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인드셋 & 웰니스 (Mindset & Wellness)

인공눈물을 아무리 넣어도 눈이 마르던 이유

by wellnomadness 2026. 6. 7.

오후만 되면 눈이 뻑뻑했어요

오후가 되면 눈이 말을 안 들었어요. 오전에는 멀쩡하다가 점심을 지나면서부터 눈알이 뻑뻑해지고, 화면의 글자가 미세하게 흐려졌어요. 초점을 맞추려고 눈에 힘을 주면 잠깐 또렷해졌다가 금세 다시 뿌예졌고요. 특히 에어컨 바람이 세게 나오는 낯선 카페에서 오래 앉아 있는 날이 심했어요. 건조한 바람이 얼굴로 곧장 불어오는 자리에 앉으면 한두 시간 만에 눈이 사막처럼 말라버렸어요. 그럴 때는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뻐근했어요. 뭔가 모래알이 낀 것처럼 껄끄러워서 자꾸 눈을 비볐고, 비비고 나면 잠깐 시원했다가 이내 더 따가워졌어요. 저는 이걸 그냥 피곤해서 그러려니 했어요. 잠을 덜 잤거나 그날따라 화면을 오래 봐서 그런 거라고요. 매번 오후에 똑같이 반복되는데도, 저는 그게 하루하루의 우연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인공눈물을 자꾸 사 모았어요

그래서 제가 처음 한 일은 인공눈물을 사는 거였어요. 눈이 마르니까 물을 넣어주면 되겠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었어요. 처음엔 약국에서 흔한 걸 하나 샀는데, 넣으면 잠깐 편해졌다가 삼십 분도 안 돼서 다시 뻑뻑해졌어요. 그러면 저는 제품이 약한가 보다 하고 더 진한 걸 찾았어요. 점도가 높은 것, 방부제가 없는 일회용, 조금 더 비싼 것. 나중에는 눈 영양제라는 것까지 챙겨 먹었어요. 눈에 좋다는 건 그렇게 하나씩 늘려갔어요. 낯선 도시에서도 약국이 보이면 습관처럼 들어가 인공눈물을 사 왔고, 한번은 여행 가방을 열었더니 도시마다 산 인공눈물이 종류별로 굴러다니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오후의 그 뻑뻑함은 그대로였어요. 넣는 순간만 촉촉하고, 조금 지나면 어김없이 다시 말랐어요. 저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제 눈이 남들보다 유난히 건조한 체질인가 보다 하고 넘겼어요. 눈에 뭔가가 모자라니까 계속 마르는 거고, 그러니 더 좋은 걸 넣거나 먹으면 언젠가 나아지겠거니 했어요.

여러 도시에서 사 모아 종류별로 뒤섞인 인공눈물 병들이 열린 여행 가방 속에 굴러다니는 모습


알고 보니 제가 눈을 안 깜빡였어요

그러다 우연히 제 모습을 보게 됐어요. 화상 회의를 하다가 화면 구석에 비친 제 얼굴을 무심코 봤는데, 눈을 부릅뜨다시피 하고 화면을 노려보고 있더라고요. 한참을 봐도 눈을 거의 깜빡이지 않았어요. 그때 처음으로 아, 내가 화면을 볼 때 눈을 안 깜빡이는구나 하고 알아챘어요. 집중할수록 더 그랬어요. 복잡한 문서를 읽거나 골치 아픈 일을 붙들고 있을 때는 숨까지 참는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뜨고 미동도 없이 화면만 응시했어요. 눈물이라는 게 깜빡일 때마다 눈 표면에 골고루 발리는 건데, 저는 몇 분씩 눈을 안 깜빡이니 그 얇은 막이 계속 말라버리고 있었던 거예요. 그제야 앞뒤가 맞았어요. 아무리 인공눈물을 넣어도 소용이 없던 건, 넣은 물마저 제가 깜빡이지 않는 사이에 다 증발해버렸기 때문이었어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던 셈이에요. 눈에 뭐가 모자란 게 아니라, 제가 눈을 혹사하는 방식이 문제였던 거예요. 그동안 저는 눈이 보내는 신호를 물건으로만 답하려고 했어요. 정작 제가 화면 앞에서 뭘 하고 있는지는 한 번도 유심히 본 적이 없었고요.


