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아침에 노트북을 열었는데 화면이 안 켜졌어요. 몇 번이고 다시 눌러도 검은 화면뿐이었어요. 하필 그 안에 마감이 바로 오늘인 파일이 들어 있었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기계라 더 당황스러웠어요.
백업이 하나도 없었다
손이 떨리는 채로 일단 휴대폰으로 클라우드부터 확인했어요. 그런데 마지막 동기화가 사흘 전이었어요. 그 사이에 작업한 내용은 노트북 안에만 있었던 거예요. 화면을 몇 번이나 새로고침해봤지만 날짜는 바뀌지 않았어요.
동기화 앱이 언제부터 안 됐는지도 몰랐어요. 알림을 몇 번 무시했던 게 기억났어요. 그때 확인했어야 했는데 미뤄뒀던 거예요. 숙소 와이파이가 불안정해서 나온 오류인 줄로만 알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거예요.
외장하드도 없었어요. 예전에는 정기적으로 백업했는데, 이사가 잦아지면서 그 습관이 흐지부지됐어요. 짐이 늘어나는 게 싫어서 외장하드도 처분했던 거예요. 그때는 클라우드 하나면 충분하다고 자신했었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 사람들에게도 노트북을 빌려달라고 연락을 돌렸어요. 다들 자기 것도 당장 필요해서 선뜻 빌려주기 어려워했어요. 혼자 지내다 보니 이럴 때 기댈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도 새삼 느꼈어요.
여분 노트북도 없었어요. 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짐을 줄이는 게 우선이었으니까요. 이동이 잦은 생활에서 여분 장비는 사치라고만 여겼어요.
그 순간 정말 막막했어요. 사흘 치 작업이 사라진 것도 문제였지만, 오늘 당장 일할 수단 자체가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였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원 버튼을 몇 번이나 다시 눌러봤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충전기를 바꿔 꽂아도 보고, 배터리를 분리했다 다시 껴보기도 했어요. 아무 반응이 없었어요.
불안한 마음에 인터넷 검색으로 비슷한 증상을 찾아봤어요. 메인보드 고장일 가능성이 크다는 글이 많았어요.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응급처치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었어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붙잡고 클라이언트에게 사정을 설명하는 메일부터 썼어요. 다행히 하루 정도는 양해해줬지만, 그다음이 더 큰일이었어요. 노트북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요.
이 도시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 근처에 딱히 아는 사람도 없어서 노트북을 빌릴 데도 마땅치 않았어요. 결국 카페에서 휴대폰으로 급한 메일만 처리하며 하루를 보냈어요.
휴대폰으로 문서 작업을 시도해봤지만 화면이 작아서 오래 하기 힘들었어요. 손가락으로 스프레드시트 셀을 옮기는 것도, 긴 문서를 수정하는 것도 노트북과는 비교가 안 됐어요.
PC방이라도 찾아볼까 검색했는데, 그 동네에는 하나도 없었어요. 결국 인터넷 카페와 비슷한 공용 업무 공간을 겨우 찾아 몇 시간을 빌려 썼어요.
그 공용 컴퓨터에 필요한 프로그램이 다 깔려 있지 않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었어요. 급한 이메일 답장 정도만 겨우 처리했어요.
수리 맡기는 것도 나라마다 달랐다
수리점을 찾아 나섰어요. 그런데 이 나라에는 제 노트북 브랜드의 공식 서비스센터가 없었어요.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지도 앱을 켜고 사설 수리점 몇 군데를 돌아다녔는데, 부품이 없어서 해외에서 주문해야 한다고 했어요. 최소 2주는 걸린다는 답을 들었어요.
2주 동안 일을 못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어요. 결국 그 나라에서 급하게 새 노트북을 샀어요. 마음에 드는 사양을 고를 여유도 없이 그날 살 수 있는 것 중 제일 나은 걸 골랐어요.
같은 사양인데도 가격이 한국보다 꽤 비쌌어요. 관세와 현지 물가가 반영된 가격이라 예상보다 지출이 컸어요. 카드 명세서를 보고 나서 한숨이 절로 나왔어요.
