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노마드157 타향에서 혼자 열이 39도까지 오른 밤, 상비약부터 다시 채웠다 새벽 3시에 체온계를 봤어요. 눈금이 39도를 가리키고 있었어요. 방에는 저 혼자였고, 다음 날 무슨 약을 먹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그냥 버티면 될 줄 알았다열이 오르기 시작한 건 저녁부터였어요. 처음엔 그냥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누워서 자면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에 있었으면 엄마한테 전화하거나 편의점에서 뭐라도 사 왔을 텐데, 여기선 그럴 사람이 없었어요. 몇 시간을 그렇게 뒤척이며 아침이 오기만 기다렸어요.밤이 깊어질수록 열은 더 올랐어요. 몸이 떨리고 이불을 몇 겹을 덮어도 추웠어요. 창문을 다 닫고 히터까지 켰는데도 한기가 가시지 않았어요.그때 처음 알았어요. 혼자 있다는 게 평소엔 아무렇지 않다가, 아플 때만 갑자기 크게 느껴지는 거였어요.물을 가지러 부엌까지 가는 것도 힘들었어요... 2026. 8. 31. 청구서를 보내고 나서가 진짜 일이었어요: 해외 결제 지연과 환전 수수료 청구서를 보내고 나서가 시작이었어요한 프로젝트를 3개월 만에 끝내고 청구서를 보냈어요. 그 순간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어요.그런데 그다음이 더 길었어요. 입금은 그로부터 47일이 지나서야 됐어요.그 사이에 제가 한 일은 확인 메일을 보내고, 기다리고, 다시 확인 메일을 보내는 것뿐이었어요.일할 때는 제가 주도권을 갖고 있다고 느껴요. 마감을 정하고 결과물을 만드니까요. 그런데 청구서를 보내는 순간부터는 완전히 상대 손에 넘어가요.이 시간차를 몇 년째 겪으면서도 매번 새삼스럽게 답답했어요. 일이 끝났다는 감각과 돈이 들어왔다는 감각이 전혀 다른 시점에 오더라고요.그리고 그 47일 동안 저는 다음 일을 또 시작해야 했어요. 통장 잔고와 상관없이 생활은 계속되니까요.회사에 다닐 때는 이런 시간차 자체가 없었어요.. 2026. 8. 31. 한국에서 온 친구와 보낸 며칠, 여행 온 사람과 사는 사람은 시간표가 달랐다 한국에서 친구가 놀러 온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든 감정은 반가움이 아니었어요. 그 주에 마감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 생각을 한 제가 좀 별로였어요.반가운데 계산이 먼저 됐다연락을 받자마자 달력을 열었어요. 그 주에 뭐가 있는지, 며칠을 비울 수 있는지를 봤어요.그러고 나서 좀 이상했어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인데 제가 일정부터 계산하고 있었으니까요.그런데 어쩔 수가 없어요. 저는 여기서 살고 있는 거지 여행 중이 아니거든요. 친구가 오는 그 주에도 일은 그대로 있어요.회사에 다니면 휴가를 내면 되잖아요. 저는 낼 데가 없어요. 안 하면 그만큼 밀리고 그건 다음 주로 넘어가요.그래서 반가움과 부담이 같이 왔어요. 이 감정을 친구에게 말할 수는 없어서 그냥 좋다고만 했고요.돌아보면 이게 제일 어려운 부분.. 2026. 8. 30. 화상 회의 내내 제 얼굴을 보고 있었어요: 제 화면을 끄고 나서 달라진 것 회의 내내 제 얼굴을 보고 있었어요화상 회의를 하다가 문득 알아차렸어요. 상대가 말하는 동안 제가 화면 구석에 있는 제 얼굴을 보고 있었어요.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회의 내내 그랬어요. 상대를 보다가도 시선이 자꾸 그쪽으로 갔어요.그러고 나서 며칠 신경 써서 봤는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한 시간짜리 회의에서 제가 제일 오래 본 게 제 얼굴이었어요.이게 몇 년째였을 텐데 그동안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녹화된 회의를 다시 본 날에 확실해졌어요. 제 시선이 화면 아래쪽으로 자꾸 내려가 있었어요. 상대를 안 보고 있었던 거예요.그리고 그게 상대에게도 보였을 거예요. 눈이 다른 데를 보고 있으면 티가 나잖아요. 집중을 안 하는 사람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보고 있으면 신경이 그쪽으로 가요.. 2026. 8. 30. 3년 거래하던 고객이 조용히 사라졌다, 끝났다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3년 동안 매달 일을 주던 곳에서 6개월째 연락이 없어요. 그만하자는 말을 들은 적은 없어요. 그냥 어느 달부터 새 일이 안 왔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끝났다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처음 두 달은 그냥 조용한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달이 원래 있으니까요.석 달째에 한 번 연락을 넣었어요. 잘 지내시냐고,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 달라고요. 답은 왔어요. 요즘 정신이 없다고, 정리되면 연락 주겠다고요.그 답이 오히려 애매했어요. 끝났다고 했으면 정리가 됐을 텐데, 그 문장은 아직 안 끝났다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계속 기다리는 자리에 남아 있게 됐어요.여섯 달쯤 지나고 나서 인정했어요. 이건 끝난 거구나 하고요. 다만 그걸 확인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혼자 일하면서 알게 된 것 중 .. 2026. 8. 29. 넉 달을 매일 마주쳤는데 이름도 몰랐어요: 짧게 사는 사람의 이웃 엘리베이터에서 매일 마주치는 분이 있었어요한 건물에 넉 달쯤 살았을 때예요. 아침에 나가는 시간이 비슷해서 거의 매일 같은 분과 엘리베이터를 탔어요.처음 며칠은 가볍게 인사를 나눴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서로 고개만 까딱하게 됐고, 나중에는 각자 휴대전화를 봤어요.이상한 건 그게 어색해서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인사를 더 이어가면 다음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 다음을 만들 생각이 없었거든요.떠나는 날 짐을 들고 나오다 그분과 마지막으로 마주쳤어요. 저는 그날도 그냥 고개만 까딱하고 나왔어요.그 넉 달 동안 그분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몇 층에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이름이 뭔지요. 매일 봤는데도 그래요.돌아보면 제가 먼저 닫은 쪽이었어요. 상대는 처음에 몇 마디 더 붙이려고 했던 것 .. 2026. 8. 29.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2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