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마드 라이프 (Nomad Life)

신용 기록 없는 유학생의 미국 첫 아파트 계약기: 시카고에서 배운 리스와 렌터스 보험

by wellnomadness 2026. 7. 16.

계좌 다음 관문은 집이었다

시카고에서 은행 계좌를 만들고 나니 다음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바로 집이었어요. 유학 초기에는 아는 분 집에 잠시 얹혀 지내면서 학교를 다녔는데, 언제까지나 신세를 질 수는 없었어요. 학기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제 이름으로 된 아파트 리스 계약이 필요해졌어요. 한국에서는 부동산에 가서 집을 보고 계약금을 걸면 끝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미국의 아파트 계약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어요. 집을 구하는 게 아니라, 제가 세입자로서 자격이 있는지 심사를 받는 과정에 가까웠어요.

학교 게시판과 지역 신문 광고를 뒤져서 통학이 가능한 동네의 아파트 몇 곳을 골랐어요.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규모가 꽤 큰 관리회사가 운영하는 아파트였어요. 방을 보여주기도 전에 사무실에서 신청서부터 내밀었어요. 소셜 시큐리티 번호, 신용 기록, 소득 증빙, 이전 거주 이력, 그리고 이전 랜드로드의 연락처까지 적으라고 했어요. 유학생인 저에게는 절반도 채울 수 없는 항목들이었어요.


신용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받은 거절

며칠 뒤에 돌아온 답은 거절이었어요. 이유는 은행에서 들었던 것과 똑같았어요. 신용 기록이 없다는 거였어요. 미국에서는 크레딧 히스토리가 없으면 월세를 낼 능력이 있는지 판단할 근거가 없다고 봐요. 제가 아무리 통장 잔고를 보여줘도, 지금까지 미국 안에서 돈을 빌리고 갚은 기록이 없으니 신뢰할 수 없다는 논리였어요. 성실하게 살아온 것과 별개로, 이 나라의 시스템 안에서는 제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어요.

두 번째, 세 번째 아파트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한 곳에서는 미국인 코사이너를 세우면 가능하다고 했어요. 저 대신 월세를 책임져 줄 보증인을 구해오라는 거였는데, 유학 온 지 얼마 안 된 제가 그런 부탁을 할 수 있는 미국인이 있을 리 없었어요. 다른 곳에서는 보증금을 두 달치로 올리면 검토해 보겠다고 했어요. 당시 저에게 두 달치 보증금과 첫 달 월세를 한꺼번에 내는 건 학비 다음으로 큰 지출이었어요. 집을 보러 다닐수록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었어요.


은행 때와 같은 답, 사람을 봐주는 곳

그때 은행 계좌를 만들 때의 경험이 떠올랐어요. 큰 은행에서는 서류만 보고 거절당했지만, 동네 은행에서는 직원이 제 상황을 듣고 30분 만에 계좌를 열어줬거든요. 아파트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었어요. 그래서 대형 관리회사 아파트 대신, 개인 랜드로드가 직접 세를 놓는 집을 찾기 시작했어요. 학교 근처 한인 마트 게시판과 동네 골목에 붙은 손글씨 임대 광고가 오히려 더 좋은 정보원이었어요.

그렇게 만난 분이 폴란드계 노부부 랜드로드였어요. 삼층짜리 벽돌 건물의 이층을 세놓고 있었는데, 신청서 대신 커피를 내주면서 이야기를 물었어요.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학비와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하는지, 언제까지 시카고에 있을 계획인지 같은 것들이었어요. 저는 신용 기록이 없다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먼저 꺼냈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웃으면서 자기도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똑같았다고 했어요. 서류가 아니라 사람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말에, 몇 주 동안 쌓였던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어요.

