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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셋 & 웰니스 (Mindset & Wellness)

산티아고에서 첫 지진을 겪었어요: 침대가 흔들리던 그 몇 초

by wellnomadness 2026. 10. 12.

침대가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새벽 2시쯤, 침대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바닥이 울렸어요. 처음엔 옆방 누군가가 가구를 옮기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흔들림이 점점 커지면서 벽에 걸린 그림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어요.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바닥이 출렁였어요.

산티아고에 온 지 두 달째였는데, 그동안 지진 경보 문자를 몇 번 받긴 했지만 실제로 느껴본 적은 없었어요. 그래서 처음 몇 초 동안은 이게 정말 지진인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머릿속이 하얘진 채로 그냥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창문 밖에서 개 짖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동물들이 사람보다 먼저 진동을 감지한다는 말이 있다던데, 그 순간엔 그런 걸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어요. 테이블 위에 놓아둔 물컵이 조금씩 흔들리며 물이 넘치는 걸 보고서야 이게 상상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어요.


몸이 먼저 움직이지 못했다

한국에서 지진 대피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저는, 그 순간 뭘 해야 하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어요. 책상 아래로 들어가야 하나, 문가에 서야 하나,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하나. 머릿속에서 여러 정보가 뒤섞였지만 몸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어요.

흔들림이 20초쯤 계속되는 동안, 시간이 훨씬 길게 느껴졌어요. 숙소 밖에서 사람들이 뛰어나가는 발소리와 외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 소리를 듣고서야 저도 겨우 몸을 일으켜 문 쪽으로 움직였어요.

새벽에 지진이 난 뒤 복도에 모인 투숙객들 사이에서 서 있는 남성의 뒷모습

복도로 나가보니 다른 투숙객들도 잠옷 차림으로 하나둘 나와 있었어요. 다들 불안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상황을 확인하려 했어요. 그 짧은 순간,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도 같은 공포를 공유한다는 묘한 연대감이 느껴졌어요.

몇몇은 휴대전화로 가족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고, 몇몇은 창밖을 내다보며 주변 건물에 피해가 없는지 살피고 있었어요. 저는 그 와중에도 여권이 어디 있는지부터 떠올렸는데, 막상 방에 두고 나왔다는 걸 깨닫고 다시 들어가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어요.


흔들림이 멈추고 나서야 찾아온 공포

흔들림이 멈춘 뒤에도 몸이 계속 떨렸어요. 머리로는 끝났다는 걸 알면서도,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어요. 숙소 직원이 다들 괜찮은지 확인하러 다녔고, 큰 피해는 없다는 안내가 돌았어요.

방으로 돌아와서도 한참을 뜬눈으로 있었어요. 혹시 여진이 올까 봐 신발을 신은 채로 침대에 누웠어요. 휴대전화로 지진 정보를 검색해보니 규모 6점대의 꽤 큰 지진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제야 그 공포가 과장이 아니었다는 걸 실감했어요.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도 메시지를 보냈어요. 시차 때문에 다들 자고 있을 시간이었는데, 그래도 혹시 뉴스를 먼저 보고 걱정할까 싶어 "괜찮다"는 말을 먼저 남겼어요. 몇 시간 뒤 일어난 가족이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을 때, 그제야 제가 겪은 일이 꽤 큰 사건이었다는 게 다시 한번 실감 났어요.


다음 날 알게 된 칠레 사람들의 침착함

다음 날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만난 현지 동료들은 다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소처럼 일하고 있었어요. 지난밤 지진 이야기를 꺼내니 "이 정도는 흔한 편"이라는 반응이 돌아왔어요. 지진이 일상의 일부인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의 침착함이 신기하게 느껴졌어요.

한 동료는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지진 대피 훈련을 받아왔다고 했어요. 책상 아래로 들어가는 자세, 문틀을 붙잡는 요령 같은 걸 거의 반사적으로 알고 있다고 했어요. 저는 그 순간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는 게 부끄럽게 느껴졌어요.

동료는 제 이야기를 듣더니 웃으며 "다음번엔 당황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위로해줬어요. 그 말이 맞았어요. 며칠 뒤 작은 여진이 한 번 더 있었는데, 그때는 신기하게도 몸이 먼저 문틀 쪽으로 움직였어요. 한 번의 경험이 그렇게 빠르게 반응을 바꿔놓는다는 게 스스로도 놀라웠어요.


그 뒤로 챙기기 시작한 것들

그 일을 겪고 나서 숙소에 머물 때마다 가장 가까운 비상 대피로를 미리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신발과 손전등을 침대 옆에 항상 놓아두고, 여권과 중요 서류는 작은 파우치에 담아 언제든 들고 나갈 수 있게 준비해뒀어요.

그리고 지진이 잦은 나라로 이동할 때는 기본적인 대피 요령을 미리 찾아보게 됐어요. 책상 아래로 들어가거나, 문틀 안쪽에 서는 자세 같은 걸 영상으로 몇 번 보고 익혀뒀어요.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그 순간의 공포를 얼마나 다르게 만드는지 그제야 이해했어요.

가족과 미리 연락 방법도 정해뒀어요. 혹시 통신이 끊기는 상황이 생기면 어느 메신저로, 어떤 순서로 연락할지를 간단히 정리해둔 거예요. 별것 아닌 약속 같지만, 이런 걸 미리 정해두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든든해졌어요.


침대가 흔들리던 그 몇 초가 가르쳐준 것

그 몇 초의 흔들림은 짧았지만, 몸이 아무것도 모른 채 멈춰버리는 경험은 꽤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노마드로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도, 그 나라의 재난 대비 상식까지는 챙기지 못했다는 걸 그날 처음 깨달았어요.

지금은 새 나라에 도착하면 지진이나 태풍처럼 그 지역에 흔한 재난과 기본 대응법을 꼭 한 번 찾아봐요. 익숙한 나라에서는 당연했던 안전 감각이, 낯선 땅에서는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걸 그 몇 초가 몸으로 가르쳐줬어요. 여행의 자유로움 뒤에는 늘 이런 낯선 위험에 대한 최소한의 대비가 따라야 한다는 걸, 그날 이후로 잊지 않으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