제일 싼 방법이 제일 어려웠어요

답은 사실 간단했어요. 가끔 화면에서 눈을 떼고, 먼 데를 잠깐 보고, 의식적으로 눈을 몇 번 깜빡여주면 되는 거였어요. 돈도 안 들고 도구도 필요 없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저에게는 이게 제일 어려웠어요. 인공눈물을 사는 건 아무리 비싸도 쉬웠어요. 결제 한 번이면 끝이니까요. 그런데 일하다 말고 이십 초 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는 건, 그 짧은 시간조차 저에게는 참기가 힘들었어요. 한창 뭔가에 몰입해 있을 때 눈을 딴 데로 돌리면 흐름이 끊길 것 같아서, 저는 눈이 아무리 뻑뻑해도 그냥 참고 화면을 계속 봤어요. 눈에 물을 넣는 건 일을 멈추지 않고도 할 수 있으니까 몇 번이고 했지만, 정작 눈을 쉬게 하는 건 일을 멈춰야 하는 일이라 자꾸 미뤘어요. 생각해보면 저는 눈에 돈은 얼마든지 쓸 수 있어도, 눈에게 잠깐의 시간은 못 내주는 사람이었어요. 제일 싸고 확실한 방법을 두고, 저는 계속 돈으로 때울 궁리만 하고 있었던 거예요.

노트북에서 눈을 떼고 카페 창밖 먼 곳을 잠시 바라보며 눈을 쉬게 하는 40대 남성의 모습


화면에서 눈을 떼기로 했어요

그래서 저는 방식을 바꿔봤어요. 처음에는 몇 분마다 알람을 맞춰놓고 억지로 눈을 쉬게 하려고 했는데, 이건 며칠 못 갔어요. 알람이 울릴 때마다 신경이 쓰여서 오히려 일에 방해가 됐고, 눈을 쉬는 게 또 하나의 지켜야 할 규칙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알람은 그냥 껐어요. 대신 눈이 뻑뻑하다는 신호가 올 때, 그걸 무시하지 않고 잠깐 창밖을 보기로 했어요. 예전에는 그 신호가 와도 조금만 더, 이것만 마치고 하면서 참았는데, 이제는 그럴 때 그냥 고개를 들어요. 창밖 건물이든 멀리 보이는 나무든 몇 초 멍하니 보고, 그동안 눈을 천천히 몇 번 깜빡여요. 대단한 루틴은 아니에요. 시간을 재지도 않고, 하루에 몇 번 하는지 세지도 않아요. 그냥 눈이 힘들다고 할 때 잠깐 들어주는 것뿐이에요. 그런데 이 사소한 차이가 오후의 그 뻑뻑함을 꽤 덜어줬어요. 신기하게도 인공눈물을 넣는 횟수가 저절로 줄었어요.


이제는 깜빡이는 걸 먼저 챙겨요

요즘도 인공눈물은 써요. 눈이 정말 껄끄러운 날에는 여전히 도움이 되니까요. 다만 그게 유일한 답이라고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요. 예전에는 눈이 뻑뻑하면 반사적으로 주머니에서 인공눈물부터 꺼냈는데, 이제는 그 전에 제가 지금 눈을 뜨고 얼마나 오래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는지를 먼저 떠올려요. 십중팔구는 한참 동안 눈을 거의 안 깜빡이고 있었어요. 그걸 알아채고 몇 번 천천히 깜빡이기만 해도, 굳이 인공눈물을 넣지 않아도 되는 날이 많아졌어요. 결국 제 눈을 가장 많이 괴롭힌 건 건조한 카페 바람도, 오래된 인공눈물도 아니고, 화면을 부릅뜨고 노려보던 저 자신이었어요. 도시마다 사 모은 그 인공눈물들이, 저에게는 정작 봐야 할 걸 안 보고 엉뚱한 데만 돈을 쓰던 기록처럼 남았어요. 지금은 눈이 힘들다고 신호를 보내면, 그걸 채워야 할 신호가 아니라 잠깐 멈추라는 신호로 읽어요. 눈을 감고 몇 초 쉬어주는 그 짧은 순간이, 제가 여태 사 온 어떤 것보다 눈에 잘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