어요. 요일별로 뭐가 떠오르니까 정리할 게 생겨요. 예전에는 돌아볼 게 없어서 그 시간 자체를 안 하게 됐거든요.

혹시 한 주가 지났는데 뭘 했는지 잘 안 떠오르신다면, 쉬는 게 부족한 게 아닐 수도 있어요. 저는 몇 달을 쉬는 걸로 풀어보려다 안 됐어요. 하루가 다 똑같이 생겨서 그런 거였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