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만 하는 사람이 쌓아올린 것
오랫동안 NO를 모르고 살았어요. 주변에서 부탁이 들어오면 어떻게든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지인이 부탁할 때는 거절이란 선택지가 아예 없었어요. 거절하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고, 관계가 틀어질 것 같고,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내 상황이 어떻든 간에 일단 YES부터 했어요. 그게 성실함이고, 그게 좋은 관계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믿었어요.
그 결과로 쌓인 건 감사함이 아니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부탁은 더 많아졌고, 요구는 더 당연해졌어요. YES를 해도 고맙다는 말이 줄어들고, 부탁이 들어오지 않으면 서운하다는 말이 돌아왔어요. 어느 순간 내 주변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게 왜인지는 몰랐어요.
그 시절에는 부탁을 받으면 일단 되는 방법부터 찾았어요. 안 되는 이유를 대는 게 미안해서요. 그러다 보니 무리한 일정을 짜게 되고, 제 일이 밀리고, 밀린 걸 밤에 메우는 날이 늘었어요.
돌아보면 그때 저는 부탁을 들어주는 게 관계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줄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고 여겼던 것 같아요.
그때 제가 쓴 시간을 나중에 대충 세어본 적이 있어요. 몇 년 치를 합치면 꽤 됐어요. 그 시간에 제 일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는데, 지금은 그 계산도 안 해요. 이미 지난 일이니까요.
호구가 진상을 만든다
어느 날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었어요. "호구가 진상을 만든다." 짧은 한 마디였는데,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지난 몇 년이 한꺼번에 스쳐지나갔어요. 거절하지 못하고 YES만 해온 내가 호구였고, 그 결과로 내 주변에 진상들이 만들어졌다는 거예요. 좋은 관계를 만들려고 한 행동들이 오히려 나를 착취하기 쉬운 사람으로 만들어놓은 거였어요.
네트워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로는 네트워크가 아니었어요. 내가 YES를 해주는 동안에만 유지되는 관계였어요. 그걸 몰랐던 거예요. 진심으로 서로를 돕는 관계라고 믿었는데, 사실은 내가 일방적으로 소모되고 있었던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며칠 동안 제 주변 사람들을 하나씩 떠올려봤어요. 그리고 이상한 걸 발견했어요. 저에게 자주 부탁하는 사람들일수록 제가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게 없었어요. 오가는 게 한 방향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부탁의 크기가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는 것도 그때 보였어요. 처음에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요. 그게 되면 다음이 조금 더 커지고요. 어느 선에서 멈춘 게 아니라 제가 안 멈춰서 계속 커진 거였어요.
내가 도움을 청했을 때, 돌아온 건 NO였다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왔어요. 정말 힘든 상황에서 오랫동안 YES를 해줬던 지인들에게 일 소개를 부탁했어요.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는 받았어요. 통화를 했고, 알아보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그 이후로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고, 콜백도 없었어요. 차단당한 느낌이었어요. 여러 사람에게 연락했는데 결과는 비슷했어요. 내가 필요할 때 나타났던 사람들이, 내가 필요로 할 때는 없었어요.
내가 쌓아왔다고 믿었던 관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제서야 제가 스스로 호구가 되어 진상들을 주변에 모아왔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리석었다는 자책보다, 허탈함이 더 컸어요. 그리고 그 허탈함이 3년 내내 이어졌어요. 그런데 3년이 지나 상황이 모두 정리됐을 때, 그 지인 중 한 명에게 연락이 왔어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연스럽게 다가왔어요. 그리고 결국 금전적인 부탁을 했어요. 이번엔 NO라고 했어요. 그러자 입에 담기도 힘든 말이 돌아왔어요. 그 순간 모든 게 정리됐어요. 내가 호구였다는 것, 그리고 다시는 그런 관계에 YES를 하지 않겠다는 것.
그때 제일 힘들었던 건 돈이나 일이 아니었어요.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없었다는 걸 인정하는 거였어요. 몇 년 동안 저를 소모한 사람들을 저는 좋은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다녔거든요.
그 몇 달 동안 전화기를 자주 봤어요. 혹시 답이 왔나 하고요. 지금 생각하면 그 기다림이 제일 소모적이었어요. 답이 없다는 것도 이미 답이었는데요.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이후 3년이 정말 힘들었어요. 금전적으로도 어려웠고, 인간관계도 거의 무너진 상태였어요.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렵고 지쳤어요. 대인기피증에 가까운 상태로 지낸 시간이 있었어요. 사람에게 받은 실망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사람 자체가 무서워지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그 시기를 버티면서 아주 천천히 내 안에서 무언가가 바뀌기 시작했어요.
그 변화는 거창한 게 아니었어요. 그냥 내가 정말 하기 싫은 것, 감당하기 힘든 것에 대해 솔직해지는 연습이었어요. 처음엔 작은 것부터 시작했어요. 부담스러운 자리, 무리한 부탁, 이유 없이 소모되는 관계. 하나씩 NO를 말해보기 시작했어요.
처음 NO라고 말했던 날이 기억나요. 문자를 몇 번 고쳐 썼어요. 길게 설명하다가 다 지우고 두 줄만 남겼어요. 보내고 나서 한동안 답을 못 봤어요.
답은 그냥 알겠다는 말이었어요. 그게 다였어요. 제가 몇 시간 걱정한 게 무색할 만큼 아무 일도 안 일어났어요. 그 뒤로 조금씩 쉬워졌어요.
작은 것부터 시작한 게 도움이 됐어요. 큰 부탁을 거절하려고 하면 마음의 문턱이 너무 높아요. 안 가도 되는 자리에 안 간다고 말하는 것 같은 작은 것부터 해보니 조금씩 되더라고요.
NO는 건강한 관계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기준이 생겼어요. 내 가족에게 영향을 주는 일,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 억지로 해야 하는 곤란한 일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NO를 말해요. 예전처럼 돌려 말하거나 핑계를 대지 않아요. 짧고 분명하게 말해요. 그리고 그 이후 관계가 흔들리면, 그 관계가 원래 그런 관계였다는 걸 받아들여요.
멀리 살면서 오히려 쉬워진 면도 있어요. 만나지 않으니 분위기에 밀려서 승낙하는 일이 없거든요. 글로 답하면 생각할 시간이 생기고요. 예전에는 얼굴을 보고 앉아 있으면 거절이라는 선택지가 사라졌어요.
일에서의 거절과 사적인 거절은 아직도 난이도가 달라요. 일은 조건이 안 맞는다고 하면 되는데 사적인 부탁은 그런 근거가 없잖아요. 그래서 그냥 못 하겠다고만 해요. 이유를 붙이면 그 이유를 두고 협상이 시작되더라고요.
그리고 거절한 뒤에 마음이 며칠 불편한 건 지금도 그래요. 없어지지 않았어요. 다만 그 불편함이 며칠이면 지나간다는 걸 아니까 견딜 만해졌어요.
신기한 건, NO를 말하기 시작하면서 진짜 관계들이 남더라는 거예요. 내가 거절해도 여전히 곁에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진짜였어요. NO를 말할 줄 아는 것이 관계를 끊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를 제대로 걸러내는 기술이에요. 호구가 진상을 만든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아팠지만, 지금은 그 한 마디가 제 삶에서 가장 유용한 가르침 중 하나가 됐어요. 건강한 네트워크는 YES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아요. 때로는 단호한 NO가 그 기반을 다져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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