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첩을 넘기다 이상한 걸 발견했어요
휴대폰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최근 몇 달치를 쭉 넘겨봤어요. 음식 사진, 풍경 사진은 많은데 정작 제 얼굴이 나온 사진이 하나도 없었어요.
처음엔 그냥 우연이겠거니 했어요. 그런데 한 달, 두 달, 세 달을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였어요. 어느 순간부터 저는 사진 속 풍경의 일부가 아니라 그걸 찍는 사람으로만 존재하고 있었어요.
예전 사진첩을 열어보니 몇 년 전만 해도 셀카나 누군가 찍어준 제 사진이 꽤 있었어요.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정확히 기억도 안 났어요.
날짜별로 훑어보다가 한 지점에서 뚝 끊긴 걸 알았어요. 그 이후로는 정말 단 한 장도 없었어요.
그 지점이 정확히 어느 도시로 넘어가던 시기였는지도 떠올려봤어요. 신기하게도 혼자 다니는 일정이 유독 많아진 시기와 맞아떨어졌어요.
한참을 스크롤하다가 결국 노트북을 덮었어요. 그냥 우연이라고 넘기기엔 그 공백이 너무 길고 뚜렷했어요.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생긴 습관이었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는 단순했어요. 혼자 다니다 보니 제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풍경이나 음식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찍을 수 있지만, 제 얼굴은 그럴 수 없었어요.

카메라를 셀카 모드로 돌려 스스로 찍어보려 해도 어색해서 몇 번 시도하다 그만두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카메라는 항상 밖을 향해 있었어요.
몇 년째 이런 식으로 지내다 보니, 제가 그 시간과 장소에 실제로 있었다는 증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료 노마드들 사진첩을 슬쩍 봤을 때도 비슷한 경우가 많았어요. 다들 풍경은 넘치는데 본인 얼굴은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누군가는 셀카를 찍는 게 그냥 낯간지러워서 안 찍는다고 했고, 누군가는 저처럼 찍어줄 사람이 없어서 자연스레 안 찍게 됐다고 했어요. 이유는 조금씩 달라도 결과는 다 비슷했어요.
그 얘기를 나누면서 이게 저만의 특별한 습관은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혼자 다니는 삶의 형태가 자연스럽게 만드는 공백 같은 거였어요.
한 명은 아예 셀프 촬영용 소형 조명까지 챙겨 다닌다고 했어요. 처음엔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듣고 나니 오히려 저에게 준비가 부족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 이후로 저도 제 기록을 남기는 일을 가벼운 취미가 아니라 하나의 습관으로 챙기기로 마음먹었어요. 누가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사진 없는 기록이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다시 훑어봤어요. 멋진 풍경, 맛있는 음식은 가득한데, 그 순간 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는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어요.
가족들에게 근황을 전할 때도 늘 풍경 사진만 보냈어요. 몇 달 만에 화상 통화를 하면 다들 제가 살이 빠졌는지 늘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어요. 사진으로는 전혀 알 수 없었으니까요.
몇 년 뒤에 이 시절을 돌아볼 때, 제가 어떤 얼굴로 그 시간을 보냈는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 서늘해졌어요.
풍경 사진은 검색만 하면 비슷한 걸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만, 그 자리에 서 있던 제 모습은 저 말고는 아무도 대신 남겨줄 수 없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어요.
사진첩을 자산처럼 여겨본 적은 없었는데, 이번 일을 겪고 나니 이게 결국 제 몇 년치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기록에 제가 빠져 있다는 게 못내 아쉬웠어요.
부모님께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여쭤볼 때마다, 정작 저는 제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 제대로 보내드린 적이 없었다는 게 뒤늦게 마음에 걸렸어요. 풍경만 보내면서 잘 지낸다는 말만 반복했던 거예요.
의식적으로 제 모습을 남기기 시작했어요
그 뒤로 새로운 곳에 도착하면 풍경 한 장, 제 모습 한 장을 같이 남기기로 했어요. 처음엔 어색했지만 몇 번 하다 보니 익숙해졌어요.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 것도 이제는 크게 망설이지 않아요. 언어가 안 통해도 손짓으로 카메라를 가리키면 대부분 흔쾌히 도와줬어요.
처음 몇 번은 사진 속 제 표정이 어색하고 뻣뻣했어요. 그런데 반복할수록 조금씩 자연스러워지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어요.
사진을 찍어준 사람과 짧게라도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도 예상 못 한 덤이었어요. 그 몇 마디가 그날 하루를 조금 덜 외롭게 만들어줬어요.
어떤 날은 찍어준 사람이 화면을 보여주며 마음에 드는지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오히려 사진 자체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몇 번은 서툰 손짓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다가 짧게 대화가 이어지기도 했어요. 어디서 왔는지, 얼마나 머무는지 같은 가벼운 질문들이었는데, 그 몇 마디가 낯선 도시를 조금 덜 낯설게 만들어줬어요.
삼각대 하나로 많은 게 달라졌어요
작은 삼각대를 하나 장만했어요. 타이머를 맞추고 혼자 찍는 방법도 익혔어요. 처음엔 몇 번을 실패했지만, 이제는 꽤 자연스러운 사진을 남길 수 있게 됐어요.
숙소 창가나 동네 골목 같은 평범한 장소에서도 삼각대를 세워두고 몇 장씩 찍어요. 거창한 장소가 아니어도, 그 순간의 제 모습이 남는다는 게 중요했어요.
가방 한쪽에 삼각대 자리를 따로 마련해뒀어요. 짐이 하나 늘었지만, 그 무게가 아깝지 않을 만큼 쓸모가 있었어요.
처음 몇 번은 타이머 시간을 잘못 맞춰서 셔터가 너무 빨리 눌리는 바람에 엉뚱한 순간이 찍히기도 했어요. 그런 실패한 사진들조차 지금은 나름대로 웃긴 기록으로 남아 있어요.
삼각대를 세우는 그 짧은 순간이 오히려 그 장소를 더 오래 바라보게 만들어준다는 것도 새롭게 알았어요. 그냥 지나쳤을 골목도 사진 한 장 때문에 조금 더 눈에 담게 됐어요.
숙소를 옮길 때마다 이제는 짐 목록에 삼각대가 당연하게 포함돼요. 예전 같으면 빼놓기 쉬운 물건이었는데, 지금은 카메라만큼이나 중요하게 챙기는 물건이 됐어요.
가끔은 그냥 숙소 방 안에서 아무 이유 없이 타이머를 맞춰놓고 한 장을 남기기도 해요. 특별한 배경이 아니어도, 그날그날의 제 표정을 기록해두고 싶어졌어요.
이제는 사진첩에 제가 있어요
요즘 사진첩을 넘겨보면 예전과는 다르게 제 얼굴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어요. 그 변화가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볼 때마다 묘하게 안심이 돼요.
풍경만 남기던 그 몇 달이 아니었다면, 저는 여전히 제가 어디에도 없는 기록만 쌓고 있었을 거예요. 지금은 어디를 가든 그 자리에 제가 있었다는 흔적을 하나씩 남기려고 해요. 몇 년 뒤 이 사진들을 다시 넘겨볼 때, 적어도 그 시절의 제 얼굴만큼은 또렷이 남아 있을 것 같아요. 사진첩을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그 공백 하나가, 생각보다 많은 걸 다시 돌아보게 만든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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