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서 차 없이 산다는 것
시카고에 자리를 잡고 은행 계좌와 집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다음 벽은 이동이었어요. 시내에 살 때는 지하철과 버스로 어떻게든 다닐 만했는데, 일이 늘면서 외곽으로 나가야 하는 날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 걸리는 곳이 차로는 삼십 분이었어요. 미팅 한 번에 왕복 네 시간을 길에서 쓰다 보니, 차가 사치가 아니라 일에 필요한 도구라는 걸 인정하게 됐어요. 한국에서 이미 면허가 있었으니 국제면허증으로 버티면 되겠거니 했는데, 그게 오래갈 수 없다는 것도 곧 알게 됐고요.
미국에서 운전면허는 단순히 운전 자격증이 아니에요. 신분증 역할을 해요. 은행 창구에서도, 술집 입구에서도, 병원 접수대에서도 사람들이 요구하는 건 여권이 아니라 운전면허증이었어요. 여권을 내밀면 다들 한 박자씩 멈칫했어요. 이 나라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려면 지갑에 이 카드 한 장이 있어야 한다는 걸, 그때 여러 번 실감했어요.
필기시험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어요
일리노이 주 차량국, 그러니까 DMV에 해당하는 곳에 처음 갔던 날을 기억해요. 번호표를 뽑고 두 시간을 기다렸어요. 서류부터 확인하는데, 여권과 비자 서류, 사회보장번호 관련 서류, 그리고 거주지를 증명할 우편물 두 가지를 요구했어요. 이 거주지 증명이 또 발목을 잡았어요. 은행 명세서와 공과금 고지서가 필요했는데, 집 계약을 막 한 참이라 제 이름으로 온 우편물이 거의 없었거든요. 결국 첫날은 서류 부족으로 그냥 돌아왔어요.
두 번째 방문에서 필기시험을 봤어요. 한국에서 운전한 경력이 십 년 가까이 되니 쉽게 보고 갔는데, 막상 문제를 여니 당황스러웠어요. 우선멈춤 표지판이 네 방향에 다 있는 교차로에서 누가 먼저 가는지, 스쿨버스가 빨간 등을 켜고 정차했을 때 반대편 차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 문제들이었어요. 한국에서는 접해본 적 없는 규칙이라 감으로 찍을 수가 없었어요. 그날 저는 떨어졌어요. 십 년 무사고인 사람이 필기에서 떨어져서 나오는 기분이 참 묘하더라고요.
그다음부터는 자세를 바꿨어요. 차량국에서 나눠주는 운전자 안내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어요. 얇은 책자인데 그 안에 시험 문제가 다 들어 있어요. 특히 스쿨버스, 응급차량, 사거리 우선순위, 음주운전 처벌 기준은 반복해서 나오는 부분이니 그냥 외우는 게 빨라요. 다시 가서 본 시험은 무난히 통과했어요.
실기시험에서 배운 미국식 운전
실기시험은 제 차를 가지고 가야 했어요. 당시 저는 차가 없어서 아는 분의 차를 빌렸는데, 그때 알게 된 게 있어요. 시험 차량은 보험이 유효해야 하고, 등록증도 차 안에 있어야 해요.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시험 자체를 볼 수 없어요.
시험관은 조수석에 앉아 클립보드를 들고 계속 뭔가를 적었어요. 코스는 차량국 주변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정도로 짧았는데, 채점 포인트가 한국과 달랐어요. 차선을 바꿀 때 거울만 보면 안 되고 고개를 확실히 돌려서 사각지대를 확인해야 해요. 시험관이 그 동작을 보고 있거든요. 우회전할 때는 반드시 완전히 정지한 다음 출발해야 하고요. 굴러가면서 슬쩍 도는 건 감점이에요. 저는 평행주차에서 한 번 실수했지만 다행히 통과 점수는 넘겼어요.

면허보다 더 놀랐던 자동차 보험료
면허를 받고 중고차를 알아보면서 보험 견적을 받았어요. 그때 받은 숫자를 보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어요. 제가 예상했던 금액의 세 배가 넘었거든요. 이유를 물어보니 답이 이랬어요. 미국 내 운전 기록이 없다는 것. 한국에서 십 년을 무사고로 운전했어도 그 기록은 미국 보험사 시스템에 존재하지 않아요. 은행에서 신용 기록이 없다고 거절당했을 때와 똑같은 논리였어요. 이 나라에서 저는 운전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과 같은 취급이었어요.
그래도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았어요. 몇 군데를 돌면서 배운 것들을 나누자면 이래요. 우선 견적은 반드시 여러 회사에서 받아야 해요. 같은 조건인데 회사마다 차이가 컸어요. 그리고 한국에서의 무사고 경력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보험사에 제출하면 일부 회사는 이를 참고해 줘요. 저는 한국 보험사에서 영문 경력 증명서를 발급받아 냈고, 그걸 인정해 준 회사에서 계약했어요. 자기부담금을 조금 높게 설정하면 월 보험료가 내려간다는 것도 그때 알았고요. 다만 사고가 났을 때 제 부담이 커지니, 감당 가능한 선에서만 조정하는 게 좋아요.
차종도 보험료에 영향을 줬어요. 같은 예산이면 스포티한 차보다 평범한 세단이 보험료가 훨씬 쌌어요. 저는 결국 연식이 좀 있는 무난한 세단을 골랐는데, 차값보다 보험료를 기준으로 차를 고른 셈이었어요.
일 년 뒤 절반으로 내려간 보험료
그렇게 비싼 보험료를 내며 일 년을 무사고로 지냈어요. 갱신 시점에 다시 견적을 받아보니 금액이 눈에 띄게 내려가 있었어요. 미국 내 운전 기록이 일 년치 쌓였기 때문이었어요. 이 년째에는 더 내려갔고요. 처음의 그 부담스러운 금액은 영원한 게 아니라, 기록이 없는 사람이 치르는 입장료 같은 것이었어요.
은행 계좌를 만들 때도, 집을 구할 때도, 차를 굴릴 때도 결론은 비슷했어요. 낯선 나라의 시스템은 처음 온 사람에게 냉정하지만, 시간이 쌓이면 문을 열어줘요. 중요한 건 그 초기의 비싼 구간을 사고 없이, 기록을 더럽히지 않고 통과하는 거예요.
미국에서 처음 운전을 시작한다면
제 경험에서 몇 가지를 정리해 드릴게요. 차량국에 가기 전에는 필요한 서류 목록을 주 정부 홈페이지에서 반드시 확인하세요. 특히 거주지 증명 우편물은 미리 준비해 두어야 헛걸음을 막을 수 있어요. 필기시험은 운전 경력과 상관없이 안내서를 읽고 가야 해요. 실기는 사각지대 확인과 완전 정지 두 가지만 몸에 익혀도 절반은 통과예요. 보험은 최소 세 군데 이상 견적을 비교하고, 한국에서의 무사고 경력 증명서를 챙겨 가세요. 그리고 첫해 보험료가 비싸다고 낙담하지 마세요. 그건 실력이 아니라 기록의 문제이고, 기록은 시간이 만들어줘요.
지금 저는 여러 나라를 오가며 일하지만, 지갑 속 운전면허증을 볼 때마다 그 시절이 떠올라요. 시험에 떨어져서 터덜터덜 돌아 나오던 날과, 첫 보험 견적을 보고 놀랐던 날이요. 그때는 하나하나가 벽처럼 느껴졌는데, 지나고 보니 그 벽들을 넘은 순서가 곧 정착의 과정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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