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을 낮춰도 등이 뜨거웠던 밤
하루 일정을 다 마치고 지친 몸으로 침대에 누웠는데, 삼십 분이 지나도 한 시간이 지나도 잠이 안 오는 밤이 있어요. 저는 오랫동안 그걸 스트레스 탓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업 걱정이 많아서 잠이 안 오는 거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밤 뒤척이다가 문득 알아챘어요. 머리가 복잡해서가 아니라, 등이 뜨거워서 뒤척이고 있다는 걸요. 이불을 슬쩍 걷어보니 그 부분만 후끈했고, 반대쪽 손을 대보니 방 공기는 확실히 서늘했어요. 에어컨을 꽤 낮게 틀어놨는데도 이불 속, 정확히는 매트리스와 닿은 등과 허리가 후끈하게 달아올라 있었어요.
미국 숙소에서 흔한 두껍고 푹신한 매트리스와 메모리폼 베개는 몸을 감싸주는 대신 체열을 그대로 머금어요. 방 공기가 아무리 서늘해도 몸이 닿은 면은 계속 뜨거운 거예요. 원인을 알고 나니 해결할 방법도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날부터 저는 침실의 공기 온도가 아니라 침대 속 온도를 관리하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온도계 숫자만 보고 방이 충분히 서늘하다고 안심했던 게 문제였어요. 에어컨 리모컨의 숫자와 실제로 몸이 닿는 면의 온도는 완전히 다른 얘기였는데, 그걸 몇 년 동안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예요.
침대 속 온도를 바꾼 쿨링 패드
제일 크게 효과를 본 건 스마트 쿨링 매트리스 패드예요. 시트 아래에 까는 얇은 패드인데, 밤새 설정한 온도의 물이 패드 안을 순환하면서 침대 표면을 서늘하게 유지해 줘요. 처음 며칠은 등이 시원한 게 낯설었는데, 일주일쯤 지나니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누워서 잠들기까지 뒤척이는 시간이 눈에 띄게 짧아졌어요. 자다가 더워서 이불을 걷어차고, 추워서 다시 덮는 그 반복이 사라진 거예요. 그 반복이 사라지고 나니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불이 그대로 덮여 있는 게 새삼스러웠어요.
다만 이런 장비는 가격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장비 없이 시작할 수 있는 방법도 있는데, 침구를 통기성 좋은 소재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차이가 커요. 저는 쿨링 패드를 들이기 전에 뱀부 소재 시트를 먼저 써봤는데, 면 시트보다 열이 훨씬 덜 고였어요. 린넨도 좋고요. 그리고 잠들기 전에 뜨겁지 않은 미지근한 물로 가볍게 샤워하는 것도 도움이 됐어요. 씻고 나오면 몸의 열이 한풀 꺾이면서, 침대에 누웠을 때 그 뜨거운 느낌이 덜해요. 뜨거운 물로 오래 씻으면 오히려 체온이 더 올라가서 역효과가 났던 것도 몇 번 겪고 나서야 알았어요.

발은 반대로 따뜻하게
침대를 서늘하게 만들고 나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어요. 발이 시렵더라고요. 그래서 헐렁한 수면 양말을 신고 자기 시작했는데, 이게 의외의 발견이었어요. 발이 따뜻해지니 몸 전체의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 들면서 잠드는 게 더 수월해졌어요. 방과 침대는 서늘하게, 발끝은 따뜻하게. 이 조합이 저한테는 가장 잘 맞았어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건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두한족열, 그러니까 머리는 차게 발은 따뜻하게 하라는 오래된 지혜 그대로였어요. 어릴 때는 그냥 흘려들었던 말인데, 이렇게 몸으로 다시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양말은 조이지 않는 헐렁한 천연 소재가 좋아요. 꽉 끼는 양말은 오히려 발이 답답해서 자다가 벗어 던지게 되더라고요. 저는 지금도 여행 짐에 수면 양말 한 켤레를 꼭 넣어 다녀요. 부피도 무게도 거의 없는데, 낯선 숙소의 잠자리를 익숙하게 만들어주는 저만의 부적 같은 물건이에요.
한 번은 짐을 줄인다고 양말을 빼놓고 떠난 적이 있는데, 그 며칠 동안 유독 뒤척임이 심했어요. 별거 아닌 물건 하나가 없다고 이렇게 티가 날 줄은 몰랐어요. 그 뒤로는 아무리 짐을 줄여도 이것만은 빼지 않아요.
제가 정착한 침실 온도 세팅
시행착오 끝에 제가 정착한 세팅은 이래요. 방 온도는 화씨 65도에서 68도, 섭씨로는 18도에서 20도 사이의 약간 서늘하다 싶은 정도로 맞춰요. 처음 눕는 순간에는 살짝 춥게 느껴지는데, 이불 속에서 몸이 데워지면 그게 딱 적당해져요. 침대 표면은 쿨링 패드나 통기성 시트로 열이 고이지 않게 하고, 발에는 수면 양말. 자기 전 미지근한 샤워까지가 한 세트예요. 거창해 보이지만 익숙해지면 그냥 몸이 알아서 하는 저녁 습관이에요.
도시를 옮겨 다니는 입장에서는 숙소마다 침구가 달라지는 게 변수인데, 그래서 저는 체크인하면 제일 먼저 침실 온도 조절이 되는지부터 확인해요. 온도 조절이 안 되는 숙소라면 창문 환기와 얇은 이불로라도 서늘함을 만들어요. 여름철 습한 지역에서는 이 정도로도 부족할 때가 있어서, 아예 예약 전에 에어컨 유무를 필수 조건으로 걸어두기 시작했어요. 환경이 바뀌어도 원칙은 같아요. 침대는 서늘하게, 발은 따뜻하게.
가끔 냉방 자체가 부실한 숙소를 만나면 선풍기와 젖은 수건을 같이 써요. 수건을 살짝 적셔 선풍기 앞에 널어두면 바람이 조금이나마 서늘해지는데, 이 정도만 해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어요.
잠은 하루의 마무리가 아니라 준비예요
혼자 일하는 사람에게 밤은 그냥 쉬는 시간이 아니라 다음 날 컨디션을 만드는 정비 시간이에요. 저는 잠을 줄여가며 버티는 시기를 지나 보니, 잘 자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업무 준비라는 걸 알게 됐어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던 뒤척임이 사실은 온도 문제였다는 걸 알게 된 뒤로, 저는 컨디션이 흔들릴 때마다 마음보다 환경을 먼저 점검해요. 물론 환경을 다 바꿔도 불면이 몇 주씩 계속된다면 그건 다른 원인일 수 있으니, 그럴 땐 병원에서 확인받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잠이 안 오는 밤이면 생각을 다스리려 애쓰기 전에 등부터 만져봐요. 뜨겁게 달아올라 있으면 범인은 걱정이 아니라 온도인 경우가 많았어요. 저는 에어컨 설정 하나, 시트 한 장, 양말 한 켤레로 몇 년 묵은 뒤척임을 해결한 셈이에요. 스트레스라고만 믿고 몇 년을 그냥 버텼던 걸 생각하면, 진작 원인을 의심해봤어야 했다는 아쉬움도 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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