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를 고를 때 주방 사진부터 보는 이유
숙소를 예약할 때 저는 침대나 전망보다 주방 사진을 먼저 봐요. 인덕션이든 가스레인지든 불이 있는지, 프라이팬이 하나라도 있는지, 칼과 도마가 갖춰져 있는지를 확인해요. 처음부터 이런 사람은 아니었어요. 여행처럼 며칠 다녀오는 일정이라면 매 끼니 밖에서 사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오히려 그게 여행의 즐거움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한 도시에 몇 주씩 머물면서 일까지 해야 하는 생활이 이어지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외식이 일주일을 넘어가면 몸이 먼저 반응해요. 어느 나라든 밖에서 파는 음식은 간이 세고 기름이 많은 편이라, 열흘쯤 지나면 속이 더부룩하고 아침에 몸이 무거워요. 컨디션이 떨어지면 일이 밀리고, 일이 밀리면 또 대충 때우게 되는 악순환이 시작돼요. 비용도 무시할 수 없어요. 하루 세 끼를 밖에서 해결하면 물가가 높은 도시에서는 숙소비 못지않은 돈이 식비로 나가요. 그 고리를 끊는 방법이 저에게는 숙소에서 직접 해 먹는 거였어요. 모든 끼니를 그렇게 하는 건 아니고, 하루 한 끼 정도만 집에서 챙겨도 몸이 느끼는 차이가 확실했어요.
공식 하나만 들고 다녀요
그렇다고 제가 요리를 잘하는 건 아니에요. 낯선 주방에서 복잡한 요리를 시도할 형편도 아니고요. 그래서 공식을 하나 정해두고 그것만 반복해요. 단백질 하나에 채소 몇 가지를 넣고 볶는 거예요. 이 조합을 쓰는 이유는 단순해요. 첫째, 어느 나라를 가도 고기나 생선, 두부 같은 단백질과 채소는 반드시 구할 수 있어요. 둘째, 프라이팬 하나와 불만 있으면 되니까 조리 도구가 부실한 주방에서도 가능해요. 셋째, 양념이 거의 필요 없어요. 소금과 기름, 있으면 후추 정도로 충분하거든요. 낯선 나라에서 양념을 새로 사 모으는 건 돈도 돈이지만 떠날 때 다 버려야 해서 아까워요. 그래서 저는 소금 하나로 끝나는 조합을 기본값으로 정했어요. 재료를 씻고 썰어서 팬에 넣는 데까지 이십 분이면 되고, 설거지도 팬 하나와 도마뿐이라 부담이 없어요. 일하다가 배가 고파졌을 때 이십 분이면 해결된다는 점도 중요해요. 조리 시간이 길면 결국 시켜 먹게 되니까요.

같은 공식이 나라마다 다른 음식이 됐어요
재미있는 건 공식은 똑같은데 나오는 음식이 매번 다르다는 거예요. 인도 뉴델리에서는 닭고기와 이름도 모르는 초록색 채소를 사다가 볶았어요. 향신료를 산 것도 아닌데 고기에서 은근한 향이 났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동네 정육점에서 파는 고기 자체에 이미 향신료 향이 배어 있었던 거예요. 태국 푸켓에서는 돼지고기에 현지 채소와 과일을 같이 넣어봤어요. 그 나라 사람들이 요리에 과일을 넣는 걸 보고 따라 한 건데, 고기의 기름진 맛과 과일의 단맛이 생각보다 잘 어울렸어요. 일본 오사카에서는 고기 대신 두부를 썼어요. 시장에서 산 두부가 밀도가 높고 단단해서 볶아도 부서지지 않았어요. 미국 사우스다코타에서는 그 지역에서만 파는 바이슨 고기를 구워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였어요. 소고기와 비슷하면서도 더 담백한 맛이었어요. 같은 방식으로 만들었는데 결과물은 매번 그 지역의 음식이 되어 있었어요. 제가 한 건 그냥 팬에 볶은 것뿐인데도요. 그 땅에서 자란 재료가 이미 그 지역의 맛을 품고 있어서, 제 솜씨와 상관없이 음식이 그쪽으로 기울더라고요. 덕분에 요리 실력은 몇 년째 제자리인데 먹어본 재료의 목록만 계속 길어지고 있어요.
낯선 주방은 대체로 불편해요
물론 현실은 낭만적이지만은 않아요. 낯선 주방은 거의 항상 불편해요. 칼이 무뎌서 토마토가 뭉개지는 일은 흔하고, 화력이 약해서 볶는 게 아니라 삶는 것처럼 되는 날도 있어요. 프라이팬 코팅이 벗겨져 재료가 눌어붙기도 하고, 주방 도구가 어디 있는지 몰라 서랍을 다 열어보는 것부터 시작하기도 해요. 도착한 첫날에는 기름과 소금부터 사야 해서 요리보다 장보기가 더 오래 걸려요. 그래서 저는 첫 끼는 대체로 밖에서 해결하고, 둘째 날부터 주방을 쓰기 시작해요. 도착 당일에 지친 몸으로 장까지 보려다 보면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하게 되더라고요. 조미료는 가장 작은 단위로 사요. 어차피 떠날 때 두고 가야 하니까요. 이런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이유는, 며칠만 지나면 이 불편함이 익숙해지고 그때부터는 오히려 편해지기 때문이에요. 무딘 칼에도 요령이 생기고, 그 주방의 화력에 맞춰 시간을 조절하게 돼요. 어느 서랍에 무엇이 있는지 외우고 나면 그때부터는 눈 감고도 손이 가요. 떠날 때쯤 되면 그 주방이 제법 손에 익어 있는데, 그 상태에서 짐을 싸는 게 조금 아쉬울 정도예요.
남의 집이 내 집이 되는 순간
낯선 숙소에서 처음 팬을 달구고 기름 냄새가 퍼지는 순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요. 그때까지 남의 집 같던 공간이 갑자기 지낼 만한 곳으로 바뀌어요. 짐을 풀 때도, 침대에 누울 때도 들지 않던 감각이에요. 음식 냄새가 배어야 비로소 사람 사는 곳이 되는 건가 싶어요. 그래서 새 도시에 도착하면 저는 되도록 이른 시기에 한 끼를 해 먹으려고 해요. 그게 그 도시에서의 생활을 여는 신호 같은 거예요.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지내다 보면 매번 새로 적응하는 게 일인데, 식탁만큼은 어디서나 비슷하게 유지된다는 게 생각보다 큰 안정감을 줘요. 어느 도시의 어느 주방에 서 있든, 팬에 단백질과 채소를 넣고 볶는 그 이십 분은 늘 같으니까요. 매일 바뀌는 창밖 풍경 속에서 그 정도의 반복은 있어야 몸도 마음도 덜 흔들리는 것 같아요. 대단한 요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사진 찍을 만한 식탁도 아니지만, 저에게는 그 평범한 한 끼가 낯선 도시에 발을 붙이는 방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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