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전체가 행렬로 막혔어요
안티구아의 숙소에서 코워킹 스페이스로 가는 길, 평소라면 10분이면 걸었을 거리인데 거리 전체가 사람들로 가득 막혀 있었어요. 화려한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행진하고 있었어요. 그날이 현지 축제일이라는 걸 그제야 알았어요.
우회로를 찾아보려 했지만, 좁은 골목 구조 때문에 어느 길로 가도 행렬과 마주쳤어요. 중요한 화상 미팅이 30분 뒤로 잡혀 있었는데, 이대로는 제시간에 도착하기 어려울 것 같았어요.
구글 지도로 몇 가지 경로를 더 검색해봤지만, 전부 비슷한 결과였어요. 좁은 안티구아 구시가지는 큰 길이 몇 개뿐이라, 그 중심 도로를 막은 행렬을 피해 갈 방법이 애초에 많지 않았던 거예요.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면서 숨도 가빠졌어요.
처음엔 짜증이 났다
솔직히 처음 몇 분은 짜증이 올라왔어요. 사람들을 비집고 지나가려 했지만, 행렬 자체가 거리 전체를 차지하고 있어서 그마저도 불가능했어요. 발을 동동 구르며 휴대전화로 미팅 시간을 계속 확인했어요.
결국 클라이언트에게 메시지를 보내 상황을 설명하고 10분 정도 늦을 것 같다고 알렸어요. 다행히 클라이언트도 "괜찮다"며 여유롭게 받아줬어요. 그제야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어요.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야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이 빠지는 걸 느꼈어요. 그동안 혼자 조급해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괜찮다고 말해주는 순간 그 긴장이 거짓말처럼 풀렸어요. 괜히 혼자서 더 큰 문제로 키우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어요.
포기하고 나서야 보인 풍경
더 이상 서둘러도 소용없다는 걸 인정하고, 길가에 서서 행렬을 바라보기로 했어요. 그러자 그제야 그 축제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화려한 가면과 의상, 전통 음악에 맞춰 춤추는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즐거워 보였어요.
옆에 서 있던 현지 할머니가 저에게 간단한 영어로 이 축제의 의미를 설명해줬어요. 수백 년 이어진 전통 행사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동안 급한 마음에 보지 못했던 걸 처음으로 제대로 보게 됐어요.

할머니는 매년 이 축제를 손주들과 함께 본다고 했어요. 가족 대대로 이어온 전통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그저 길을 막는 불편한 행사가 아니라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날이라는 게 느껴졌어요. 제가 느꼈던 조급함이 괜히 부끄러워졌어요.
행렬 속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걸 보고 저도 모르게 같이 손을 흔들었어요. 그 순간만큼은 미팅 걱정도 잠시 잊고 그 축제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어요.
결국 미팅에는 조금 늦게 들어갔다
행렬이 지나가고 나서야 길이 열렸어요. 결국 미팅에는 15분 늦게 접속했어요. 클라이언트는 늦은 걸 전혀 문제 삼지 않았고, 오히려 축제 이야기를 듣더니 재미있어했어요. 사진이라도 찍어왔냐고 물어서, 몇 장 공유하며 짧게 그날의 풍경을 나눴어요.
화면 너머로 클라이언트가 "저도 그런 축제 한번 보고 싶네요"라며 웃었어요. 업무 이야기로 바로 들어가기 전에 나눈 그 짧은 잡담이, 오히려 그날 미팅의 분위기를 한결 편안하게 만들어줬어요.
미팅은 평소보다 오히려 더 화기애애하게 진행됐어요. 사소한 지연이 오히려 대화의 좋은 소재가 된 셈이었어요.
계획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
그날 이후로 낯선 도시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면, 일단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마음을 더 빨리 바꾸려 해요. 어차피 바꿀 수 없는 상황에 조급해하는 것보다, 그 안에서 무언가를 얻어가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는 걸 그 축제에서 배웠어요.
물론 급한 일정이 있을 때는 여전히 조급해져요. 하지만 적어도 그 조급함 속에서도 주변을 한 번쯤 둘러볼 여유는 가지려 해요. 안티구아의 그 행렬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순간을 대하는 제 태도를 조금 바꿔놓았어요. 어차피 바뀌지 않을 상황이라면, 짜증내는 시간만큼 손해라는 걸 그날 확실히 체감했어요.
예상 밖의 순간이 주는 선물
노마드로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대부분 계획에 없던 일들이었어요. 그 축제도 예정에 없던 지연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날 본 풍경이 그 도시에서의 가장 선명한 기억으로 남았어요.
지금도 가끔 그날 찍은 사진을 들여다봐요. 급했던 마음과 그 뒤에 찾아온 여유가 뒤섞인 그 몇 십 분이, 생각보다 꽤 소중한 기억이 됐다는 걸 느껴요.
'마인드셋 & 웰니스 (Mindset & Wellness)'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산티아고에서 첫 지진을 겪었어요: 침대가 흔들리던 그 몇 초 (0) | 2026.10.12 |
|---|---|
| 뭄바이 결혼식에 초대받았어요: 사흘짜리 잔치가 가르쳐준 인도식 환대 (0) | 2026.10.11 |
| 라파즈에서 고산병으로 쓰러질 뻔했어요: 해발 3,600미터가 가르쳐준 것 (0) | 2026.10.09 |
| 세부 공항에서 여권을 잃어버렸다, 대사관 임시여권 발급까지의 하루 (0) | 2026.10.08 |
| 리마에서 사무치게 그리웠던 한식의 밤, 저는 결국 된장찌개를 끓였다 (0) | 2026.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