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넉 잔의 커피로 버티던 시절
한때 저는 하루에 커피를 서너 잔씩 마셨어요. 아침에 눈뜨자마자 한 잔, 업무 시작하며 한 잔, 점심 먹고 한 잔, 그리고 오후에 처지면 또 한 잔. 낯선 시장에서 혼자 사업을 굴리다 보면 하루 종일 긴장 상태로 지내게 되는데, 그 긴장을 커피로 유지하고 있었던 거예요. 문제는 이 방식이 갈수록 잘 안 통했다는 거예요. 오후가 되면 오히려 더 급격하게 방전됐고, 저녁 늦게 마신 커피 때문에 잠자리에서 몇 시간씩 뒤척였어요. 잠을 설치니 다음 날 커피가 더 필요해지는 악순환이었죠.
몸이 보내는 신호도 무시하기 어려워졌어요. 서너 잔째 커피를 마신 날에는 심장이 괜히 빨리 뛰고,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집중이라기보다는 초조함에 가까운 상태가 됐어요. 각성이 아니라 채찍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커피를 줄여보기로 했어요. 다만 무작정 끊으면 못 버틸 게 뻔해서, 빈자리를 채울 다른 마실 거리를 찾기 시작했어요.
그때까지는 커피를 줄인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어요. 카페인이 일이랑 워낙 붙어 있어서, 커피 없이 하루를 시작한다는 게 상상이 안 됐어요.
화상 미팅 중에 손이 떨려서 화면을 오래 켜두기 부담스러웠던 날도 있었어요. 카메라를 끄고 통화만 이어간 적도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이게 정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트에서 발견한 버섯 커피
그러다 미국 마트의 커피 코너에서 버섯 커피라는 걸 발견했어요. 코디셉스라는 버섯 추출물이 든 커피인데, 처음에는 솔직히 이름부터 수상했어요. 버섯을 커피에 왜 넣나 싶었죠. 그런데 카페인이 일반 커피의 절반 이하라는 문구를 보고, 커피를 줄이는 중간 단계로 쓰기 괜찮겠다 싶어서 한 통 사 왔어요.
맛은 생각보다 평범한 커피에 가까웠어요. 흙내가 아주 살짝 도는 정도랄까요. 제품마다 온갖 효능이 쓰여 있지만 제가 그걸 검증할 방법은 없으니, 제 몸의 느낌만 말하자면 이래요. 아침에 이걸 마시면 일반 커피의 그 확 치고 올라오는 각성감은 없어요. 대신 서서히 정신이 드는 느낌이고, 무엇보다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초조해지는 게 없었어요. 저처럼 커피에 예민해진 몸에는 그 차분함이 오히려 반가웠어요. 그렇게 아침 첫 잔을 버섯 커피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처음 일주일은 어딘가 허전했어요. 손에 익은 향과 맛이 아니다 보니 자꾸 예전 커피가 그리웠어요. 그런데 이주일쯤 지나니 그 허전함이 줄었고, 오히려 아침에 심장이 안 뛰는 게 더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한 통을 다 쓸 때까지는 반신반의했어요. 그런데 두 번째 통을 다시 주문하고 있는 저를 보고, 이게 그냥 지나가는 시도가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오후에는 마카 파우더를 타서 마셔요
다음 숙제는 오후였어요. 오후 서너 시쯤 처질 때 습관적으로 손이 가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뭘로 바꾸느냐가 관건이었죠.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다가 정착한 게 마카 파우더예요. 페루 고산지대에서 나는 뿌리를 말린 가루인데, 미국 마트나 온라인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요. 저는 따뜻한 아몬드 밀크에 한 스푼 타서 마셔요. 맛이 견과류처럼 고소해서 우유 종류와 잘 어울리거든요.
마카에는 카페인이 없어요. 그래서 각성 효과를 기대하고 마시는 건 아니에요. 저에게 이 한 잔의 역할은 오후에 뭔가 따뜻하고 든든한 걸 마시는 의식을 만들어주는 거예요. 커피를 마시던 습관의 상당 부분은 카페인이 아니라 잔을 들고 한숨 돌리는 그 행위였다는 걸, 마카로 바꾸고 나서 알게 됐어요. 고소한 음료로 속을 달래고 나면 초조함 없이 오후 후반을 이어갈 수 있었어요.