모든 설정을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것도 하루가 꼬박 걸렸어요. 프로그램 설치, 로그인, 파일 복구까지 하다 보니 그 주는 거의 아무 일도 못 했어요.
키보드 자판 배열도 그 나라 표준이라 전혀 익숙하지 않았어요. 자판 위치가 조금씩 달라서 타이핑 속도가 확 떨어졌어요. 급한 마음에 오타도 늘었어요.

고장 난 노트북은 나중에 한국에 들어갔을 때 정식 서비스센터에 맡겼어요. 부품값보다 진단비가 더 나올 뻔했는데, 다행히 메인보드 문제로 확인돼 보증 기간 내 무상 수리를 받았어요. 그때가 되어서야 원인을 정확히 알게 됐어요.
결국 그 사건 하나로 노트북을 두 대 갖게 된 셈이에요. 원해서 그런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요.
이 과정에서 계약 하나가 어그러지기도 했어요. 응답이 며칠 늦어지자 클라이언트가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넘겨버린 거예요. 사정을 설명했지만 이미 결정된 뒤였어요.
그 일로 신뢰를 잃는 게 돈보다 더 아팠어요. 몇 달 공들여 쌓은 관계가 노트북 하나 때문에 흔들릴 수 있다는 게 씁쓸했어요. 사정을 이해해줄 거라 믿었던 클라이언트였기에 더 그랬어요.
그리고 새 노트북에 예전 설정과 단축키, 자주 쓰는 프로그램을 다시 세팅하는 데도 며칠이 더 걸렸어요. 예전 환경으로 완전히 돌아오기까지 거의 2주가 걸린 셈이에요.
지금은 이중화해둔다
그 뒤로 방식을 완전히 바꿨어요. 우선 클라우드 동기화 상태를 매주 한 번씩 직접 확인해요. 자동이라고 믿고 방치하지 않아요.
작은 외장 SSD도 다시 챙겼어요. 예전 외장하드보다 훨씬 작고 가벼워서 짐 부담이 크지 않았어요. 주요 작업 파일은 매일 밤 여기에도 복사해둬요.
예전에 쓰던 구형 노트북도 하나 챙겨서 다닙니다. 성능은 떨어지지만 급할 때 메일 확인이나 문서 작업 정도는 할 수 있어요. 그거면 클라이언트에게 사정을 알리고 시간을 벌기엔 충분해요.
중요한 파일은 세 군데에 나눠 저장해요. 노트북 본체, 클라우드, 외장 SSD. 하나가 문제 생겨도 나머지 둘이 살아 있으면 됐어요.
그리고 새 나라에 갈 때마다 그 나라에 제 노트북 브랜드의 공식 서비스가 있는지도 미리 확인해요. 없는 나라라면 그만큼 더 조심해서 다뤄요.
노트북을 다룰 때도 예전보다 조심스러워졌어요. 이동할 때는 항상 전용 파우치에 넣고, 카페에 앉을 때도 흔들리는 테이블은 피해요. 사소한 습관 하나하나가 그날 이후로 달라졌어요.
노트북 보험도 알아봤어요. 파손이나 고장을 보장하는 상품이 있어서, 지금은 그것도 하나 들어뒀어요. 비용은 들지만 그 하루의 막막함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어요.
클라이언트에게도 미리 알려뒀어요. 장비 문제로 하루 이틀 지연될 수 있다는 걸 계약서 초반에 아예 명시해요. 사전에 말해두니 실제로 그런 일이 생겼을 때 훨씬 이해를 잘 받았어요.
여행용 파우치에는 늘 노트북 충전기와 함께 외장 SSD, 여분 마우스를 같이 넣어 다녀요. 무게는 조금 늘었지만 그 이후로 마음은 훨씬 가벼워졌어요.
노트북 하나에 일이 전부 걸려 있다는 걸 그 화면이 꺼진 아침에야 실감했어요. 혼자 일하면 장비 하나가 곧 사무실 전체인 셈이에요. 지금은 그 사무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도록 이중, 삼중으로 대비해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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