시카고의 오래된 벽돌 아파트 건물 앞에서 임대 계약을 앞두고 서 있는 유학생의 모습


처음 들어본 렌터스 보험이라는 것

계약 조건은 생각보다 합리적이었어요. 보증금은 한 달치, 리스 기간은 일 년이었어요. 대신 한 가지 조건이 붙었어요. 렌터스 보험에 가입하라는 거였어요. 그때 저는 렌터스 보험이라는 걸 처음 들어봤어요. 세입자가 왜 보험까지 들어야 하나 싶어서 솔직히 돈이 아깝다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그런데 랜드로드의 설명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건물에 불이 나거나 물이 새는 사고가 생기면 건물 자체는 집주인 보험이 처리하지만, 그 안에 있는 제 짐과 제 과실로 생긴 피해는 세입자 몫이라는 거였어요.

보험료를 알아보니 한 달에 만 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어요. 노트북과 책, 옷가지가 전 재산이던 유학생에게도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니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렌터스 보험은 도난이나 화재로 인한 짐 피해뿐 아니라, 제 집에서 다른 사람이 다쳤을 때의 배상 책임까지 보장해 주는 거였어요. 실제로 몇 년 뒤 윗집 배관이 터져서 아랫집 천장이 내려앉는 일을 겪은 지인이 렌터스 보험 덕분에 큰 손해를 피하는 걸 보면서, 그때 그 조건이 저를 위한 거였다는 걸 알게 됐어요.


계약서에 서명하던 날 배운 것들

리스 계약서에 서명하던 날, 랜드로드는 계약서를 한 장씩 넘기면서 조항을 설명해 줬어요. 월세 납부일과 연체료, 계약을 중간에 끝낼 때의 조건, 수리 요청은 어떻게 하는지, 겨울에 히터가 고장 나면 누구에게 연락하는지까지 꼼꼼하게 짚어줬어요. 그때 배운 게 하나 있어요. 미국에서 리스 계약서는 단순한 요식 행위가 아니라, 나중에 분쟁이 생겼을 때 저를 지켜주는 거의 유일한 문서라는 거예요. 계약서에 적히지 않은 구두 약속은 아무 힘이 없다는 것도 그때 알았어요.

입주 전에 함께 집을 돌면서 기존에 있던 흠집과 얼룩을 목록으로 적고 서로 서명을 남긴 것도 인상 깊었어요. 나중에 이사 나갈 때 보증금에서 부당하게 수리비를 떼이지 않으려면 입주 시점의 상태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거였어요. 지금이야 사진을 찍어두는 게 상식이지만, 그때 저는 그런 개념 자체가 없었거든요. 몇 년 뒤 다른 집으로 이사할 때 그 기록 덕분에 보증금을 전액 돌려받으면서, 첫 랜드로드에게 배운 습관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실감했어요.


신용 기록 없이 미국에서 첫 집을 구한다면

그 이층집에서 저는 유학 생활의 절반을 보냈어요. 그리고 그 집의 월세 납부 기록과 이후에 만든 신용카드가 쌓여서, 몇 년 뒤에는 대형 관리회사 아파트의 심사도 문제없이 통과하는 신용 기록이 만들어졌어요. 처음에 저를 거절했던 그 시스템 안으로, 결국은 저도 들어가게 된 거예요. 하지만 그 출발점은 서류가 아니라 사람을 봐준 개인 랜드로드였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해요.

지금 신용 기록 없이 미국에서 첫 집을 구하는 분이 있다면 제 경험에서 몇 가지를 건네고 싶어요. 대형 관리회사보다는 개인 랜드로드의 집이 문턱이 낮고, 자신의 상황을 숨기기보다 먼저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쪽이 오히려 신뢰를 얻어요. 코사이너나 추가 보증금을 요구받으면 그것만이 답이 아니니 다른 집을 더 찾아보세요. 렌터스 보험은 조건으로 요구받지 않더라도 가입하는 게 좋고, 입주 전 집 상태 기록과 계약서의 조기 해지 조항 확인은 반드시 챙기세요. 은행 계좌 때도, 집을 구할 때도 결론은 같았어요. 낯선 나라의 시스템이 저를 거절할 때, 길은 언제나 사람에게 있었어요.