이 한 잔을 타는 몇 분도 나름의 의식이 됐어요. 물을 데우고 가루를 젓는 그 짧은 시간 동안은 화면에서 손을 떼고 있어요. 예전엔 커피를 마시면서도 계속 모니터를 보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 몇 분만큼은 온전히 쉬는 시간이에요.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이 잔을 보여줬더니 처음엔 신기해했어요. 맛을 보더니 의외로 괜찮다며 자기도 한번 사보겠다고 했는데, 그 뒤로 둘이서 오후에 같은 잔을 타 마시는 게 작은 루틴이 됐어요.
석 달 뒤 달라진 것들
이렇게 바꾸고 석 달쯤 지났을 때, 저는 커피를 하루 한 잔만 마시고 있었어요. 그것도 오전에 정말 마시고 싶을 때만요.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잠이에요. 침대에서 뒤척이는 시간이 눈에 띄게 줄었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찌뿌둥함도 덜해졌어요. 오후의 급격한 방전도 예전보다 완만해졌는데, 이게 버섯 커피와 마카 덕분인지, 커피를 줄여서인지, 아니면 잠을 잘 자게 돼서인지는 솔직히 구분할 수 없어요. 아마 전부 조금씩이겠죠. 분명한 건 하루의 에너지 곡선이 롤러코스터에서 완만한 언덕으로 바뀌었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커피를 미워하게 된 건 아니에요. 고객과의 미팅에서는 여전히 커피를 마시고, 주말 아침에 좋은 원두로 내려 마시는 한 잔은 지금도 제 낙이에요. 달라진 건 커피가 연료에서 기호품으로 돌아왔다는 거예요. 버티기 위해 들이붓는 게 아니라, 즐기고 싶을 때 골라 마시는 것. 그 차이가 생각보다 컸어요.
손 떨림도 거의 사라졌어요. 예전엔 키보드를 치다가도 손끝이 떨리는 걸 느낄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순간 자체가 없어요. 그게 카페인 때문이었다는 걸 줄이고 나서야 확실히 알았어요.
체중도 조금 줄었어요. 커피에 넣던 시럽과 크림이 자연히 줄어든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의도한 변화는 아니었는데 덤으로 따라온 셈이에요.
몸을 쥐어짜지 않는 쪽으로
돌아보면 커피 서너 잔으로 버티던 시절의 저는 내일 쓸 체력을 오늘 가불해서 쓰고 있었던 것 같아요. 혼자 일하는 사람에게 컨디션은 곧 매출이라, 순간의 각성보다 하루 전체의 안정이 훨씬 값지다는 걸 이제는 알아요.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몸에서의 경험이에요. 체질에 따라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도 이번에 겪으면서 알게 됐어요.
지금도 가끔 마감이 몰리는 날엔 예전 습관이 슬쩍 고개를 들어요. 커피 한 잔 더 마시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그 유혹이요. 그런 날엔 일단 마카 한 잔을 먼저 타서 마셔봐요. 그러고도 정 필요하면 그때 커피를 마시는데, 실제로 두 번째까지 가는 날은 많이 줄었어요.
예전 같으면 마감 전날 커피를 대여섯 잔까지도 마셨을 텐데, 요즘은 그 대신 물을 더 챙겨 마셔요. 갈증을 카페인으로 착각했던 날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됐어요.
서너 잔에서 한 잔으로 줄기까지 석 달이 걸렸어요. 빠른 변화는 아니었지만, 몸을 쥐어짜서 얻는 하루보다 이렇게 천천히 리듬을 바꿔서 얻은 하루가 훨씬 오래갔어요. 지금 제 책상엔 커피 잔 대신 마카 잔이 더 자주 놓여 있어요.
가끔 예전 사진첩을 보다가 손에 커피 잔을 들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해요. 그때는 그게 열심히 사는 증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그냥 지쳐 있는 얼굴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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